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루고 전 세계에 K컬처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사적 전환에 직면해 있다. 여러 국제기구에서 일한 필자의 경험에 비춰 우리 사회 전반이 실용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용을 표방하는 새 정부는 이용후생과 실사구시의 자세로 현장 문제 해결에 진력해야 할 때다.
농업 분야의 경우 시장 개방이 본격화된 이래 농산물 수출 강국인 네덜란드를 배우자는 논의가 30여 년간 진행형이다. 수많은 선진지 견학과 협력 의향서가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출장으로 만날 수 없다. 소프트웨어와 조직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20세기 말 그곳에서 사람과 문화를 익혔다. 욕망을 금지하기보다 한계를 정해 허용하되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가 많았다. 부작용을 견제할 수 있는 청교도적 청빈과 실질 숭상의 기운이 사회 곳곳에 스며 있었다.
이를 토대로 실용 정부를 세우는 네 가지 기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정보 시장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다. 우리 주변에 사기와 맹신이 활개치고 있다. 진짜 전문가들은 제 역할을 못 찾고 연예인과 상업주의의 영향력은 과하다. 정보를 시장에만 맡기면 가짜 정보에 밀리기 쉽다. 주말 아침을 장악한 건강 관련 방송과 광고는 이미 한 몸으로 돌아간다. 구독자와 조회 수가 높을수록 많은 수입을 올리는 정보 채널이 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이니 다른 나라도 그럴 것이라 속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은 측정의 기술이다. 네덜란드 격언 중에 ‘측정하지 않으면 개선할 수 없다’가 있다. 핵심은 측정이 아니라 왜 측정하는가, 즉 목적이다. 공공 부문에서 벌어지는 평가와 측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공감을 받을 만한지 돌아볼 일이다. 두꺼운 보고서와 복잡한 수식을 수용한다 해도 비용을 따져야 한다.
세 번째 기둥은 쓴소리 수용성이다. 고객의 목소리, 특히 불만은 혁신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공공 영역은 민원과 불평을 그저 처리하려 한다. 해외 언론을 보면 댓글의 수준이 사뭇 다르다. 일하는 조직 안에서 남과 다른 생각을 말하기에 주저한다. 질문과 토론을 즐겨본 경험도 없다. 자기 생각을 편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조직에 창의가 싹트기는 어렵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옥스퍼드 유니언처럼 격식 있게 토론하는 모델을 내걸고 민주적 규칙과 운영 방식을 공부하며 퍼뜨려야 한다.
마지막은 부분과 전체를 함께 보는 훈련이다. 우리 각자는 부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공공 정책 결정은 전체를 펼쳐 놓고 원인과 결과를, 이해관계를 전체적으로 비교해야 한다. 정보기술(IT) 발전으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공간으로, 디지털 트윈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국가 재정 소요가 클수록 세계 지도, 한반도 전도 위에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바란다.
요컨대 실용은 치장과 거품·기름기를 빼내는 일이다.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해 투명한 과정으로 본질에 몰입하려는 노력이다. 외모와 형식을 중시하는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 단번에 오르기 힘든 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난을 산업화로 극복했던 부모 세대처럼 이제 우리 세대가 실용의 기치 아래 혁신 경쟁을 펼치고 더 큰 대한민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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