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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공동 시설과 균형 발전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스마트도시·건축학회장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우리의 일상에는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다. 쓰레기 정리, 택배 보관, 주차, 돌봄처럼 각자의 집 안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다. 이런 부족함을 함께 메우고 나누는 공간이 바로 ‘동네의 공동 시설’, 곧 주민이 함께 돌보는 공공 자산이다.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이웃이 연결되고 도시의 생활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1960~1970년대 공동 화장실과 연탄 창고, 공동 목욕탕은 가난한 시대의 생활 기반이 된 대표적인 공동 시설이었다. 정부가 마련하고 주민이 함께 돌보던 이 공간들은 단순한 생존의 터전이 아니라 공동체의 거점이었다. 이는 어려웠던 시절 동네의 일상을 가능하게 하고 도시의 혜택을 골고루 나누게 한 균형 발전의 씨앗이자 오늘날 생활밀착형 사회기반시설(SOC)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주택 정책이 아파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동네에서 이웃과 함께 쓰던 공동 시설은 단지 내부의 전용 공간으로 바뀌었다. 법이 이를 아파트의 의무 시설로만 규정하면서 정작 그 필요성이 더 큰 단독·다가구 주택지와 저층 주거지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 결과 아파트는 풍족한 시설과 체계적 관리로 쾌적한 생활 환경을 누리지만 아파트 단지 밖 저층 주거지는 주차난, 쓰레기 처리, 택배 접근성 등 기본적 생활 불편이 여전한 도시 서비스의 사각지대로 남게 됐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의 생활만족지수(LSI) 조사에서 서초구는 78.9점으로 1위, 강북구는 65.7점으로 가장 낮았다. 이 격차는 단순히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생활 환경과 공동 시설의 접근성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다.



2018년부터 추진된 ‘생활 SOC 확충 사업’은 아파트에만 적용되던 생활 공동 시설 제도를 저층 주거지로 확장하고 사라졌던 동네 공동 시설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정책적 전환이었다. 그러나 법적 설치 의무가 없어 사업 효과는 제한적이다. 제도적 기반이 없는 정책은 일관성도, 지속성도 잃기 쉽다. 이로 인해 행정 여건과 예산에 따라 지역별 격차가 커지고 인력 부족과 운영 시간 제약으로 시민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이러한 한계는 더욱 분명해졌다. 집 안의 공간만으로는 일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함께 도시의 삶을 지탱하는 공동 시설의 중요성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특히 고령자와 1인 가구 같은 취약 계층에 공동 시설은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기반’이며 그 확충의 필요성은 한층 절실해졌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이미 공동 시설을 삶의 질과 도시 경쟁력의 핵심으로 인식하고 있다. 파리·런던·뉴욕·도쿄뿐 아니라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도시들조차 공동 시설을 도시의 기본권이자 시민의 행복을 위한 필수 기반으로 보고 누구나 걸어서 1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갖추고 있다.

이제 우리도 저층 주거지에 주민을 위한 공동 시설 설치를 법제화해야 한다. 모든 주거지로 확장해 도시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도시 혁신으로 균형 성장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책임을 분명히 하고 민간 위탁 등 실효성 높은 운영 체계와 거버넌스를 세워야 한다. 도시의 미래는 더 나은 일상의 품질에 달려 있다.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도시, 이웃과 함께 일상을 나눌 수 있는 도시가 좋은 동네이고 균형 성장을 할 수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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