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하겠다"던 판매자가 갑자기 연락을 끊거나, "환불 안 돼요"라고 적어둔 물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개인 간 중고거래에서 이런 분쟁이 생기면 뚜렷한 해결 기준이 없어 당사자들이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부가 처음으로 이 같은 중고거래 분쟁을 해결할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소비자원은 30일 당근·번개장터·중고나라 등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 3곳과 함께 '개인 간 거래 분쟁 해결 기준'을 발표했다.
새 기준의 가장 큰 원칙은 '증거 기반 조정'이다. 주장하는 쪽이 이를 증명해야 하며, "아마 그랬을 것"이라는 추정이나 정황만으로는 인정받기 어렵다. 감정적 비난이나 인신공격 같은 부적절한 주장은 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판매자가 게시글에 "환불 안 됩니다" 또는 "약간의 스크래치 있어요"라고 미리 밝혔다면 원칙적으로 계약 해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예를 들어 "약간의 사용감 있음"이라고만 적었는데 실제로는 작동이 안 될 정도로 고장이 심각하다면, 구매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므로 계약 해제가 가능하다. 하자 고지가 구체적이지 않거나 실제 문제가 훨씬 심각할 때는 구매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다.
물건에 명백한 결함이 있다면 반품 택배비, 안전결제 수수료 등 원상복구에 드는 비용은 판매자가 부담한다. 판매자가 거짓 정보를 올렸다면 구매자는 거래 취소는 물론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거래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뒤늦게 하자를 주장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구매자가 "이 문제는 원래부터 있었던 것"임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리콜(판매 중단) 이력이 있는 제품처럼 안전상 중대한 결함이 있는 물건은 사용 기간과 관계없이 계약 해제(환불)가 가능하다. 미개봉 새 제품이라도 완전한 상태임을 입증할 책임은 판매자에게 있으며, 배송 중 파손 역시 판매자와 택배사가 책임진다.
특히, 구매자가 플랫폼에서 '구매 확정' 버튼을 눌렀더라도 물건의 하자에 대한 판매자 책임은 여전히 남는다. 다만 판매자가 "구매자가 이 하자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다만 중고거래 피해 사건과 관련해, 거래 상대방이 연락두절 상태이거나 사기·도난품·습득물 등 형사사건과 관련된 물건은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이번 기준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실제 분쟁조정 사례와 법리를 종합해 만든 만큼, 거래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합의점을 찾고 분쟁조정 실무자들이 공정하게 판단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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