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이 도시를 협박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다. 1718년 5월 부유한 항구였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 앞바다가 완전히 막혀버렸다. 해적들은 드나드는 선박을 사로잡고 의회 의원과 도시의 부자들을 인질로 잡아 일주일 동안 도시를 위협했다. 뜻밖에 그들의 요구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의약품이었다. 당시 해적들은 매독에 시달렸기 때문에 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검은 수염’이라 불린 에드워드 티치의 대담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찰스턴 항구 봉쇄사건이다.
‘검은 수염’은 전투를 시작할 때 검은 모자와 치렁치렁한 수염 밑에 불이 붙은 도화선을 숨기고 연기와 불꽃을 피우며 나타났다.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큰 덩치에 긴 칼 2자루와 권총 6자루를 차고 다니며, 배신한 부하를 바로 처형한 뒤 수염을 꼬아 불에 태우면서 럼주에 화약을 섞어 마셨다. ‘검은 수염’은 동화 ‘보물선’의 해적 롱 존 실버에 이어 ‘피터팬’의 후크 선장으로 이어지는 잔인한 해적의 대명사다.
에드워드 티치가 지휘한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는 그야말로 해적선의 대명사로 꼽힌다. 이 배는 프랑스의 노예선 ‘콩코드’를 빼앗아 해적선으로 바꾼 것이다. 행복했던 앤 여왕 시절을 돌이키며 정치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과 복수에 대한 공포심을 일으켰다. ‘검은 수염’은 이 해적선에 대포를 40문 넘게 싣고 다니면서 찰스턴 항구 봉쇄사건을 계기로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검은 수염’처럼 해적답게 죽은 경우도 드물다. 한때 동맹이었던 선배 해적 벤자민 호르니골드의 권고도 거부하고 토벌하러 온 영국 해군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1718년 11월 ‘검은 수염’은 도끼를 휘두르며 영국 해군장교와 둘이서 전설적인 결투를 벌이다 38세에 전사했다. 총에 맞은 곳이 20군데, 칼에 베인 곳이 5군데나 됐다. 잘린 목이 군함의 뱃머리에 걸리자 바다에 버려진 몸이 군함 주위를 3바퀴 돌았다고 한다. 대서양 해적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해적 ‘검은 수염’이 구사한 저돌적인 리더십은 ‘우버(Uber)’를 창립한 트래비스 캘러닉의 강압적인 카리스마와 닮았다. 캘러닉은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택시 면허를 얻지 않고, 공유택시 서비스를 개시했다. 당국이 업무중지 명령을 내리자 회사 이름을 우버캡(UberCab)에서 우버로 바꾸는 식으로 무시하거나 우회해서 사업을 계속 했다. 또 경찰의 단속을 교묘하게 피하는 앱인 그레이볼을 가동하기도 했다.
규제에 얼마나 맞서려고 그랬을까? 캘러닉은 조직원들을 전사로 키우려 했다. ‘챔피언의 사고방식’을 강조하며 “항상 밀어붙여라” 라고 독려했다. ‘두려움은 질병이기 때문에 밀어붙여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국의 규제를 무시하고 불법이라도 먼저 시장을 선점한 뒤 여론과 편의성을 무기로 협상하는 전략이다.
캘러닉의 전투적인 리더십은 곳곳에 윤리적인 상처를 많이 냈다. 경쟁사의 공유택시를 수천 건 예약했다가 취소하기도 하고 성희롱으로 고발당한 직원을 성과가 우수하다는 이유로 징계하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는 대립’을 내세웠지만 원칙은 사라지고 대립만 늘어났다. 결국 캘러닉은 우버 기사와 말다툼을 벌이는 사소한 영상까지 공개되면서 2017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났다. 그는 우버 주식을 팔아 3조 원을 손에 쥐었다.
리더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조직을 옥죄는 규제를 뚫고 나가야 한다. 공포든 혁신이든 ‘검은 수염’과 캘러닉은 두려움과 열망을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깃발을 내걸고 전선을 돌파했다. 기존 질서가 걸어 잠근 바다를 향해 누가 감히 돛을 올릴 것인가? 망설이거나 기다리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캘러닉이 다그쳤다. “허락을 얻기보다 용서를 구하는 게 낫다(It’s better to ask for forgiveness than seek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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