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對)베네수엘라 전략이 직접 통치 대신 군사 압박을 통해 미국에 유리한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를 통치(run)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상군 파병에 따른 여론이 부담스럽고 외국에 대한 불간섭을 주장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반발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워싱턴DC로 향하는 에어포스원에서 ‘베네수엘라가 언제 선거를 치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라가 엉망이다. 적절한 시기에 선거를 치르겠지만 망가진 나라를 복구하는 게 주된 사안”이라며 조기 대선에 선을 그었다. 대신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을 앞세워 베네수엘라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직접 통치하는 것보다는 현 행정부를 압박해 ‘친미 기조’로 길들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은 베네수엘라 해안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해 추가 공습을 위협하고 마두로 충성파에 대해 공격을 암시하며 최후 수단으로 지상군 파병 위협을 이어감으로써 베네수엘라 당국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전까지 베네수엘라에 대한 원유 수출 봉쇄와 마약 운반선 공격, 제재 위반 선박 나포 등 미국의 압박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베네수엘라 석유다. 베네수엘라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가 매장돼 있지만 미국의 각종 제재 등에 현재 산유량은 많지 않아 세계 21위 수준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와 베네수엘라 재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완전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베네수엘라에 매장된 석유 자원에 대해서도 “우리가 모든 것을 운영할 것”이라고 답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석유 기업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베네수엘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로드리게스 부통령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시사했다”며 “노골적인 ‘함포 외교(gunboat diplomacy)’ 선언이자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널리 비판받아 온 19세기 미국의 서반구 제국주의 정책을 수용하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함포 외교는 해군력 등 군사력을 바탕으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외교 방식을 말한다.
미국은 다른 핵심 광물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베네수엘라에는 수억 톤의 니켈과 보크사이트, 수천 톤의 금이 매장돼 있다”며 “특히 오리노코 광산 지대에 집중돼 있다. 이곳은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최대 규모의 광물 및 광산 지역 중 하나”라고 적었다.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통제로 미국이 관련 공급망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베네수엘라에서도 이들 광물 확보에 나설 수 있다고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재건하겠다는 구상을 실현하는 데 1000억 달러(약 144조 원)에 달하는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와 험로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 라이스대 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량이 정점을 찍었던 1970년대 수준으로 되돌리려면 셰브런·엑손모빌·코노코필립스 등 기업들이 향후 10년간 매년 약 100억 달러씩 투자해야 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더구나 베네수엘라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로이터는 “블라디미르 파드리노 국방장관, 디오스다도 카베요 내무장관의 경우 군사 및 정보기관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미국의 구상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의 필 건슨 분석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군부가 친미와 반미 세력으로 나뉘어 상황이 일종의 내전으로 비화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미국이 직접 운영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리스크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이 석유 인프라 보호를 위해 배치되다면 마두로 정권 내 강경파나 국내 범죄 조직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는 미국을 베네수엘라 내 분쟁에 더 깊이 끌어들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베네수엘라는 최대 1500억~1700억 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의 논의도 불가피하다. 아울러 막대한 차관을 제공한 중국과 채권 회수 문제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정교한) 계획 없이 독재자를 축출해 후과를 보였다”며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듯 보인다”고 꼬집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lassic@sedail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