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22년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1972년 로마클럽의 보고서는 거짓이 돼버렸다. 그러나 석유가 조만간 고갈될 것이라는 경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 98년 보고서에서 2040년이면 석유가 완전히 고갈된다고 예측했다. 세계적으로 매년 2% 정도 석유 소비가 증가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전 세계에 묻혀 있는 1조 376억 배럴의 석유는 40.9년 뒤에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망은 그나마 낙관적이다.
산유국들이 보고하는 석유매장량은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석유가 고갈되는 시기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만성적으로 부족해지는 시점부터 “에너지 재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그 기점을 2020년으로 전망한다. 그것은 19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석유파동(Oil Shock)을 훨씬 넘어선다. 과거의 석유파동이 중동 지역의 특수한 정치적 문제로 불거진 일시적인 위기였다면, 2020년부터 닥칠 위기는 회복할 길이 없는 “항구적 위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대안 에너지 없을까?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에는 무엇이 있는가 알아보자.
오염적지만 위험한 원자력
‘제3의 불’로 불리는 원자력은 가장 강력한 후보인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은 화력에 비해 발전 단가가 저렴하고 환경오염도 적은 에너지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60여 개 국가에 9백여 개의 원자력발전소가 있으며, 원자력은 세계 전력생산량의 1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량의 43%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원자력에는 위험하다는 딱지가 늘 따라다닌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이유로 방사능이 유출될지 모르며,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그 재난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엄청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원자력 사고가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월성 원자력발전소 인근에 활성단층이 형성되어 있어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에 불의의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1986년에도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서 선진 각국은 원자력 발전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였다. 원자력은 표면적인 발전단가는 저렴하지만 폐기물 처리비용과 원전 폐기비용을 고려하면 경제성이 없으며, 대기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진 않지만 폐기물과 재처리로 인해서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와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더 이상 건설하지 않았으며, 1998년에는 독일에서 집권한 사민당과 녹색당 연립정권이 원자력 발전소의 폐쇄에 합의한 바 있다.
<백투더 퓨쳐>에 나오는 핵융합
1985년에 개봉되었던 <백투더 퓨처>에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인 호버카(Hover Car)가 등장한다. 호버카가 잔디밭에 착륙하자 브라운 박사는 쓰레기통에서 바나나 껍질을 찾아 연료탱크에 넣고 출발할 준비를 하는데, 그 때 영화의 화면은 ‘미스터 핵융합’으로 씌어진 연료탱크를 확대해서 보여준다. 브라운 박사는 타임 랩(Time Wrap)속으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말한다. “미래의 도시에는 길이 필요없다!”
핵융합에는 몇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핵융합의 기본적인 원료는 지구상에 충분히 존재하는 바닷물이다. 둘째, 핵융합로는 핵분열 원자로와는 달리 매년 몇 톤씩에 달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셋째, 핵융합 발전소에서는 원자로의 노심이 융해되는 사고, 즉 멜트 다운(Melt Down)의 위험이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연히 핵융합 발전소의 자기장 스위치를 끊어서 내부의 고온가스가 새어 나온다 하더라도 핵융합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반응이 중지된다.
핵융합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미국, 일본, 독일 등과 같은 선진국들은 매년 4억 달러 내외를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핵융합 발전은 쉽게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수소 원자핵이 서로 달라붙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온도가 무려 1천만 내지 1억도가 된다는 점에 있다. 핵융합 전문가들은 2035년 경에 첫 번째 상용 핵융합 발전소가 등장할 것이고, 2050년에는 핵융합 발전소가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고의 에너지원 태양력과 풍력
태양력과 풍력은 무척 매력적이다. 별도의 연료가 필요 없어서 생산단가가 저렴하며 오염물질도 전혀 배출되지 않는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 선진국들은 태양력과 풍력을 21세기의 에너지로 개발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 연합은 1997년 <재생에너지>백서를 통해 201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당시의 두 배인 12%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하였다.
세계 최대의 태양열발전소는 미국의 모하비 사막에 설치된 ‘솔라 Ⅱ’. 686m 높이의 탑꼭대기 집열관은 2천여 개의 대형 거울을 통해 태양 빛을 모으고 있다. 독일 정부는 프라이부르크시를 태양열발전 시범마을로 운영하고 있다. 그 도시에는 155개의 태양열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공동출자해서 건설한 태양열발전소가 20개나 된다.
풍력은 해마다 20% 정도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풍력 발전의 대명사인 덴마크는 6,100개의 풍력발전기를 운영하여 전체 에너지의 13%를 풍력으로 공급하고 있다. 독일과 미국의 경우에는 풍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덴마크보다 낮지만 발전량은 더욱 많다. 최근에는 중국, 인도,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도 풍력 발전소가 잇달아 건설되고 있다.
태양력과 풍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과정에서는 정부의 정책도 한 몫을 했다. 독일과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은 태양력 및 풍력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시장가격 이상으로 사주며, 설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운영비를 지불해 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태양력과 풍력은 소규모 에너지원으로서 전 세계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시스템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매년 전력 소비 최고 경신 - 에너지 전환기를 사는 지혜는?
이처럼 석유의 고갈에 대응하여 새로운 에너지원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완전한 대안이 없다. 원자력은 위험하고, 핵융합은 불확실하며, 태양력과 풍력은 규모가 적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느 하나를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밀고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발상을 전환하여 에너지 문제를 공급이 아닌 수요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소비량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계산 결과가 있다. 인류가 출현한 후 1850년까지의 에너지 소비량을 100으로 잡을 때, 1850∼1950년의 에너지 소비량은 100이 되는 반면 1950∼2050년의 에너지 소비량은 1,500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에너지 공급원을 개발하는 것에 못지 않게 에너지 수요량 자체를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서서히 정착되고 있는 자원 재활용도 이러한 방향의 실천에 해당한다. 앞으로는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제품과 공정을 개발하는 데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의 생활방식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에너지 소비량에 비례해서 생활이 풍요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에너지를 많이 쓸수록 자연환경은 더욱 나빠지게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적정량의 에너지 범위 내에서 생활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에너지 전환기를 살고 있다.
송성수(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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