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 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저는 피해자의 목을 조른 적 없습니다."
2023년 12월 11일. 검찰은 '등산로 성폭행 살인사건' 피의자 최윤종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그는 법정에서 이같이 말하며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다.
반성 없는 태도와 높은 재범 위험성을 이유로 검찰은 사형을 요구했지만, 1·2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택했다. 불우한 가정환경, 정신질환을 고려해야 하고 사형은 최후의 수단이라는 판단에서다.
2024년 8월 29일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무기징역수가 20년 복역 후 가석방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추가로 명령하며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조치를 더했다.
최윤종은 항소심 재판까지 총 21번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는 반성문에서 저도 제가 법원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너클을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구매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한다”, “몸이 안 좋아서 백수생활을 했던 것 빼면 평온한 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제 자신도 이해가 안 간다”고 적었다.
이에 재판부는 "건강 등 불편을 호소하며 선처를 바라는 반성문"이라며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죄책감이 있는지 의문을 잠재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범행 전날까지 ‘계획 흔적’…너클 구입·CCTV 사각지대 탐색=사건은 2023년 8월 17일 오전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서 발생했다. 오전 9시 55분 집을 나선 최윤종은 약 1시간을 걸어 공원으로 이동했고, 둘레길 입구에서 30분 넘게 배회하며 성폭행 대상을 물색했다.
오전 11시 40분께 등산로를 지나던 30대 여성 A씨가 그의 표적이 됐다. 최윤종은 너클을 낀 채 A씨를 폭행했고, A씨가 "살려달라"며 강하게 저항하자 "너 돌머리다. 왜 안 쓰러져?"라고 조롱하며 목을 조른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비명을 들은 등산객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 최윤종은 오후 12시 10분쯤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하지만 경찰 출동 당시 A씨는 이미 맥박·호흡·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A씨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이틀 뒤인 8월 19일 사망했다. 사인은 경부 압박 질식에 의한 저산소성 뇌 손상이었다.
숨진 A씨는 방학 중 연수 참석을 위해 출근하던 초등학교 교사였다.
사건 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야산 등산로 입구에는 구청이 ‘2인 이상 동반 산행’을 권장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현수막에는 “안전을 위하여 2인 이상 동반 산행 바랍니다. 인적이 드문 샛길보다 이용객이 많은 정식 등산로(큰길)를 이용합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등산로 안전에 대한 시민 불안이 고조된 상황을 보여줬다.
한편 경찰은 처음에 '강간상해죄'를 적용해 조사했지만 A씨의 사망 이후 혐의는 '강간살인죄'로 변경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성폭행이 미수에 그쳤다고 판단했지만, 성폭력범죄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는 피해자가 사망하면 기수 여부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돼 혐의가 바뀌진 않았다.
체포 당시 최윤종은 출동한 경찰에 "나뭇가지가 떨어져 여성이 넘어졌다"며 범행을 부인했고, 심폐소생술(CPR)을 하던 경찰에게 "목이 마르니 물을 달라"고 요구하거나 "너무 빨리 잡혔다"는 혼잣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기사 참고해 계획한 범행=경찰 조사 결과 최윤종은 "강간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휴대전화·컴퓨터 포렌식에서도 범행 전 '너클', '성폭행', '살인', '살인 예고' 등을 검색한 기록이 확인됐다.
그는 사건 4개월 전부터 철저히 범행을 준비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너클을 구입하고 등산로 일대를 여러 차례 답사하며 CC(폐쇄회로)TV가 없는 지점을 물색했다.
특히 최윤종이 '부산 돌려차기 사건' 관련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읽은 정황도 드러났다. 그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보도를 보고 피해자를 기절시킨 뒤 CCTV가 없는 곳에서 범행을 저지르려 했다"고 진술했다.
범행 이틀 전에는 휴대전화에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차지한다", "인간은 기회를 잡아야 해" 등 메모를 남기며 범행 의지를 다진 정황도 확인됐다.
한편 수사 과정에서는 최윤종의 과거 전력도 드러났다. 입대 두 달 만인 2015년 2월 강원 영월군 혹한기 훈련 도중 화장실에 간다며 이탈한 뒤, 총기와 실탄을 지닌 채 탈영했다.
당시 최윤종은 한 의류 매장에서 군복을 갈아입으려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업주의 신고로 탈영 2시간 만에 검거됐고, 다행히 별다른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군대 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공원·등산로에 ‘지능형 CCTV’ 확대…안전 사각지대 줄인다=서울시는 올해 12월까지 서울 시내 공원 108곳에 지능형 CCTV 2711대를 구축할 예정이다. 해당 사건과 같은 범죄에 신속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지능형 CCTV는 AI가 배회·쓰러짐 같은 이상 행동을 즉각 분석해 통합관제센터에 자동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이다. 사전에 폭행·월담·충돌·쓰레기 투기·산불 등 다양한 영상 데이터를 학습해 돌발 상황을 미리 감지할 수 있다.
연내 공원 57곳에 새로 설치되는 CCTV 1110대는 모두 지능형이며, 종로구 삼청·와룡·효창 근린공원 등에 설치된다.
또 중랑구 봉화산 근린공원, 구로구 고척 근린공원, 강남구 신사 근린공원 등 공원 14곳에 있던 노후 CCTV 160대는 지능형으로 교체된다. 서울숲 공원, 경의선 숲길공원, 여의도 공원, 선유도 공원 등 48개 공원에 있던 일반 CCTV 1441대 역시 지능형으로 전환된다.
서울시 측은 "기존 CCTV는 사고 발생 후 사후 조치에 주로 쓰였으나, 지능형 CCTV는 공원 내 산불, 폭행 등 돌발 사고를 미리 감지하고 현장에서 바로 조치하도록 하는 알림 기능까지 갖췄다"며 "산책로, 등산로의 안전 사각지대를 계속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2026년까지 서울 전역에 설치된 모든 CCTV를 AI 기반 지능형 CCTV로 교체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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