지난해 법인 파산 건수가 2000곳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개인회생 역시 13만 건에 가까운 사상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 고금리, 물가 압박 속에서 기업과 서민 모두 회생 절차를 통한 구조조정과 채무 조정에 나서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대법원이 23일 발간한 ‘2024년 사법 연감’에 따르면 회생·파산·면책을 모두 합한 도산 사건 전체는 22만 2771건으로 전년(21만 4266건)보다 8500여 건(4.0%) 늘었다. 도산 사건은 2022년 17만 3662건을 기록한 뒤 2023년 처음으로 20만 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법인 파산은 지난해 1940건으로 전년(1657건)보다 17% 이상 증가세를 보였다. 2020년 1054건에서 2021년 950건으로 줄어 감소세를 보였으나 2022년 다시 1000건을 돌파한 뒤 2023년(1657건)에는 전년 대비 65% 급증했다. 이어 지난해 다시 17%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기업 파산이 급증한 동시에 회생 절차(법원 주도하에 채무 조정하는 절차)를 밟아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법원 문을 두드린 기업은 1698곳으로 전년(1602건)보다 6.0% 증가했다. 2022년 1047건에서 2023년 1602건으로 53%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시장에서는 회생 절차를 밟아 새 주인을 찾는 기업 사례가 잇따랐다. 티몬은 미환불·미정산 사태로 회생 절차를 신청한 뒤 오아시스마켓에 인수되며 회생 계획 인가를 받아 회생 절차를 졸업했다. 홈플러스도 법원으로부터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허가받아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고 공개 입찰 절차를 밟고 있다. 인가 전 M&A는 회생 계획 확정 전에 유동성을 수혈할 투자자를 확보해 채무 조정과 구조조정을 동시에 추진하는 제도다. 반면 위메프는 장기간 투자자를 찾지 못해 회생 절차가 폐지되며 사실상 파산 수순을 밟을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개인회생은 12만 9499건으로 전년(12만 1017건)보다 7% 증가했다. 2022년(8만 9966건)과 비교해 2년 만에 40% 이상 늘어난 셈이다. 파산보다는 법원의 채무 조정 제도를 통해 경제적 재기를 모색하는 사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파산(4만 1004건)은 전년보다 2.8% 줄었고 면책 사건(3만 8330건)도 3.5% 감소했다. 면책은 개인이 파산 선고를 받은 뒤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법원이 잔여 채무를 면제해주는 절차를 말한다. 단순 파산으로 모든 채무를 정리하기보다 일정 기간 변제를 거쳐 남은 채무를 탕감받는 회생이나 면책 절차를 활용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전 회생법원 부장판사는 “자영업 경기 침체와 고금리·물가 부담이 겹치면서 채무 조정을 법원에 맡기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최근에는 중견·대기업까지 회생 절차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법원의 구조조정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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