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빌라 옥상. 겹겹이 둘러싸인 포장지 12겹을 벗기자 가로 35cm, 세로24cm 크기의 김치통 하나가 나타났다.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안에는 무게 1.7kg에 불과한 어린아이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은 이미 심하게 부패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미라처럼 시랍화된 상태였다.
믿기 어려운 아동학대 및 사체 은닉 사건의 전말은 2022년 12월 6일 의정부지방법원이 친모 서모(34)씨와 전남편 최모(29)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 사유를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에 도착한 두 사람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시신을 유기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법원으로 들어갔다. 특히 남편 최씨는 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또 다른 아이 역시 생후 약 100일 만에 사망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된 것이다.
△부모는 왜 15개월 딸을 방치했나=서씨는 2020년 1월 초 경기 평택시의 자택에서 15개월 된 딸이 숨지자 시신을 약 3년간 김치통에 넣어 은닉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망하기 약 일주일 전부터 딸이 열과 구토 증상을 반복했음에도 서씨는 딸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방치했다.
또 서씨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전남편 최씨를 면회하기 위해 2019년 8월부터 딸 사망 전까지 70여 차례에 걸쳐 돌 전후의 아이를 집에 둔 채 외출한 사실도 확인됐다. 딸이 숨진 이후에도 서씨는 양육수당 330만 원을 계속 수령했다.
최씨는 출소 후 서씨와 함께 딸의 시신을 캐리어에서 김치통으로 옮겨 서울 서대문구 소재 본가 빌라 옥상에 유기했다. 최씨 역시 양육수당 300만원을 부정수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당초 두 사람에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과정에서 이를 제외했다. 사건 발생 3년이 지나 수사가 시작된 점, 사망 전 병원 미수진과 실제 사망 원인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시신의 부패가 심해 정확한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발견 당시 아이 시신 머리뼈 쪽에 구멍이 있었지만, 국과수는 “생김새 등으로 봤을 때 사후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했다.
△"뭔가 이상한데?"...포천시의 직감이 범행을 밝히다=은폐된 범행은 3년 만에 경기도 포천시의 아동 전수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딸 A양은 포천시의 친척 집 주 소로 주민등록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포천시는 A양이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점, 1년 이상 의료 기록이 없다는 점 등을 수상히 여겨 심층 조사에 나섰고, A양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서씨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다. 하지만 서씨가 제대로 응답하지 않자 포천시는 결국 112에 실종신고를 했다.
이어진 확인 과정에서 부모의 진술은 오히려 의혹을 키웠다. 아버지 최씨는 "서씨에게 '딸을 지인에게 맡겨놨다'고 들었다"고 했고, 어머니 서씨는 "2021년쯤 평택에 사는 지인에게 딸을 맡겨놨다"며 지인 연락처를 시청 담당자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시청 담당자가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자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받았고, 서씨는 이후 연락을 끊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서씨를 조사하자 그는 처음에는 "아이를 길에 버렸다"며 딸의 사망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프로파일러 2명이 4차례 투입돼 진술의 모순점을 추궁하자, 두 사람은 결국 딸이 사망했다는 사실과 시신을 유기한 경위와 장소 등을 모두 자백했다.
서씨는 “아침에 보니 아이가 죽어있었다”고 주장하며 시신을 숨긴 이유에 대해서는 “나 때문에 아이가 죽은 것으로 의심받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숨진 아이는 또 있었다...100일 된 영아도 사망=더 충격적인 진실은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또 다른 자녀 역시 생후 약 100일 만에 숨졌다는 점이다.
2015년 12월 서씨와 최씨 사이에서 태어난 B군은 생후 100일 무렵 자다가 엎어져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온 B군을 대상으로 엑스레이 촬영한 결과 두개골에 큰 골절이 있었고, 갈비뼈와 팔뼈에서도 골절 후 치유된 흔적이 발견됐다.
당시 부모는 "아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생긴 골절"이라고 주장했다. 아이의 팔에 있던 골절은 "첫째가 우연히 밟아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분석은 달랐다. 전문가들은 "이것은 학대, 저 정도로 때리면 죽지 않을까 이런 정도의 충격들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특히 두개골 골절은 성인 남성이 머리뼈가 고정된 상태에서 강하게 내리쳤을 때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즉, 프로 권투 선수가 날리는 주먹에 가까운 외력이 있어야만 이러한 골절이 생긴다는 것.
그럼에도 당시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으로 결론났다. 골절이 학대 정황을 시사하지만, 직접적인 사망 원인인지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씨와 최씨는 학대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완강하게 거부했고, 경찰도 사건을 결국 내사 종결됐다.
△법원이 내린 '최종 판결'은=사건 발생 약 5년 6개월 만에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졌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은 2022년 4월 16일 친모 서씨에게는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죄의 성립, 증거재판주의, 사체 은닉죄에서 공모 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서씨에게 징역 7년 6개월,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80시간, 취업제한 5년을 선고했다. 사체은닉 및 사회보장급여법 위반 혐의를 받은 최씨에게는 징역 2년 4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서씨의 형량을 징역 8년 6개월로 가중했고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80시간, 취업제한 5년을 선고했다. 최씨의 형량은 1심과 동일하게 유지됐다. 대법원은 이 같은 원심 판단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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