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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미 칼럼] 경고등 켜진 한국경제 펀더멘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대미 투자 급증땐 수출 크게 줄 가능성

외화 대량 유출되는데 유입 기반은 약화

기업 국내투자 유인·규제 개선 서둘러야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지난주 한국 정부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간 관세 및 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한미 ‘공동 설명 자료(조인트 팩트시트)’가 발표됐다. 6월 초 새 정부 출범과 함께 1360원대까지 하락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협상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며 상승해 팩트시트 발표 전일에는 1470원대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중 세계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상승률은 0%대에 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환율 상승은 주로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금융 당국의 구두 개입으로 팩트시트 발표 이후 환율은 1450원대로 내려왔지만 이제 고환율의 장기 고착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한미 양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에 의해 결정되는데 한국 경제의 미래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이번 팩트시트에는 정부 주도 2000억 달러, 조선업 관련 1500억 달러, 그리고 8월 한미 정상회담 기간 한국 기업들이 발표한 1500억 달러를 포함해 총 5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가 담겨 있다. 이는 한국의 연간 해외 직접투자 수년치를 앞당겨 지급해야 하는 수준이며 분할 지급이라 해도 이례적인 규모다. 정부 주도 2000억 달러 투자는 연간 상한인 200억 달러로 집행되고 트럼프 임기 내로 약속된 기업 투자는 향후 3년간 매년 500억 달러씩 이뤄지며 별다른 언급이 없는 조선업 관련 투자액은 10년간 분할 지급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연간 대미 직접투자액은 85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역대 최대치였던 2022년 총 해외 직접투자 817억 달러를 넘어서며 당시 대미 직접 투자액의 약 세 배다.

이런 대규모 대미 투자는 한국의 주된 외화 수입원인 수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생산 수출 물량을 미국 현지 생산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더라도 완성품만 해외에서 생산하고 중간재는 한국에서 조달해 수출이 크게 줄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미 정부가 관세장벽 강화 등으로 한국으로부터의 중간재 수입을 어렵게 하고 있는 만큼 이번 대미 투자는 중간재 수출은 크게 늘리지 않고 완성품 수출만 감소시킬 공산이 크다.



수출이 감소해도 장기적으로 대미 투자에서 발생하는 배당 수익이 안정적인 외화 수입원이 될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대미 투자의 수익 배분 구조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원금 회수 전까지는 미국과 한국이 투자 수익을 5대5로 나누지만 원금 회수 이후에는 수익의 9할을 미국이 가져간다. 사실상 2000억 달러의 정부 대미 투자에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외화 유출은 단기적으로 급증하는 반면 외화 유입 기반은 구조적으로 취약해지는 불균형이 불가피하다.

더욱이 이번 대미 투자는 국내 산업 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수 있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해외 직접투자 확대는 고기술 산업의 경우 국내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중간재 수출 증가 등으로 국내 생산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칩스법)에 근거해 첨단산업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고, 수입품 관세를 강화하며, 최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 예외 적용조차 불가능할 만큼 노동시장 경직성과 과도한 규제가 여전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R&D 기지와 핵심 인재, 그리고 대미 투자 기업들의 협력 업체까지 미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국내 첨단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결국 정부는 대미 수출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만성 적자인 관광 수지의 흑자 전환을 위해 해외 관광객 유치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 또한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고용을 촉진할 유인책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와 기업 규제 혁신에 관한 실질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안도할 여유가 없다. 경고등 켜진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 개선을 위해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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