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러는 게 당연하다. 라노나는 떠 다니며 대화하는 머리, 즉 가상 온라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노나는 TV와 영화, 심지어는 잡지 표지에까지 등장하면서 증가일로에 있는 가상 인물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웨비 투키(왼쪽)를 예로 들자면, 가상 슈퍼 모델인 그녀는 수많은 광고와 잡지 디테일스(Details)에서 디지털 제품을 과시해 왔다. 웨비와 같은 디지털 스타들은 피와 살이 있는 사람 모델에 비해 확실한 장점이 있다. 이들은 성질을 낸다거나 약속시간에 늦는 법이 없고, 몸매를 망가뜨리는 지방성 물질 때문에 안달하는 일도 없다. 또 이들은 음반사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거나 무기 소지로 체포되는 일도 없고, 약물 복용으로 인한 문제도 없다. 게다다 언제든 섭외가 가능하다. “향후 몇 년간은 가상 인물들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추세가 될 것입니다”라고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츠웨일은 말한다.
소위 이러한 합성인간은 TV의 유명한 디지털 인물이자 코카콜라사 대변인이기도 한 막스 헤드룸과 같은 캐릭터들을 시작으로 수년간에 걸쳐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타이타닉 같은 영화에서 가상 스턴트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가상 인물들은 이보다 진일보해 있다.
요즈음 뜨고 있는 사이버 스타로는 커즈웨일의 또다른 자아인 라노나(www.kurzweilai.net) 같은 웹 여주인공들이 있는데, 이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스스로 대화가 가능하다. 마야(www.virtualmalaysia.com)와 같은 “보티즌들”은 온라인 대변인 모델들로, 간단한 몇 가지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다. 초록색 머리의 뉴스캐스터 아나노바(www.clubananova.com)와 같은 컴퓨터 애니메이션 리더들이 텍스트를 큰 소리로 반복해 말할 수는 있어도 상호작용은 못하는 반면, 얼마전 상영된 파이널 판타지의 용감한 아키 로스처럼 애니메이션화된 디지털 영화 스타들은 실제 배우와 가장 흡사하게 닮았다.
머지 않아 실제 배우들이 개봉예정인 영화 시몬느(Simone)에 출연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가상 대역으로 대치된 여배우 역을 하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 디바들이 최고 수준의 수입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뚜렷한 두 가지 문제로 인해 방해를 받고 있다. 이들이 실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가장 멍청한 실제 모델과 비교해도 꽤 어리숙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문제들 때문에 가상 스타들에게 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사이버 팝 가수인 교코 데이트를 위한 웹사이트들만도 수십 개나 된다. “교코는 어느 남자라도 좋아할 거예요”라며 한 넋나간 팬이 자랑한다. 그리고 아시아 MTV의 가상 VJ인 릴리는 매일 환심을 사려는 이메일로 우체통이 가득 찬다. 아마 그녀의 금속성 꽁지머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사이버 여성 스타들이 아직까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같은 인기 스타에 필적하진 못하지만 이들이 유명해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디지털 인물들은 알리아스 웨이브프론트사(Alias Wavefront)의 마야 언리미티드(Maya Unlimited)같은 특수 소프트웨어의 도움으로 스크린에 태어난다. 얼굴과 몸은 유동적 3차원 그리드인 “와이어 프레임”으로 시작된다. 이 그리드에 3차원 주름과 같은 것들을 아티스트들이 채색해 만들어진 대상에 정교한 모션 캡쳐 소프트웨어를 통해 걸음걸이라든지 실제 배우의 자세 같은 것들이 부여된다. 이것이 가능한 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가 이들에게 “물리 엔진”을 적용하는데, 이 엔진은 특수 알고리즘으로 가상 배우가 중력의 법칙에 따르도록 해 준다.
파이널 판타지의 아키가 실제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는 4년의 기간과 일억천오백 달러의 비용, 그리고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들이 필요했다. 아키를 플레이스테이션 2 캐릭터로 만들 때는 동작의 기본 단위인 폴리곤이 1,000개면 충분했지만 영화 속 캐릭터를 생성하는 데는 수백만 개의 폴리곤이 필요했다. 하지만 엄청난 예산을 가지고도 인간의 특정한 미세 구조는 모사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릴 때 햇빛에 반사되는 패턴은 머리카락마다 다르다. 프로그래머가 구현하기엔 악몽인 셈이다. 더욱이 표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미묘한 움직임도 있다. 일례로 사람이 눈을 깜빡일 때는 눈꺼풀이 접힌다. 그런데 이 움직임은 너무 빨리 일어나기 때문에 감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걸 반영하지 않으면 사실감이 떨어진다. “이것은 실제와 꼭같은 조명을 연출해 몸과 얼굴의 복잡한 근육간 상호작용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라고 웨비 투키를 만든 컴퓨터 아티스트 스티븐 스탈버그가 말한다.
그나마 표정은 연출이 쉬운 편이다. 지능에 관해 말하자면 대부분의 가상 인물들은 거의 디지털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아나노바는 컴퓨터 애니메이션과 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해 주는 소프트웨어에 따라 움직인다. 가상 VJ인 릴리는 화면 뒤에서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는 실제 여배우가 보조한다. 라노마를 운영하는 LifeFX사가 개발한 것과 같은 실시간 프로그램들조차도 미리 어느 정도의 질문을 예상해 준비해 둔 대답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라노나가 정치를 싫어하는 것도 이와 같은 기능 때문이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컴퓨터와 가상 인물을 창조해 내는 일이 예수의 성배와도 같은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여러 개의 컴퓨터 프로세서들을 각각의 뇌세포인 것처럼 다룸으로써 “신경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뇌의 구조를 모방함으로써 학습 능력을 포함한 인간의 지능을 발현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뇌에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있어서 이를 정확히 모방하는 건 몇 년 후에나 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점은 아티스트들과 컴퓨터 과학자들이 더 뛰어난 가상 인물들을 만들어 낼수록 이들의 목표에 도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건 특이한 현상으로 골칫거리 문제라고 ‘유쾌한 세계 : 기술이 상상력을 변화시키는 방식(The Playful World : How Technology Is Transforming Our Imagination)’의 저자인 마크 페스가 말한다. 너무 완벽하면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해결책은 “여러 행동을 완벽하게 모델링하려고 하기 보다는 단계적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페스는 말한다. 만약 디자이너들이 “유아” 상태의 가상 인물을 창조한 후 이들에게 동작과 말, 기타 다른 기술들을 배울 여지를 주면 그 결과 보다 자연스러워질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돌파구는 가상 인물들이 자체적으로 감정을 갖게 되는 때 비로소 열리게 되는데, 커즈웨일은 이것이 30년 후에야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들이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적 반응을 매 순간마다 모두 프로그램한다는 건 너무나 소모적인 일입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마치 실제 여배우가 인간의 감정을 전혀 이해 못한 채 매번 얼굴 표정을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바꿔야 하는 경우와 같을 거예요.”
커즈웨일은 가상 캐릭터들이 결국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들과 완벽한 시청각적 가상 현실 환경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그가 덧붙인다. “사실 2030년 경이면 사람과 기계 지능간의 구분이 모호해질 겁니다.”
그렇다면 6시 뉴스에 가상 뉴스캐스터가 등장하고 영화마다 가상 영화배우가 등장한다고 해서 현실감이 무디어지는 위험이 발생할까? 하지만 실제 모델들도 사진 편집과정에서 결점을 보완하고 뉴스 쇼에서도 나이든 앵커들의 주름을 부드럽게 보이도록 퍼지형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완벽한 가상 배우나 뉴스 보도 기자를 본다고 해서 크게 지나친 일일까?
“가상 스타가 반드시 실제 스타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없죠”라고 커즈웨일은 말한다. “실제 연기자라도 많은 사람들의 창의적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입니다. 요즈음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연예인들, 특히 최근에 등장한 소년소녀 그룹들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사실 매일같이 컴퓨터 과학자들은 인간의 경험을 2진 코드로 재창조하는 데 보다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죽은 영화 배우들을 최신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시키는 게 가능하다.
더구나 AT&T 연구소에서 개발한 자연 음성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험프리 보가트의 목소리를 녹음해 상당히 자연스럽게 맥주 광고 대사를 읽도록 할 수 있다. 언제쯤이면 마돈나가 아마존 사이트에서 책 주문을 받게 될까?
머지 않아 가상 점원에게서 옷을 사거나 피플지에서 추파를 던지는 합성인간을 보는 데 익숙해지게 될 것이라고 페스는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장난감은 가상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그가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합성 인간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것은 ‘출생’ 이후 ‘길러진’ 주인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로써 애완동물과 사람의 중간쯤 되는 존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들 모두 각자의 디지털 버전을 만드는 게 보편화될 지도 모른다. 우리들 모두 커즈웨일의 라노나처럼 가상 대리 자아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누구나 한 15분 정도 동안 가짜 자신이 되는 거죠”라며 페스가 농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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