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액 기준인 하한액이 상한액을 역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6년 만에 상한액을 올렸다. 하지만 하한액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함께 오르기 때문에 매년 ‘하한액 역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경영계는 하한액 규모를 줄이거나 기준을 바꾸는 등 근본적인 실업급여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해왔다.
고용노동부는 2일 내년 실업급여 상한액을 하루 6만8100원으로 올해보다 3.18% 올리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하위법령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노동부가 실업급여 상한액을 올리기로 한 이유는 내년 최저임금 하한액이 6만6048원으로 현행 상한액인 6만6000원보다 48원 높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근로자 평균 임금 차이, 고용보험기금(실업급여 재원) 안정성, 저임금 근로자 지원 등을 고려해 상·하한액을 두도록 설계됐다. 만일 노동부가 상한액을 올리지 않으면 이 제도 취지가 망가지는 ‘하한액 역전’이 10년 만에 일어날 뻔 했다. 실업급여 수급 추이를 보면 하한액을 받는 수급자가 60% 이상으로 상한액 수급자를 크게 앞선다.
‘하한액 역전’이 앞으로 매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지적된다. 우려스러운 이유는 하한액이 최저임금의 80%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이 구조로 인해 최저임금이 오르면 그만큼 증가한 하한액이 상한액을 앞지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내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2.9% 오른 1만320원이다. 2.9%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첫해 최저임금 인상률 중 가장 낮았다. 하지만 이 낮은 인상률로도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만큼 현재 실업급여 상·하한액 차이가 적다.
경영계는 실업급여 하한액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말 발표한 ‘고용보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 실업급여 하한액은 평균 임금 대비 41.9%에 이른다. 이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하한액은 월로 환산하면 193만 원으로 월 최저임금의 90%로 조사됐고, 세후 최저임금 187만 원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실업급여 제도는 정부가 실직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해 이들이 다시 취업하도록 돕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실업급여는 너무 많이 지급되고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되레 실직자의 급여 의존도를 높여서 구직 의욕을 낮춘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업급여가 도덕적 해이를 만든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노동계는 실업급여가 저임금 근로자의 사회안전망인만큼 하한액 하향을 반대해왔다. 임영태 경총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노동시장 환경 변화와 고용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구직급여 하한액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실업급여는 반드시 필요한 수급자가 혜택을 받는 제도여야 하는데, 쌈짓돈처럼 쓸 수 있는 ‘인기있는 제도’와 같은 인식이 널리 퍼졌다”며 “악화된 고용보험기금 재정을 고려해 실업급여 수급 자격과 횟수에 대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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