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한류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화장품, 의류, 음식 등 각종 한국산 소비재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 문화·상품에 대한 인기가 K팝(한국 음악) 등 일부 분야에만 국한됐다면 이제는 그 범주가 K뷰티(한국 미용), K푸드(한국 식품), K패션(한국 의류), K드라마(한국 드라마), K웹툰(한국 웹툰) 등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특히 올 6월 공개된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뒤로는 미국에서도 한류가 더 이상 변방의 이색 문화처럼 취급되지 않고 있다. 한국산 화장품의 경우는 ‘샤넬’ ‘디올’ ‘이브생로랑’ ‘시슬리’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산 제품의 대미 수출 규모를 이미 지난해부터 추월했을 정도다. 무엇보다 미국 내 한류의 인기는 중국계 동영상 플랫폼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MZ 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자)가 주도하고 있어 그 미래가 밝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젊은층이 ‘경험과 추억을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미국인들이 한국 문화와 소비재를 장기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일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K뷰티’ 올해 미국 매출 ‘3조 원’, 홀로 37% 급증···소비자 75%가 MZ
CNBC는 지난 27일(현지 시간) 이례적으로 K뷰티에 대한 기사를 내고 “한때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사람들만 주로 썼던 한국 화장품이 미국 시장의 주류로 완전히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CNBC가 인용한 시장조사 업체 닐슨IQ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미국 내 K뷰티 매출은 지난해보다 37% 증가해 20억 달러(약 2조 9000억 원)를 넘길 전망이다. 미국 화장품 시장의 전체 성장률이 올해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홀로 독보적인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한국의 화장품 대미 수출액은 부동의 1위였던 프랑스를 제치고 지난해부터 선두로 올라선 상태다.
닐슨IQ에 따르면 K뷰티 가운데에서도 미국 시장에서 최대 매출원 노릇을 하는 제품군은 기초화장품, 매출 신장 속도가 가장 빠른 상품군은 모발 관리 쪽이다. 색조나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간 융합 상품들의 판매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닐슨IQ의 테레즈 앤 담브로시아 뷰티사업 부문 부사장은 “성장세가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며 “미국의 전체 뷰티 시장 성장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점과 비교하면 K뷰티는 확실히 다른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CNBC는 글로벌 뷰티 전문매체인 퍼스널케어인사이트의 보고서를 인용해 K뷰티 소비자의 약 4분의 3이 MZ 세대라고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주로 틱톡에서 인플루언서들의 체험기와 홍보 영상을 보고 K뷰티 제품을 접하고 있다고 짚었다. CNBC는 K뷰티 상품들이 미국 시장에 처음 상륙한 2010년대 ‘1차 물결’ 때는 주로 소규모 유통 매장이나 아마존 온라인 판매자 등 틈새 시장만 통했다면서 최근의 ‘2차 물결’은 규모와 속도 면에서 그때와 차원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인기 제품군도 색조 화장품부터 모발·두피 관리, 향수, 피부관리 기기 등으로 확장됐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K뷰티 기업과 유통사들이 올해부터 부과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5~25% 관세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지 않으려고 한 노력도 인기 몰이에 한몫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CNBC는 “지난 10년간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K팝 그룹에 대한 인기가 높아진 상황에서 케데헌이 한국 문화의 인기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모든 면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 문화의 인기가 K뷰티를 통해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호평했다.
K뷰티 제품이 불티난 듯 팔리자 미국의 주요 유통기업들 사이에서도 물량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미국 내 1400개 매장을 보유한 화장품 유통 업체 울타의 경우는 올 1분기 한국산 제품의 매출만 38% 급증했다고 밝혔다. 7월에는 한국 브랜드를 소개하는 전문 편집 플랫폼 ‘K뷰티 월드’도 출시했다. 울타는 한국의 올리브영과 같은 사업을 하는 회사다. 울타 경영진은 “K뷰티와의 협업으로 2분기에도 뉴욕 월가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화장품 유통 업체 세포라도 최근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의 체험 매장(팝업스토어) 한쪽 벽면을 스킨케어 등 한국산 제품으로 가득 채웠다. 몇몇 K뷰티 브랜드들과는 독점 공급 계약도 맺었다.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도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늘자 진열대에 에센스, 세럼, 마스크팩 등 관련 제품군을 늘렸다. CNBC는 한국의 올리브영이 내년에 로스앤젤레스(LA)에 미국 첫 매장을 낸다는 소식도 전했다. CNBC는 “틱톡을 통한 입소문, 젊고 다양한 쇼핑객, 울타·세포라·월마트·코스트코 등 소매 업체들의 공격적인 확장 전략이 K뷰티 인기에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KOTRA 한류박람회도 최초로 북미에서 개최…‘K소비재’ 사러 바이어들이 먼저 찾아와
이전까지 주로 아시아권에서만 주류 인기 문화로 대접받았던 한류가 북미 시장에서도 비주류 위상을 벗자 한국 정부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업통상부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2010년부터 시작한 한류박람회(KBEE)를 1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열었다. 지금까지는 비용 대비 효율 문제로 이 행사를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하다가 올해에는 케데헌의 인기를 확인하고 과감하게 돈을 썼다.
이달 6~8일 미국 뉴저지주의 대형 복합 쇼핑몰인 ‘아메리칸드림몰’ 1층에서 열린 ‘뉴욕 한류박람회’에는 북미 185개, 중남미 50개 등 총 235개 바이어(구매자)가 찾아왔다. 이들은 1390건의 수출 상담을 진행하고, 총 1100만 달러(약 160억 원)어치의 수출 계약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화장품, 식품, 의류, 생활용품 등 한국산 소비재가 주요 거래 품목이었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직접 찾은 7일 행사 현장도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의 소비재 상품을 둘러보기 위해 몰려든 현지 소비자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삼삼오오 모여 한국산 화장품 견본품을 사용해 보거나 한국의 패션 트렌드를 알아보려는 소비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배우 하지원 씨와 그룹 마마무 출신 가수 화사 씨, 샤이니 출신 가수 태민 씨가 한류 홍보대사로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각양각생의 인종으로 구성된 한류 팬들은 야광봉까지 손에 들고 홍보대사들을 향해 환호성을 질렀다. 세 홍보대사들은 8일 행사장에서 팬 사인회도 가졌다.
KOTRA에 따르면 케데헌의 인기로 지난 7월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136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는 7월 기준 역대 최다 기록이다. 1~7월 서울을 찾은 누적 관광객 수도 828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9% 급증했다. 한국관광공사는 현 추세라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19년(1750만 명)을 넘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넷플릭스의 세르히오 비나이 글로벌 담당 디렉터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가 지원해 문화를 산업으로 이끈 최고의 성공 사례로 항상 한국을 언급한다”며 “넷플릭스 사용자의 80%는 한국 콘텐츠 경험이 있는데 고향인 멕시코의 친구들도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승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유통전략팀 차장은 “지난달 말로 국립중앙박물관 누적 관람객이 사상 처음으로 500만 명을 돌파했다”며 “박물관 브랜드 상품인 ‘뮷즈’의 매출도 케데헌 효과로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구가하며 지난해보다 85% 급증했다”고 소개했다.
현장에서 만난 전문가들도 미국 내 한류의 인기가 단기에 시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류 전문가인 김숙영 UCLA 연극·공연학과 교수는 “미국인들은 관찰하는 것보다 참여할 수 있는 문화를 좋아한다”며 “한류가 최종적으로 생활 속에 녹아드는 단계로 가야 하는데 미용 산업은 이미 그 수준에 진입했고 패션과 식품 부문도 그러한 단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경성 KOTRA 사장도 같은 날 특파원 간담회에서 “소비재는 생활 습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가격이 조금 올라도 소비자들이 쉽게 바꾸지 않는다”며 “과거에는 우리 기업들이 찾아다녀야 했던 현지 바이어들이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먼저 오는 걸 보고 글로벌 유행 선도 도시이자 최대 소비 시장인 뉴욕에서도 한류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자신했다.
뉴욕 추수감사절 퍼레이드에도 ‘케데헌’ 더피가 ‘둥실’…로제 ‘아파트’는 그래미상 후보로
지난달 27일에는 한국에서 온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전 세계 연주자의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에서 사상 처음으로 초청 공연을 갖기도 했다. 한국이 수십 년 전만 해도 ‘클래식 불모지’ 취급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인 일이었다. 이날 서울시향은 카네기홀의 주 연주홀인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관현악곡 ‘인페르노’와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을 연달아 공연했다.
지휘봉은 네덜란드 출신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잡았다. 츠베덴 감독은 지난해 초 서울시향에 합류하기 전까지 뉴욕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인물이다. 인페르노는 유명 한류 콘텐츠인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 작곡가의 첫 관현악곡이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네덜란드 레지덴티 교향악단의 상주 연주자인 김봄소리 씨와 협연했다.
케데헌의 인기가 미국 젊은층을 강타하자 현지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에도 작품 속 호랑이 캐릭터 ‘더피’의 풍선이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등장했다. 더피 풍선은 이달 27일 ‘메이시스 퍼레이드’ 사이에서 하늘에 뜬 채 4km 정도를 유유히 행진하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메이시스 퍼레이드는 1924년 시작돼 올해로 99회째를 맞은 행사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을 상징하는 가장 화려한 행사로 꼽힌다.
케데헌의 까치 캐릭터인 ‘서씨’도 화분에 앉은 모양의 풍선으로 더피의 뒤를 따랐다. 더피와 서씨는 케데헌에서 남자주인공 ‘진우’의 편지를 여자주인공 ‘루미’에게 전달하는 초자연적 존재들이다. 현장에서는 케데헌에 나오는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의 노래를 부른 한국계 미국인 가수 겸 작곡가 이재와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가 애니메이션 속 히트곡 ‘골든’을 부르기도 했다. 헌트릭스의 매니저인 ‘바비’ 역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켄 정도 무대에 함께 올랐다.
골든을 비롯한 케데헌 음악은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의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최우수 팝 듀오·그룹 공연’ ‘최우수 영상물 노래’ ‘최우수 리믹스 음악’ ‘최우수 영상물 사운드트랙 음반’ 등 총 다섯 개 부문에 걸쳐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미 시상식 후보로 거명된 K팝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달 7일 레코딩 아카데미가 발표한 제68회 그래미 시상식 후보 명단에는 블랙핑크의 로제 씨가 미국 가수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히트곡 ‘아파트’도 있다. 아파트는 올해의 노래, 최우수 팝 듀오·그룹 공연과 ‘올해의 음반’ 등 총 세 개 부문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하이브(352820)의 한미 합작 걸그룹 ‘캣츠아이’가 ‘신인상’ 후보로, 한국의 순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최고의 뮤지컬 극장 앨범’ 후보로 각각 지명됐다.
그래미 시상식은 내년 2월 1일 미국 LA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열린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이에 대해 “K팝은 지난 10년간 세계적인 현상이었는데도 그래미 시상식에서 매번 외면받았지만 올해는 다르다”며 “아파트와 골든의 후보 지명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평가했다. LA타임스도 “K팝이 주류 음악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며 “그래미 심사위원들이 케이팝을 팬덤 중심 현상이 아닌 예술적 가치로 평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전환점”이라고 짚었다.
한류 바람이 문화 최선진국인 미국까지 번지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산 소비재 판매도 한층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10년간 불씨를 키워 이제 막 큰불이 붙는 상황이라 기업과 정부, 국민이 합심해 자신감을 갖고 대응해도 될 때다. 미국의 미디어와 자본을 활용하면 우리의 문화와 생활용품의 인기를 다른 지역까지 자연스럽게 옮기기 쉬워지는 까닭이다.
※'트럼프 스톡커(Stocker)'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미국의 시장·기업·정책·정치·외교 관련 현장 이야기와 현안 분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구독하시면 유익한 미국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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