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연휴에는 일주일만에 매출 4000만원을 찍었어요.”
경기도의 한 신도시에 위치한 인형뽑기방 점주는 지난해 추석 연휴가 낀 일주일 동안 총 4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570만원꼴이다. 가족 단위 손님이 몰리며 ‘명절 대목’을 맞은 덕이다
이렇듯 '불황에도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며 전국에 인형뽑기방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창업자들이 몰리는 ‘불황형 업종’으로 떠오른 것이다.
"운영비 적고, 인건비 0원"…불황 속 몰리는 창업
인형뽑기방은 초기 설치비 외엔 운영비 부담이 크지 않아 개업 문턱이 낮다.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어 인건비가 거의 들지 않고, 폐업 시 철거비도 적은 편이다.
한 점주는 “요즘엔 매장 한 곳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러 매장을 동시에 돌리는 구조”라며 본인도 본업을 하면서 부업으로 2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통계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올해 신규 인형뽑기 매장은 1011곳으로, 전년(427곳)보다 136.8% 급증했다.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인형뽑기방이 포함된 청소년게임제공업소 수는 지난달 기준 5957곳으로, 1년 새 647곳이 늘었다.
"작은 돈으로 성취감 얻는다"…불황 속 '보상 심리'
사람들이 인형뽑기에 몰리는 이유는 최근 소비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 서울 도심의 한 30대 직장인은 “처음에는 가방에 달 키링을 뽑으려고 시작했는데, 한 번 뽑다 보면 ‘이번엔 꼭 잡겠다’는 생각에 계속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점심을 거르고 15분 거리의 인형뽑기방에 들러 인형을 뽑는 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됐다”고 했다.
이처럼 인형뽑기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작은 성취’와 ‘즉각적 만족’을 추구하는 MZ세대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고물가·고경쟁 시대의 ‘심리적 보상 소비’를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젊은 세대가 일상에서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액으로 즉각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인형뽑기 같은 ‘가성비 놀이’가 일종의 심리적 해소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사행성 논란·위조 인형까지…관리 공백 심각
전문가들은 이런 인형뽑기방의 붐이 오래가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인형뽑기방이 급격히 늘면서 집게발 조작, 고가 경품, 위조 인형 유통 등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9월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인형뽑기 관련 민원은 올해 8월까지 24건 접수돼 이미 지난해 전체(21건)를 넘어섰다. 일부 매장은 집게발 힘을 임의로 조작하거나, 고가의 경품을 내걸어 이용자의 반복 지출을 유도하는 등 사행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안전성 검증을 거치지 않은 위조 인형 문제도 더해졌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관세청이 적발한 어린이 완구·문구류 위조 제품은 752건에서 4,414건으로 487% 폭증했다.
하지만 관세청은 2017년 이후 어린이 제품 단속을 실시하지 않아 사실상 관리 공백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경품 지급 기준과 점검 절차를 강화하고 위반 시 행정처분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0년 전과 다를 게 없다”…반짝 유행의 덫
인형뽑기방은 2010년대 중반에도 ‘청년 창업 아이템’으로 급증했다가 인기가 식은 바 있다.
인천에서 인형뽑기방을 운영하는 점주 A씨는 “매출이 좋은 날엔 100만원 정도, 적을 땐 20~30만원대까지 떨어진다”며 “요즘처럼 매장이 우후죽순 늘면 매출이 더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생 손님이 몰리는 여름방학엔 매출이 늘지만, 9월 이후엔 급감해 추석이나 연말 같은 ‘특수 시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형뽑기방의 급증을 두고 ‘탕후루’처럼 짧고 강한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불황기에 한때 열풍을 일으키는 상품이 유행이 식으면 급격히 사라지면서 상권의 공실 문제가 반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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