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컴퓨터에 해커가 침입해 하드디스크에 들어 있는 40GB 분량의 음악을 빼내간다거나 말 잘 듣던 휴대형 MP3 플레이어가 어느날 갑자기 음악을 재생하기 전에 합법적으로 구매한 MP3 파일인지 아닌지 저작권을 확인하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처음 출시된 1998년 이후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듣거나 다운받는 데 요금을 부과하려는 시도는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번 음반사들의 행보는 분명히 눈여겨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사와 비벤디 유니버설사는 프레스플레이라는 벤처 회사와 제휴해 회원 고객을 대상으로 음악과 비디오 컨텐츠를 서비스하기로 결정했다. AOL 타임워너(본지를 발행하는 LA Times의 모회사)와 EMI 레코디드 뮤직, 그리고 베텔스만사는 인터넷 미디어 회사 리얼네트웍스와 공동으로 뮤직네트라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 5군데 메이저급 음반사를 제외하고도 프레스플레이나 뮤직네트와 계약을 체결한 중소 음반사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두 서비스에 대해 상호 배타적인 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두 서비스 모두 모든 음반사들로부터 음악을 제공받아 서비스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는 갖고 있는 CD를 MP3 파일로 변환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마음껏 MP3 파일을 교환하던 시절과는 작별을 고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차라리 뮤직네트와 프레스플레이가 도대체 어떤 서비스이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될 것인가 추측해보는 게 더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두 서비스는 음악 라이선스와 컨텐츠를 제공하는 중개 회사이다. 그 외에 디지털 음악에 필요한 제반 기술을 제공한다고나 할까. 소비자에게 직접 음악을 판매하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일반 소비자들은 뮤직네트 기술에 기반을 둔 리얼네트웍스나 냅스터, 또는 아메리카 온라인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뮤직네트와 리얼네트웍스의 전략 컨설턴트로 근무하는 리처드 월퍼트는 두 서비스를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부착한 컴퓨터에 비유한다. 프레스플레이 서비스는 일단 MSN 뮤직과 야후를 통해 제공될 예정이다. 아직 AOL이나 리얼네트웍스, 냅스터, MSN 뮤직, 야후로부터의 직접적인 제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서비스 주체인 뮤직네트와 프레스플레이의 서비스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서비스에 가입한 회원은 컴퓨터로 일정한 수의 음악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 이 음악들의 스트리밍 파일에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 파일들은, 청취는 가능하지만 나중에 들을 목적으로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파일들이다. 뮤직네트와는 달리 프레스플레이는 사용중인 컴퓨터의 위치가 아니라 곡 수를 통해 다운로드 받은 음악의 수를 책정한다. 다시 말해 뮤직네트를 사용할 경우 직장과 집에서 같은 곡을 들었다면 두 번 다운받은 것이 되지만 프레스플레이는 한 번 다운받은 것이 된다는 의미이다.
한 번 다운로드 받은 노래는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동안 수시로 접속해 들을 수 있다. 하지만 회원에서 탈퇴할 경우 접근이 차단된다. 사실은 노래마다 사용기간이 명시된 일종의 락(Lock)이 걸려 있다. 사용자가 서비스에 접속할 때마다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음악 파일의 사용 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최소한 한 달에 1회 이상 접속할 것으로 가정할 때 사용기간 중지나 연장과 같은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3개월 이상 사용하지 않다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려고 하면 접속이 차단된다. 그동안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다면 서비스에 접속해 회원 가입을 재인증하는 것으로 접속 차단 해제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종종 발생한다. 지금은 다운받은 노래를 휴대용 MP3 플레이어로 옮기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휴대가 불가능한 MP3 파일이란 무용지물이 아닌가. 여기 소개된 최신형 MP3 플레이어들은 수영장이나 헬스장 내에서도 사용이 가능한데 말이다.
프레스플레이의 회장 앤디 슈온씨는 자사의 연구조사 결과 휴대용 플레이어로 MP3 파일을 듣는 경우는 매우 미미하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이것은 분명 지극히 치명적인 단점이다. 뮤직네트와 프레스플레이는 이 문제를 1년 내로 해결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제에는 또 하나의 걸림돌이 있는데, 쉽게 타결을 보지 못하고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저작권 보호문제인 디지털 저작권 관리 논쟁이다.
차라리 음반을 그냥 사버리는 게 더 쉽지 않을까? 하지만 월퍼트씨는 그건 손해보는 짓이라고 일축한다. CD에 담긴 노래 한 곡당 시중가가 1.3달러인데 반해, 회원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곡당 20센트로 훨씬 저렴하다는 것. 50곡을 이용할 경우 매월 10달러 미만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동일한 수의 노래가 담긴 음반을 직접 구매하려면 65달러를 줘야 한다. 뮤직네트는 서비스 개시 1년 이내에 싱글 트랙 판매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AOL과 냅스터, 리얼네트웍스, MSN 뮤직, 야후에서 세부 내용을 공개하면 다른 부분들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음악을 인코딩할 때 적용한 비트 레이트다. 비트 레이트란 초당 어느 만큼의 사운드 정보를 기록하는가를 말하는데, 128Kbps로 녹음하면 일반적으로 CD급의 음질이고, 그 정도는 되어야 들을 만하다. 스트리밍 방식으로 받을 경우 인터넷 접속 속도에 따라 좌우되는데, 모뎀 최고 속도가 초당 56Kbit이므로 전화선을 통해 접속할 경우 64Kbps 정도면 충분하다. DSL이나 케이블 모뎀과 같은 광대역 회선을 통해 접속할 경우 광대역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여부와 제공 시기를 확인해야 한다.
메이저 음반사들은 수많은 장르를 제공하므로 점심시간에 어떤 장르의 음악이, 그리고 얼마나 많은 곡이 사용 가능한지 꼭 눈여겨 보아야 한다. 프레스플레이는 자사의 데이터베이스가 대략 10만곡의 노래를 제공할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으며, 뮤직네트도 비슷한 규모가 될 거라고 밝혔다.
인터넷을 통한 회원제 음반 판매 서비스가 음악을 사고 파는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잡을 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온라인 음악이 더 이상 공짜가 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케이블 TV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오리라 생각된다. TV 단자에 케이블을 연결하여 케이블 TV를 시청할 수 있다면 사용료를 내려는 정직한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케이블 TV 해독기까지 사가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항상 있는 법이다. 인터넷 회원제 음반 서비스가 과연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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