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전장이 언어(Language) 중심 가상 공간에서 현실(Physical)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텍스트를 학습해 답변을 내놓는 거대언어모델(LLM)을 넘어 실제 물리 법칙을 인지하고 로봇이나 자율주행 등 실생활에 적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가 핵심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승패를 가를 핵심 열쇠로 반도체를 넘어선 한국의 제조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AI 고도화 과정에서 물리적 데이터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기존 챗GPT나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는 텍스트나 영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해 언어 능력은 뛰어나지만 중력이나 마찰력 등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빅테크 AI, 텍스트·영상 학습 막바지
다음 단계 ‘물리 법칙’ 실질 데이터 필수
다음 단계 ‘물리 법칙’ 실질 데이터 필수
AI는 이미 온라인 상 데이터를 대부분 학습한 단계다. 사람으로 치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갈 때가 온 것이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배울 과목이 많아지고 이해의 폭이 깊어지듯이 AI도 이제는 현실 세계를 배울 때가 온 것이다. 실제 최근 공개된 일부 영상 생성 AI가 물리 법칙에 어긋나는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학습 데이터가 텍스트와 2차원 영상에 국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빅테크 기업들은 가상 공간에 현실을 똑같이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만으로는 현실의 모든 돌발 변수를 구현하기 어렵다. 공장 가동 시 발생하는 미세한 진동이나 온도 변화, 장비의 오차 등 실제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있어야만 AI가 현실 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판단 가능하다.
‘제조 강국’ 한국 굴뚝 산업의 재발견
빅테크 군침, 양질 ‘현장 데이터’ 풍부
빅테크 군침, 양질 ‘현장 데이터’ 풍부
구글이나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방대한 웹 데이터는 확보했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부족하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자동차(현대차·기아), 조선(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2차전지(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등 첨단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춘 국가다. AI가 물리적 지능을 학습하기 위한 최적의 데이터 훈련장인 셈이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순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칩 수급 차원을 넘어 엔비디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인 옴니버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데이터 확보 전략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로봇 생산 공정 데이터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정밀 제조 데이터가 결합될 때 엔비디아의 AI 경쟁력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삼성·SK, 칩 공급망 넘어 파트너로
‘데이터 주권’ 쥔 한국 기업의 기회
‘데이터 주권’ 쥔 한국 기업의 기회
다가오는 피지컬 AI 시대에 한국 기업들의 위상은 단순 반도체 생태계 일원으로서 역할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과거 테슬라가 주행 데이터를 독점해 자율주행 시장을 선점했듯 제조 데이터를 보유한 한국 기업들이 빅테크와 협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시장 환경도 한국에 우호적이다.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 아마존의 맞춤형 반도체(ASIC)인 트레이니움 등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국내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수요는 구조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SMC의 생산 능력 포화에 따른 낙수 효과까지 더해지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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