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년 전 창제된 훈민정음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 발판을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AI)이다.
AI를 작동하는 언어는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자연어가 곧 AI의 언어다. 이제는 코딩도 말로 한다.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을 활용하면 간단한 애플리케이션 정도는 우리말로 구현할 수 있다.
말과 글이 중요해진 이때 훈민정음, 즉 한글이 ‘AI 최적화 언어’로 주목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글은 전 세계 7000개 언어 가운데서도 가장 과학적이고 디지털 친화적인 문자 체계를 가졌다. 한글의 음소(音素)체계는 디지털의 이진 구조와 닮았고 한글의 작동 체계는 AI의 정보처리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앞으로 한글의 구조적 강점에 AI 기술이 융합된다면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는 어쩌면 세계에서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민족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단, 마지막 관건은 한글 그 너머에 있다. 한글이 아무리 과학적이라 해도 한글을 읽고 쓰는 과정에서 제대로 이해하고 사고하지 못한다면 AI 작동 언어로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글을 정확히 해석하고 사고로 확장하는 문해력이야말로 모든 학습의 기초 체력이자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반대로 우리 아이들의 ‘한글력’, 즉 문해력은 추락하고 있다. ‘족보’를 ‘족발 보쌈 세트’로 이해하는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우스갯소리로 언급될 정도다.
문제의 원인은 기초학력 교육을 경시하며 공교육의 입지를 줄여온 우리 교육 안에 있었다.
교실 내에서 기초학력 평가가 이뤄져야 선생님은 아이들의 수준을 정확히 알고 맞춤형 지도를 할 수 있다. 학교별 기초학력 평가 결과가 공개될 때 지방의회와 교육청 역시 어떤 교육 지원이 필요한지, 각 학교의 학습 지원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교실 내 기초학력 평가는 ‘학교 줄 세우기’ ‘일제 고사 부활’과 같은 실체 없는 비판에 밀린 채 기초학력에 대한 진단도, 진단에 대한 분석도 이뤄지지 못했다.
AI 키즈의 문해력·수리력 향상을 위해 속도를 내야 할 때 우리 교육은 거꾸로 브레이크를 밟아왔다. 설상가상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의 문이 닫히면서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과 수리력, 즉 교육의 기초 체력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해갔다.
2022년 출범한 제11대 서울시의회는 ‘기초학력’을 서울 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으로 정했다. 문해력과 수리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기초학력 보장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3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해 기초학력 진단을 위한 평가 도구 개발에 돌입했다.
2023년 ‘서울 학생 문해력·수리력 진단 검사’의 첫 평가가 이뤄졌다. 기초학력 수준을 알기 위해 사교육의 힘을 빌려야 했던 학생·학부모들은 뜨겁게 호응했다. 참가 학생의 숫자도 매해 늘고 있다. 시행 첫해 4만 5000명이 참가한 데 이어 이듬해는 9만 4000명, 올해는 10만 2000명까지 늘었다. 서울의 시스템은 부산으로, 국경을 넘어 재외 한국학교에까지 도입, 시행되고 있다.
방향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찾듯이 기본으로 돌아가면 길이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고 복잡한 미래를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교육으로 기초가 탄탄히 다져져 있다면 낯선 미래는 신나는 도전의 무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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