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는 몇 년 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공상과학(SF)영화에서 3차원 그래픽은 필수 요소가 됐고 가상인물도 실제 인간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해졌다.
파이널판타지는 동물이나 인형이 아니라 사람을 등장시킨 최초의 3차원 애니메이션 영화. 사람과 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엔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감동시킨 ‘몬스터주식회사’의 귀여운 괴물 ‘셜리’. 뒤뚱거리며 걸을 때 흔들거리는 색색의 수십 만개의 털은 눈을 즐겁게 한다.
애니메이션만 입체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게임 속에도 3차원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뮤’를 필두로 등장한 3차원 온라인 게임은 ‘라그하임’, ‘라그나로크’ 등이 인기를 끌며 게임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컴퓨터가 창조하는 마법의 공간
디지털로 만든 3차원의 세계가 우리에게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다.
컴퓨터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한 덕택이다. 바로 대형 컴퓨터(주로 워크스테이션)와 그래픽 전용 소프트웨어다. 여기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저장장치(스토리지)가 가세하고 있다.
이들은 마법사와 같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 낸다.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엔 금새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덩치 큰 이빨 공룡이 활보하는 수 억년 전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을씨년스러운 미래의 어느 곳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3차원 세상이 쉽게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투자비와 길고 긴 고통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파이널판타지를 예를 들어보자. 스퀘어픽처스는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4대의 ‘SGI 2000 시리즈 서버’와 4대의 ‘SGI오닉스2 시스템’, 167대의 ‘SGI옥테인 워크스테이션’ 등 엄청난 장비를 사용했다.
여기에 알리어스/웨이브프론트(Alias/Wavefront)의 ‘마야(Maya)’라는 전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또 일부 작업에는 픽사(Pixar)의 ‘렌더맨(RenderMand)’을 썼다.
파이널판타지 제작기간에 소요된 시간은 무려 4년. 각 국에서 모인 12명의 세계 최고 그래픽아티스들과 150여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했다.
투자비는 무려 2,000억원(1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감독인 히로노부 사카구치씨는 “만약 대배우를 썼다 면 1억5,000만 달러 제작비로는 어림도 없었다”고 말한다.
진짜를 같은 가짜
사카구치 감독은 “실물과 똑같은 캐릭터를 창조하는 일이 힘들었다”며 “모낭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주름지거나 나부끼는 옷을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회고한다.
자연스러운 걸음과 손짓,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 자연스러운 표정 그리고 피부의 섬세한 질감을 어떻게 표현할까.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모션캡처(Motion Capture)’라는 장비를 사용한다. 말 그대로 움직임을 잡아내는 시스템이다. ‘파이널판타지’, ‘슈렉’ 등 블록버스터에서 모션캡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모션캡처는 움직임, 즉 위치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마우스나 스캐너와 원리가 동일하다. 마우스는 점, 스캐너는 평면에서의 위치를 잡아내는 장치. 모션캡처는 이를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션캡처는 몸짓, 손가락 움직임, 얼굴 표정 분야로 구별된다. 각 분야마다 조금씩 다른 기술이 사용된다. 몸짓을 잡아내는 기술로는 광학, 자석(마그네틱), 기계식이 있다. 이 중 광학과 기계식이 많이 쓰인다.
적외선카메라와 여기에 반응하는 마커를 이용하는 것이 광학식 모션캡처. 몸의 주요 부위에 마커를 부착하고 움직이면 적외선 카메라가 움직임을 포착하게 된다.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컴퓨터로 처리, 거쳐 그래픽으로 복원하게 된다. 광학식 모션캡처 장비는 외부에서 오는 빛에 간섭을 받기 쉽다. 때문에 가로세로 20미터, 높이 10미터 이상의 전용 스튜디오가 필요하다.
기계식은 광학식만큼이나 많이 사용되고 있다. 몸에 기계식 장치를 입고 움직이면 관절마다 부착된 3개의 센서(가로·세로·수직 방향)가 변화량을 인식, 컴퓨터로 보내주게 된다. 처음 위치는 보정작업을 통해 결정한다. 이는 저울의 영점을 맞추는 작업과 같다.
기계식 모션캡처는 몸에 입는 장비와 컴퓨터로 구성되기 때문에 광학식에서 필수적인 전용스튜디오가 없어도 된다. 대신 10∼14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비를 몸에 입고 다녀야 한다. 바닥에 자석을 깔고 움직일 때 변하는 자기장을 추적하는 방법이 자석식이다.
상용화는 미미한 상항.
모션캡처 장비로 얻은 데이터는 컴퓨터 화면에 점이나 선으로 표현된다. 피노키오의 움직임을 상상하면 된다. 여기에 살을 입히고 질감과 색깔을 주는 복잡한 작업이 남아 있다. 모양을 만들고 빛 등을 고려해 실감나는 화상을 만드는 일이다. 이 작업을 ‘렌더링’이라고 한다.
렌더링 결과에 따라 상반된 느낌이 전달되기도 한다. 딱딱하거나 물렁물렁하고, 거칠거나 매끈한 느낌은 어떤 기법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렌더링에는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알리어스/웨이브프론트의 ‘마야’나 디스크리트의 ‘3ds 맥스’’, ‘소프트이미지’, ‘필름박스’ 등이 대표적인 제품. 특별한 느낌을 주기 위한 플러그인(보강 프로그램) 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100%를 향해 뛴다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액션이나 판타지 요소를 표현하기가 쉽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파이널판타지’나 ‘슈렉’, ‘몬스터주식회사’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낙담할 일은 아니다. 기술개발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SGI는 ‘밴(VAN·Visual Area Networking)’으로 이름 붙인 획기적인 그래픽 컴퓨팅 개념을 공개했다.
방대한 원천 데이터 대신 시각화 한 그래픽 화소만을 전송하는 기술이 ‘VAN’의 핵심 개념. 이로써 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단말기로 먼 거리에 있는 그래픽 슈퍼컴퓨터에 접속,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새로운 컴퓨터 그래픽 기법과 기술도 끊이지 않고 쏟아지고 있다.
국산 업체의 진출도 주목된다. 외국업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모션캡처 시장에 두모션이라는 국내 벤처업체가 뛰어든 것. 이 회사는 초경량 모션캡처장비인 ‘두모션 스탠더드’를 개발했다.
이 장비는 움직임을 곧바로 디지털로 바꿔주는 ‘M2D(Motion to Digital)’라는 신기술을 갖춰 선진국 제품보다 오히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격도 외산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마우스나 스캐너처럼 모셥 캡처 대중화를 이끌겠다는 게 이 회사의 포부다.
게임용 3차원 엔진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뮤’를 서비스하는 웹젠과 CCR이 독자 엔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고엔터테인먼트도 ‘웹톤GL’이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언제쯤이면 사람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완벽한 사이버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추세라면 3~4년 후엔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 디지털로 구현하는 가상의 세계가 진실 세계를 능가할 날도 머지 않았다.
서울경제 정보과학부 문병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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