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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위기, 엄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기고]  

정인호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서울대 신소재 공동연구소장)

정인호 서울대 교수




철강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국가 기간산업을 떠받치는 근간이자 대한민국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동력이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첨단 제품 뿐 아니라 철강 제품에 대해서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의 철강산업을 둘러싼 현실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산업계의 호소를 ‘엄살’이라 평가절하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손익 악화가 아닌 산업의 존폐가 걸린 ‘생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 철강산업은 글로벌 무역 질서 속에서 삼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중국과 일본산 저가 덤핑재, 그리고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은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에서 물량이 줄고, 내수 부진이 겹치며 생산량은 10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포스코 파이넥스 공장, 현대제철 포항 공장 일부가 문을 닫았고, 영업이익은 급락했다.

또 환경규제 강화는 기업 생존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제4차 배출권거래제 할당 계획은 발전 부문 유상할당을 2030년까지 50%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는 이미 벼랑 끝에 선 철강업계에 사실상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성 있는 감축 경로와 시장안정 장치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철강산업의 몰락은 시간문제다.

세계 주요국은 철강을 ‘안보산업’으로 규정하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일본·EU는 각종 보조금과 무역장벽을 통해 자국 철강을 보호하는 반면, 한국 철강기업들은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싸우고 있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 기조는 기업의 자구적 노력마저 약화시키고 있다.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철강산업이 지속되기 위해서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첫째, 국회에 계류 중인 ‘K-스틸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지난 1970년 ‘철강공업육성법’ 제정이 한국 철강의 도약을 이끌었던 것처럼, 수소환원제철 기술개발, 청정수소와 무탄소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국회 차원의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설치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가 추진 중인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이 선언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공급과잉 해소·수출경쟁력 회복·저탄소 전환·안전 인프라 첨단화 등 구체 대책으로 조속히 실행되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역량을 총동원해 철강기업이 글로벌 무역 환경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배출권거래제는 업계 현실을 반영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되, 초기 연도 감축 경로를 완화하고 시장안정 예비분을 축소하는 등 실행 가능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철강업계가 회피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속도와 방법은 현실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특정 기업의 이익 문제가 아니라 국가 기간산업의 존립, 수십만 일자리, 지역경제의 존망이 걸린 문제다. 철강이 무너지면 자동차·조선·건설 등 연관 산업 전체가 흔들리며, 결국 국민 경제와 일상생활 전반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철강산업은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의 밑거름이 돼왔다. 하지만 현재 국내 철강산업은 저탄소 산업으로의 전환과 무역장벽의 두가지 파고를 동시에 넘어야 하는 절제절명의 상황에 처해있다. 지금은 ‘엄살’ 논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정부와 국회가 조속히 나서서 철강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국민의 응원과 지속적인 관심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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