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모가 하는 일은 범인 추적의 방향을 잡도록 도와 주는 것. 그가 바늘을 직접 찾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바늘을 찾아야 할 건초더미의 범위는 대폭 좁혀주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장 강력한 수사 도구로 수학 방정식을 활용한다.
47세의 로스모는 범행현장 분석법으로 알려진 범인 은신처 추적법(CGT:Criminal Geographic Targeting)의 발명자이자 열렬한 주창자이기도 하다. 그가 CGT를 이용해 추적하는 연쇄 살인범과 방화범, 강간범, 살인범들은 가장 위험한 범죄자들로 이들의 수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잔인해지면서 결국 체포될 때까지 범행을 계속하는 성향이 있다.
로스모는 <양들의 침묵>과 같은 영화에 등장해 유명인사가 된 FBI 퀀티코 연수원의 행동평가단(BAU) 소속 범행현장 분석 요원들과는 전혀 다르다. 로스모는 마을을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는 범죄자의 유형이나 나이, 인종, 과대망상증 여부나 아버지와의 문제 등에 관해 알아낼 수도 없지만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는 특별한 관심도 없다. 그의 관심사는 범인의 범행 장소. 로스모는 이 장소로부터 대개 범인이 거주할 확률이 가장 높은 장소를 계산해 낸다.
라파예트에서 로스모와 수사팀장 맥컬란 갤리언은 3일 연속 시가지를 따라 걸으며 범행 현장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런 다음 로스모는 흘치기 염색 셔츠와 비슷한 출력물을 컴퓨터로 뽑아냈다. 남보라색부터 진노란색까지 이 출력물에 인쇄된 다양한 색띠들을 이용해 경찰은 수색 장소의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이를 통해 수색 장소가 800㎡ 이내로 좁혀지고 수사 대상도 이 지역에 사는 12명의 용의자들로 압축되자 수사관들은 범인 체포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용의자들이 한 명씩 DNA검사를 통해 혐의가 없음이 밝혀지자 이런 희망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던 중 갤리언은 장난전화로 생각해 무시할 뻔 했던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 이 제보자가 지목한 사람은 갤리언도 알고 있는 경찰관 랜디 코모였는데, 그는 마을 바로 외곽에 있는 경찰서의 부보안관으로 스테판 킹처럼 생긴 쾌활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심심풀이 삼아 갤리언은 코모의 주소를 확인해 로스모의 범인 거주 가능 지역 지도와 비교해 보았지만 한참 빗나간 곳이었다.
그래도 갤리언은 조사를 마무리하려고 코메옥스의 개인신상 서류를 들쳐 보다가 강간 사건 발생 당시 코모가 다른 곳에 살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이 주소를 로스모의 지도와 대조해 보던 갤리언은 깜짝 놀라 심호흡을 했다. 코모가 살던 집이 로스모의 ‘경고 지역’과 일치했던 것이다.
갤리언은 코모에게 감시 요원을 붙였다. 코모가 담배 꽁초를 버리자 감시 요원이 이를 수거해 분석실로 보내 DNA를 대조했다. 갤리언은 거리에서 코모와 마주보고 서서 조 프라이데이처럼 “이제 끝났어”라고 나직히 말했다.
이 사건에 관해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흥미를 느꼈다. 범죄현장 분석법의 대가라고 하면 옛날 영화에서 수사관들이 큰 지도에 박힌 빨간 압정들을 따라 한 번 훑어본 다음 범인이 다음에 어디서 범행을 저지를지 추측해내는 장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범행현장 분석법은 예측용이 아닙니다”라고 로스모는 말한다. “범행 현장의 위치를 예측하는 데 주안점을 두진 않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일을 알아내려고 무리하기 보다는 로스모는 범죄가 발생한 최초 시간과 장소, 즉 중심을 조사한다.
“조그만 금속 물체가 물줄기를 치면 원형으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스프링클러 아시죠?” 로스모가 묻는다. “그걸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번 물방울이 이 원 안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긴 한데’ 정확히 어디에 떨어질지는 모르는 거죠. 하지만 스프링클러를 치우게 한 다음 물자국의 패턴을 들여다 보면 전 스프링클러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할 수 있어요.”
다시 밴쿠버 얘기로 돌아가, 로스모가 세계 최초의 범죄현장 분석단 책임자였을 때 사무실 문 손잡이에 걸린 표지판에는 “베이츠 호텔 : 내 방 청소 좀 부탁해요.”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워싱턴 DC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이보다 더 기발한 것이 있다. 그의 창 턱에는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1941년작 <말타의 매> 원작이 놓여 있고, 책장에는 로스모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마이클 스레이드의 소설 <불타버린 유골(Burnt Bones)> 한 권이 꽂혀 있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 그는 바젤 빵을 먹고 있었는데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까지도 한 번에 해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옷차림새를 보니 검정 구두에 검정 바지, 검정 셔츠로 온통 검정 일색인 것이 조사중인 보이지 않는 범인들에게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말끔하게 면도를 해 파르스름해 보이기까지 하는 로스모는 손잡이나 열쇠가 없는 벽 같았다. 억양조차도 피터 제닝스처럼 별 특징이 없었다. 은행이나 골목길, 혹은 범죄 현장에서 그와 부딪쳤어도 나중에 그를 다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로스모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을 하려고 하면서 연기자 모집 공고에 쌀쌀맞게 이렇게 써 놓는 셈이다. “연기자 양반들 가운데 땅딸막하고 40대이면서 대머리인 사람 있으면 셜록 홈즈 역을 하게 될거요.”
사무실은 워싱턴 D.C.내 듀폰 써클이라는 지역에 있다. 이곳은 경찰의 법 집행 훈련을 담당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인 경찰재단의 본부이다. 로스모는 조사담당 국장이다.
이미 책상을 덮고 있는 전화 메시지들은 그가 출장으로 사무실을 비운 사이 차곡차곡 쌓인다. 하지만 수사 자문역을 맡아 수많은 수사에 참여하며 영국에서 호주까지 1년에 16만km를 돌아다니던 예전 생활에 비하면 요즘은 외근이 많이 준 편이다. 현재 그는 업무 시간 외에 무보수로 수사를 돕는다.
전화가 울리자 로스모는 잠자코 30초 동안 수화기에 귀를 기울인다. “저런, 정말 그런 것들이 서로 연관이 있다고 믿는가 보죠?”라고 그가 말한다. 유럽에서 발생한 연쇄 강간 및 성폭행 사건에 관한 전화였다. FBI는 로스모 투입을 제안했다. 그는 요원에게 전화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했다. 로스모는 다른 범죄현장 분석 요원과 아이디어를 나누며 동행하는 걸 좋아한다. 우선 로스모는 상황 브리핑을 받아야 하고 그 지역의 지도도 필요하다.
라파옛 강간 사건은 로스모의 명성을 드높여준 여러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5년전 밴쿠버의 빈민가에서 창녀들이 한 명씩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로스모는 가장 먼저 연쇄 살인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지만 묵살당했다. 그후 실종된 여성들 중 일부의 시신이 그 지역 돼지 농장 주인 저택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농장 주인은 15건의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2년 전 인터폴은 범죄현장 분석법을 공식승인했다. 현재 인터폴은 용의자로부터 DNA 채취가 필요한 사건의 경우 이 기법 사용을 추천한다. 그리고 지난해에 심리분석가 단체인 국제범죄수사분석협회는 범죄현장 분석법을 기꺼이 수용했다.
사실 퀀티코의 영화에서 나이 든 교도관 역을 했던 사람도 로스모의 팬이다.
“우리는 서로를 존경하죠”라고 유명한 연쇄 범죄 수사관이자 전직 FBI 연수원 교관인 로이 헤이즐우드는 말한다. 그는 로스모와 함께 디스커버리 채널의 요청으로 수사가 재개된 섬뜩한 ‘알파벳 살인사건’을 맡았다.
하지만 10월이 되어서야 몽고메리 카운티의 경찰서장인 바니 포사이드는 로스모에게 전화를 걸어 한 살인극에 관해 의견을 구했는데,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워싱턴 D.C.에 전세계로부터 몰려든 취재진들이 장사진을 이루면서 ‘범죄현장 분석법’은 저녁 식사시간의 단골 화제가 되었다.
1991년 어느 날 도쿄 남쪽 지역에서 신칸센을 타고 나고야로 가던 중 범죄현장 분석법의 핵심인 수학 방정식이 로스모의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올랐다. 로스모가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 지나가는 전원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가 또렷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욕조에 들어가 있던 아르키메데스처럼 로스모는 수년동안 연구해오던 숙제를 떠 올리면서 앉아 있었다.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 버나비 소재 사이몬 프레이저 대학에서 범죄학 공부를 하는 동안 로스모는 그당시 이미 범죄 패턴 이론을 대폭 발전시켜 존경을 받던 폴과 패트리샤 브랜팅햄 부부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두 부부는 기존의 두 가지 컨셉을 범죄학에 도입해 이를 결합한 다음 효과적인 예측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첫 번째 컨셉은 범인들이 자신의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거주지 주변에 ‘완충 지역’을 둔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거리 조락(distance decay)’이라는 수학적 함수인데, 이것은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이동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으로 범죄 행위가 폭력적일수록 더 멀리서 범행을 저지르는 패턴을 보여준다.
브랜팅햄 부부는 완성품을 내놓지 못했다. 마법의 알고리즘을 찾아내지 못했던 탓이다. 하지만 야심찬 후계자를 위한 기반을 닦아놓았다. 이 후계자는 새학기가 시작한 지 2주만에 12학년차 수학 능력 인정 시험을 치뤄 만점을 받음으로써 그해에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될 정도의 수학 천재였다. 그는 범죄 패턴을 이론과 실제 양면에서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즉 밴쿠버의 거친 빈민가에 뛰어 들어 속속들이 파악한 다음 이론 연구에 몰두해 캐나다 최초의 박사학위 소지 경찰관이 된 그런 사람이다. 이 사람은 브랜팅햄 부부가 남긴 자료를 살짝 들춰만 봐도 범인의 이동 경로로부터 간단하게 범인의 거주지를 계산해낼 수 있음을 파악해 낼 정도로 총명하다.
기차가 질주하는 동안 로스모는 냅킨에 방정식을 적기 시작했는데 방정식이 너무 길어서 냅킨을 한 장 더 꺼내 계속 적어 내려갔다. 그 이후 몇 달 동안 미세한 변화를 가한 후 결국 나타난 방정식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언뜻 보면 꽤 복잡해 보이는 이 방정식은 사실 아주 기본적인 두어 가지 원리들을 보여 준다. 로스모는 브랜팅햄 부부의 범죄 패턴 이론을 약간 변형해 ‘최소 노력(least effort)’ 원리라는 것을 추가했다. 이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반드시 비용대비 효과를 분석해 본 후에야 움직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유를 사러 읍내를 가로질러 가지는 않지만 스노우 타이어를 살 경우엔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주요 원리는 ‘일상적 행위 이론’인데, 이에 따르면 범죄는 보통 친숙한 상황이나 기회가 주어질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범죄가 발생하려면 “범죄동기가 생긴 범인이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와 마주쳐야 합니다.
” 범죄자의 행동은 예전에 그가 내렸던 일상적인 결정들의 결과이고 그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장소에 좌우됩니다. 나중에 로스모는 냅킨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방정식을 알고리즘으로 짜 결국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오리온 성좌의 ‘사냥꾼’이라는 별 이름을 딴 이 라이겔 프로그램은 이곳 워싱턴 D.C.의 델 펜티엄 4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다.
로스모는 의자를 돌려 라이겔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려고 자료철에서 한 사건 기록을 꺼내 스크린 위에 올려 놓는다. 자료는 1990년대에 온타리오주 미시사우가에서 연쇄 성폭행 범죄를 저지르며 돌아다니던 리 마빈 페인에 관한 기록이다.
페인이 희생자들을 공격했던 장소들이 이 도시 지도 위에 빨간 점들로 표시되어 있다. 샌드위치처럼 만들어진 라이겔은 로스모의 회사인 엔바이론멘탈 크리미놀러지 리서치사의 직원들이 뱅쿠버에서 작성한 기초 코드와 인터페이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라우팅 소프트웨어인 맵포인트로 구성된다.
라이겔은 자료 점들을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로스모의 알고리즘을 적용해 격자상의 미세한 4만 개 사각형들 중 한 개인 ‘히트 스코어’가 강간범의 활동 근거지인 ‘앵커(anchor) 포인트’일 확률을 계산해낸다. 라이겔이 44만 번의 연산을 수행한 후 10초 후에 작업이 끝나면 스크린상에 그래픽이 나타난다. 이 그래픽은 등고선이 있는 지도처럼 생겼다. 지도의 한쪽 끝으로 불이 번지는 듯한 아메바 형태가 나타나는 ‘피크 프로파일’ 지역은 원래 조사 면적의 약 5%를 차지하는 곳으로 로스모가 컴퓨터에게 보여달라고 지시한 부분이다. “이 사건의 경우 범인은 이곳에 살았죠.” 가운데 잇는 빨간 ‘핫 존’의 언저리에 있는 노란 부위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바로 이곳이 전체 지역 중 2%에 해당하는 히트 스코어로 경찰은 몇 블록 크기인 이곳을 수색해 결국 리 마빈 페인의 거주지를 찾아내게 되었다.
로스모가 또다른 명령어 키를 치자 봉우리가 두개인 화산 모양이 평면에서 솟아 오른다. 이것은 ‘위험 표면’인데, 일종의 등고선으로 표시된 확률 지도로 핫 존이 화산의 봉우리 모양으로 표시된다.
“이걸 통해 최적의 수색 전략을 짤 수 있죠”라고 로스모는 말한다. “높은 지역을 먼저 찾고 점차 낮은 지역으로 확대해 가는 겁니다.” 그는 판을 들어올리더니 180도 뒤집는다. “우리는 여기 도시 아래쪽에 터져 나온 부분에 관해 농담을 한답니다.”
피살지점이나 시체 유기 지점과 같이 라이겔이 다뤄야 할 자료 지점이 많을수록 정확도는 더 높아져서 예외적인 자료의 영향은 줄어든다. 로스모가 현장분석 작업을 하는 중에 참조 지점의 수가 열두 개를 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경우 핫 존이 고정되어 버리는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마치 라이겔이 판돈이라도 걸고 장담하는 것 같다.
수사관들에게 있어서 믿을만한 핫 존의 가치는 엄청나다. 만약 수색 지역을 사방 100 블록에서 두 블록 정도로 압축할 수만 있다면 경찰에서는 온갖 새로운 전략들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인근에 있는 차량들을 차량등록국에 조회해 볼 수도 있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조사할 수 있으며, 담요를 수거해 뺨이 닿은 부분에 면봉을 문질러 DNA를 채취할 수도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수상한 사람을 신고해 달라고 공문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유죄판결을 받은 뒤 캐나다 서레이 지역의 강간범들은 사실 자신들도 그런 공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1991년으로 돌아가 보자.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 포유류 전시실에서 이 박물관에 정기적으로 드나들던 사람들 눈에 한 수상한 남자가 사자 전시실 주변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 목격되기 시작했다. 로스모는 시내에 나올 때마다 이곳에 오곤 했다. 그는 범죄학 박사 논문을 작성중이었다. 그는 도시를 휘젓고 다니는 난폭한 범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예측하려고 했는데 이곳에서 배우는 것이 논문 작성에 도움이 될 듯 싶었다. 이러한 ‘사냥 패턴’은 종의 경계를 넘어 동일한 것 같다.
이 사자 왕국에는 자기 영역 내에서만 어슬렁거리는 ‘주민들’이 있는가 하면 더 멀리까지 모험을 하는 ‘방랑객들’도 있다. 사자가 신중하게 사냥을 계획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먹이가 우연히 주어지는 경우도 있고, 크고 작은 영양들이 우연히 제발로 사자의 고유 구역내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때는 사자가 무차별적으로 다른 짐승들을 죽이는데, 그런 경우 단 하루에 다섯 마리나 되는 동물들을 살육한 뒤 고기엔 입도 안 대고 썩도록 방치해 둔다. 이런 특징들은 로스모가 개발중이던 인간 살해범들의 행동 특성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다.
로스모가 읽고 있던 <세렌게티의 사자>에서 저자인 조지 쉘러는 한 떠돌이 수컷 사자가 9일간 돌아다닌 행로를 지도로 만들었다. 이 지도는 데이지꽃 모양과 엇비슷했다. 이 사자는 사방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늘 촘촘하게 얽혀진 모양의 휴식지로 되돌아오곤 했는데, 본거지에 해당하는 이곳은 중심부 가까이에 있었다. 이것을 보자 지리적 분석법이 떠올랐다.
로스모는 별 어려움 없이 머릿속에서 세렌게티 평원으로부터 조용한 주변 지역, 이를테면 일리노이주 오크 파크 같은 곳으로 옮겨 갈 수 있었다. 살인범은 아파트들 사이로 운전해 지나가면서 커튼이나 음악, 열린 창문으로부터 발산되는 향수 냄새 같은 징표, 즉 젊은 독신 여성이 사는 곳을 찾는다.
사자는 새 지역으로 옮기면서 강줄기를 따라 가며 사냥을 한다. 길게 뻗은 초목들이 위장막 역할을 해 준다. 살인범은 시카고 시내로 차를 몰고 간다. 그는 스트립쇼장을 들락거린다. 그는 관중속에 숨어 다닌다.
로스모는 어떤 종류의 동물이든 ‘내적 지도’가 있어서 이 ‘의식 공간’ 내에 ‘활동의 초점’이 있다고 배웠다. 도둑들과 내륙도시의 갱단원들, 그리고 쇼핑객들조차도 모두 일종의 사냥꾼들인 셈인데, 연구 결과 이들이 목표물을 찾는 패턴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표면상으로만 보면 정신이상자인 연쇄 살인범은 다른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1970년대에 새크라멘토 카운티에서 6명을 살해한 후 희생자들의 피를 빨아 마시면서 외계인에 의해 뽑혀진 자기 피를 채운다고 믿었던 리차드 트랜튼 체이스 같은 사람에게는 범죄현장 분석법 적용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로스모가 라이겔을 과거에 발생했던 체이스 사건에 적용해 보자 박사 논문 작성차 알고리즘을 테스트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라이겔은 전체 조사 지역 중 1.7% 이내로 체이스의 집 위치를 압축해냈다.
로스모가 1977-78년 LA에서 발생한 ‘힐사이드 교살 사건’과 연관된 자료 지점에 대해 소급 분석을 해본 결과 범죄 관련 지역과 결국 유죄 판결을 받은 두 사촌 안젤로 뷰오노와 케네스 비안치의 일상적 습관 사이에 다른 건과 유사한 상관성이 있음을 밝혀냈다. “범죄와 관련없는 행동이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로스모가 말한다. “피해자와 마주친 지역은 시체를 유기한 지역에 비해 이들의 집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젤로 뷰오노가 10대였을 때 가보곤 하던 장소들을 한 군으로 묶어 봤죠. 우리가 지금껏 다뤄온 사건들에서는 누구든 지리적인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행동을 했었거든요.”
연쇄 살인범이 사냥을 하러 집을 떠날 때는 언제나 두 가지 대립되는 힘, 즉 편안한 지역 내에 머무르려는 욕망과 잡히지 않으려는 욕망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된다. 첫 번째 힘 때문에 범인은 집에 돌아오게 되고, 두 번째 이유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라이겔의 핵심 내용이다. 로스모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전통적으로 다소 부정확했던 분석 기법을 엄격하게 적용해 일단 범죄 현장 자료가 모아지면 귀납적 추리보다는 연역적 추리에 바탕을 둔 조사를 하고자 했다.
두 방식은 이런 차이가 있다. 셜록 홈즈가 여러분의 손가락 끝이 노란 걸 보고 담배를 피리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귀납적 추측이다. 반대로 여러분이 흡연가이고, 범인은 담배 연기에 치명적인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범인일 리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연역적 추리인 것이다.
“대부분의 과학은 귀납적이죠. 관찰한 걸 기록하고 이를 일반화하니까요.”로스모의 말이다. “유일하게 연역적인 체계가 수학이죠.” 로스모가 충직한 사냥견 라이겔을 데리고 산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로스모는 범죄 현장에서 자료를 모으는 형사인 ‘소프트 사이언스’이고 반면 라이겔은 ‘하드 사이언스’를 대표한다. 개에 해당하는 라이겔은 증거물을 코 밑에 들이대면 프로그램에 의해 곧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언뜻 보기에 벨트웨이 저격 사건은 애초부터 범죄현장 분석법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였다. 이 사건의 연쇄 살인범에게는 첨단 수사장비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질량분석기나 기체 분광기, 그리고 잘못된 생각에서도 DNA를 추출해 낼 수 있을 정도의 고성능 전자 주사 현미경조차도 무용지물처럼 보였다. 범인이 누구든 그는 범행 현장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빠져나갔다. 하지만 범인인 저격수는 피바다로 물들인 교외 주유소나 주차장 등을 참조 지점으로 남겨 놓았다. 그리고 로스모는 이 자료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쇄 저격 살인 초기에 라이겔은 이 저격수의 앵커 포인트가 워싱턴 D.C. 북쪽 교외 근처로 추측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졌듯이 이 범인은 앵커 포인트 자체가 없었다. TV 뉴스 쇼에 출연해 어설픈 내용을 떠들어대는 가짜 분석가들의 말이 모두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이 로스모에게 해가 될지 도움이 될지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어쨌든 이 저격범에 대한 익명의 제보로 경찰은 필요한 단서를 얻기는 했지만 해결 방안은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1만5천건의 제보와 범행차량과 유사한 수많은 흰색 밴들 속에 깊이 묻힌 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낼 것 같지 않았다.
“범죄현장 분석법이 상당한 도움이 되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사건들도 많습니다”라고 볼티모어 카운티 메릴랜드 대학의 지리학 교수이자 ‘범죄 지리’ 조사법의 개척자인 케이스 해리스는 말한다. “이 저격범 사건의 경우 로스모의 알고리즘은 방대한 자료들의 편차 수준을 다룰 수가 없었던 겁니다.”
미국 법무연구소용으로 크라임스탯(Crimestat)이라는 범죄현장 분석 모델을 개발한 바 있는 휴스턴의 도시계획가 네드 레빈이 지적하듯 이 사건으로 체포된 존 앨런 무하마드와 존 리 말보는 오랫동안 확실한 주거지가 없었다. 둘은 최근에 워싱턴주에 살았었다. 이들은 너무 광범위한 지역을 돌아다녀서 정확한 모델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곳은 이미 알고 있는 장소들이 아니라 이들이 알고 있는 장소와 유사한 곳들에서였다. 이럴 경우 미국 사회의 동질화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범행 현장과 유사한 수많은 장소들을 모두 조사해야 한다. 앤드류 커내넌이나 에일린 워너스 같은 떠돌이 살인범들의 경우 정확한 지리적 특성 분석이 불가능했다. 미국의 연쇄 살인범들은 다른 나라의 살인범들에 비해 범행 범위가 거의 두 배나 넓다는 증거도 있다. 범인들의 기동성이 높아지고 이동 패턴도 점차 복잡해짐에 따라 범죄현장 분석법 적용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레빈은 말한다.
라이겔의 판매가는 대략 5만5천달러선이다. 이 장비를 사용하려면 로스모나 그가 가르친 사람 밑에서 2년간 직접 연구를 한 후에야 가능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세계에서 단 7명만이 라이겔을 다룰 자격을 갖고 있다. 이들은 캐나다 황실 기마 경찰, 스코틀랜드 경찰의 주류, 담배 및 무기국, 그리고 온타리오 주경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문분석과 마찬가지로 라이겔도 해석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 진가가 발휘된다. 알고리즘 자체만으로는 해석이 모호할 수 있지만 적절한 훈련을 받은 현장 분석가라면 특이한 범행 지역과 범인의 이동 방법 및 행동 특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데 바로 그게 기술이다. 이런 점에서 이 시스템은 1996년 로스모의 회사에서 라이겔에 대한 특허를 획득한 후 다른 회사들이 우후죽순식으로 만들어낸 조잡한 단순 숫자입력 및 출력 장치들과 차별화된다.
로스모사의 경쟁업체들은 라이겔의 성능이 아직까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결국 로스모의 모델이 자신들의 모델이나 기존의 압정을 이용한 도심법보다 더 정확하지는 않다는 점이 밝혀지리라고 믿고 있다. “사실 이 기법이 특이해 보이는 건 장비 사용법 교육의 사업성 때문이죠. 교육비를 받을만한 기술들이 상당히 많거든요”라고 리버풀 대학 수사심리학 센터 소장인 데이빗 캔터는 말한다. 그는 종종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는데, 이 중 드래그넷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로 연구원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아직까지 아무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직접 비교해본 적이 없지만 “누군가가 이미 했어야만 할 일”이라고 레빈은 말한다.
로스모는 벨트웨이 저격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신이 살인사건 발생 기간중 용의자들의 구체적 이동상황에 관한 자료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라이겔이 생각만큼 잘못된 분석을 한 것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범인들의 행동 패턴은 지리학적으로 우리가 예측한 그대로입니다. 제가 애기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전부입니다. 특별히 놀랄만한 걸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결국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가정과 한계는 있기 마련이라고 그는 말한다. “제가 받은 수사 의뢰들에 관해 얘기하자면 85% 정도는 도움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로스모의 사무실에서 전화벨이 또다시 울린다. 대학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을 해 왔다. 로스모가 학생들 앞에 서서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된다. “여러분 확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명심하세요. 확률을 생각하고 판돈을 걸되 50%는 남겨 두세요. 보험회사들도 보상 문제로 뭉칫돈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거든요. 남부 캘리포니아에 비가 올 때도 있는가 하면 망가진 시계들도 정확한 시간을 표시할 때가 있는 법이죠. 경찰이 항상 범인을 체포하는 건 아니듯 말이죠.”
브루스 그리어선은 밴쿠버에 거주하며 뉴욕타임스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출판물들에 기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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