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지도록 하는 병역법 제3조 1항은 위헌입니다.”
올 6월에 제출된 헌법소원 심판청구서의 일부 내용이다. 2010·2011·2014·2023년에 이어 다섯 번째다. 심판을 청구한 20대 남성 A 씨는 “병역의무의 불평등한 부담이 군 복무 기간의 문제를 넘어 경력단절, 소득 손실, 사회적 기회 제한 등으로 이어져 젠더 갈등을 심화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며 “여성에게도 일정 형태의 병역 의무를 부과해 사회 통합을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병역법 제3조(병역의무) 1항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대한민국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남성만 병역의무를 이행함으로써 불이익을 받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현행법상 여성도 군 복무는 가능하다. 같은 제3조 1항은 ‘여성은 지원에 의하여 현역 및 예비역으로만 복무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현재 여성은 지원을 통해 현역이나 예비역 복무를 할 수 있지만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선발돼 일반 병사로 복무할 수 있는 길은 막혀 있다.
정치권에서는 저출생·인구절벽에 따른 병력 자원 급감 세태를 반영해 ‘여성의 현역병(兵)’ 복무로 해소하자는 주장까지 쏟아지면서 또다시 여성에게 병역을 부과하거나 일반 병사로 자원 입대할 수 있는 제도 도입 문제를 두고 떠들썩해지고 있다. 올 8월 김미애·주호영·유용원 등 국민의힘 의원 11명이 ‘여성 현역병’ 복무를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여성은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선발돼 일반병 복무는 불가능한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안에 병무청장이나 육해공군 등 각군 참모총장이 현역병 선발 시 성별과 관계없이 지원자를 뽑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병역 자원 감소 추세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저출생의 파장은 해마다 군의 모병 계획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올 8월 기준으로 한국의 상비 병력은 45만 명에 불과하다. 2019년 56만 3000여 명에서 6년 사이에 11만 3000명이나 줄었다. 그동안 병력이 손실되는 전투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무려 10개 사단 병력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탓에 북한군 병력은 128만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이 2.8대1로 열세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군 병력이 2040년 35만 명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장은 군부대 통폐합과 과학화 장비 적극 도입, 현역 판정률 상향 등으로 버티고 있다고는 하지만 마땅한 탈출구가 없다.
중장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정치권이 여성에게도 제적 징병이 아닌 선택 가능한 자원 입대를 통해 현역병 복무의 길을 열어 놓자고 군불을 지피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 모병제’는 수년에 걸쳐 여러 번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여성 징병제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논란과 ‘젠더 갈등’이 불거지면서 국방부는 본격적인 검토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국방부도 병역 자원 급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여군 비율을 2027년까지 15.3%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을 현역병으로 유입한다면 이 목표는 어렵사리 달성할 수 있다. 2024년 기준 장교·부사관 중 여군 비율은 10.8%(1만 9200여 명)를 차지해 창군 이래 처음으로 10%를 넘겼다.
헌법재판소도 여성의 현역병 복무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2023년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3조 1항이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양성징병제의 도입 또는 모병제(여성의 자원 입대 포함)로의 전환에 관한 입법 논의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보충 의견을 제시했다.
병력 절벽 사태가 심각해진다는 점에서 한국처럼 남성 징병제를 운영하다 양성 징병으로 전환한 북유럽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르웨이는 2016년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한 유럽 최초의 국가다. 사회적 논란이 컸지만 양성평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여론에 힘이 실리면서 결국 남녀 모두 병역의무를 지게 됐다.
노르웨이는 필기시험과 체력 검사(기준 남녀 동일) 등을 거쳐 징병 대상자의 10~15%를 선발하는 선별적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매년 남성 7000명, 여성 2000명 정도가 징병된다. 기본 복무 기간은 12개월인데 각종 수당에다 대학 진학 시 가산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이 많아 군 복무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이후 스웨덴·덴마크도 여성 징병제를 다시 도입했다. 스웨덴은 2010년 징병제를 폐지했다가 러시아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자 2017년 징병제를 부활해 여성에게도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덴마크 역시 애초 2027년에 실시하려 했던 여성 징병제를 앞당겨 2025년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건국 당시부터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징병제를 운영하는 이스라엘의 경우 군 복무 기간이 남성은 약 32개월, 여성은 24개월로 상이하다. 다만 2023년 하마스 공습으로 가자 전쟁 이후 여성의 전투병 배치가 늘면서 여성 비율이 전쟁 전보다 7% 증가한 21%까지 늘었다. 현재 이스라엘군 전투 임무의 절반 이상, 전체 임무의 90%가 여성에게 개방됐다.
주목할 점은 이들 국가의 선택에는 양성평등이라는 가치 안에서 저출생 및 안보 위기라는 공통된 인식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점은 여성의 현역병 길을 터주더라도 징병제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이 경험한 많은 진통과 문제점 해소,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여성 병장이 현실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현실적 난관으로는 다수의 여병(女兵)을 위한 병영 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꼽힌다. 여기에 범죄 가능성뿐만 아니라 인권 및 진급 문제 등의 해결도 동반돼야 한다.
이는 2016년 ‘성 중립적 징병제’를 시작한 노르웨이의 사례에서 간접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는 남녀 공동 내무반을 운영한 바 있다. “같은 방을 쓰면 성별 의식이 희미해지고 동지애가 생긴다”는 연구 결과에 기반한 것이다. 처음에는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지속성 확보 등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결국 폐지됐다.
전투 보직 배치 제한의 철폐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보직 제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최근 10년간(2015~2024년) 대령에서 준장 진급자는 총 534명으로 이 가운데 여군은 15명에 그쳐 2.8%의 비중을 차지했다. 같은 기간 준장에서 소장으로의 진급자는 총 229명이었으며 여군은 단 2명으로 약 0.9%에 그쳐 심각한 격차를 보였다. 특히 소장에서 중장,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여군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군 성폭력 문제도 여전하다. 복무 여건 개선 역시 여군 유입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2024년) 발생한 군 성범죄 사건은 5000여 건에 달한다.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육군 최전방 일반전초(GOP) 소초 275곳 중 112곳(40.7%)에 여성 화장실이 없다. 46%는 여성 샤워실이 없는 상황이다.
육군사관학교 교수진은 3월 ‘혁신기업연구’에 게재한 ‘지속 가능한 병역 제도 시행을 위한 여성 징병제 도입 가능성 연구’ 논문을 통해 성평등 관점에서 여군에 대한 공정성 및 현역병 유입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높이면 병역제도(여군의 자원입대)의 매력을 높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현역병은 기본급 150만 원에 장병내일준비적금 55만 원을 더하면 최대 205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데 이는 효과적인 유인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사 교수진은 “경제적 보상이 강화돼 징병제의 매력이 높아지는 상황”이라며 “징병을 고려하는 여성에게도 긍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고 봤다. 특히 봉급 인상 외에도 취업 지원, 학자금 및 사회 복귀 지원 등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복무 경험이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여성 현역병제는 단순한 병력 보강책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양성평등, 안보 등이 얽힌 거대한 의제”라며 “병력 절벽 앞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는 자발적 참여의 문을 여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