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과학기술자상 8월 수상자 서울대 현택환 교수
나노입자연구에 새로운 이정표 제시
물질이 균일하고 순수할수록 우수한 물성을 나타낸다. 보석은 그만큼 값어치도 높아진다. 금 값은 순도에 따라 변하고 다이아몬드 결정은 조금만 커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게 대표적인 예.
10억 분의 1미터, 나노 세계는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와는 달리 물질이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곤 한다. 그만큼 사소한 외부 충격에도 돌변하고 작은 흠 하나가 엄청난 오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노 물질을 상업적으로 응용하려면 반드시 가공할 수 있고 우리 뜻대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균일해야 한다.‘균일’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진 것.
금이나 은 같은 도체(금속), 갈륨비소ㆍ실리콘 같은 반도체는 어느 정도 균일하게(같은 크기로) 만들기 쉽다. 부도체의 경우는 훨씬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왔다. 서로 다른 크기의 나노알갱이를 만든 뒤 복잡한 과정을 거쳐 솎아낸 것. 때문에 불과 몇 백그램의 값이 수 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현택환 서울대 응용화학부 교수는 산화철을 똑 같은 크기의 나노 알갱이로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산화철은 알갱이는 일종의 자석으로 대표적인 부도체. 이 합성법을 이용하면 산화철 알갱이의 크기도 2 나노미터에서 20나노미터 크기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서 열린‘고돈 컨퍼런스’에서 현 교수가 이 같은 성과를 발표하자 전세계 과학자들이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데 인색한 과학계에서 격찬을 보낸 것. IBM을 비롯, 하버드대, MIT 등의 세계적인 연구진들로부터도‘빼어난’기술로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현 교수는 이후 세계적인 학회에서 잇따라 초청 받아 연설한 데 이어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화학회지로부터 논문 초청까지 받은 상태다.
정보기술ㆍ생명공학분야에 유용하게 응용
이들이 현 교수의 연구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지금보다 100배 이상 용량이 큰 저장매체를 만들 수 있는 핵심 기술이기 때문. 현 교수는 현재 나노 알갱이를 마이크론 미터 크기로 배열하는 데 성공했다.
이보다 큰 인치 단위로 배열하는 데 성공하고 읽고 쓰는 장치와 제어장치 등이 개발되면 테라비트급 저장장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장장치 분야의 최고 연구기관인 IBM왓슨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머레이 박사는“현 교수의 방법은 곧 나노 산화물을 만드는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정보기술(IT) 분야뿐이 아니다. 자기 나노입자는 생명공학분야에도 매우 유용하게 응용할 수 있다. 높은 자성을 띄는 나노입자를 암세포에 가져다 놓은 후 자기장을 걸어 주면 열이 발생, 정상세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암세포만 죽일 수 있다. 일종의‘스마트 폭탄’인 셈이다. 또 약물분자를 매달아 놓고 자석으로 우리가 원하는 부위에 전달하는‘약물 미사일’로도 응용이 가능하다. 현택환 교수는“이 기술은 당장 상용화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는데 의의가 크다”면서 “또 다른 나노 알갱이 제조방법과 나노촉매, 나노다공성물질 개발에 도전하겠다”라고 말했다.
나노분야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현 교수는 올해 초 젊은과학자상을 수상, 5년 동안 매년 3천만원의 연구비를 받게 됐다. 7월에는 과학기술부로부터 창의연구진흥사업단으로 지정 받아 10억원 가까운 연구비를 확보했다. 지난해 연구비가 한 푼도 없었지만 올해 들어 상황이 정반대로 변했다.
하지만 현 교수는 오히려 바빠졌다. 방학기간이지만 그는 어김없이 9시 학교에 나온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연구실의 불을 끈다.“학생들의 수업이 없는 방학기간이라 오히려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이 많다”라는 게 현 교수의 설명.
5년 전 한국에 돌아온 이후 현 교수는 한번도 게으름을 핀 적이 없다. 지금까지 발표한 20편.‘다작’이어서가 아니다. 현 교수의 논문은 과학논문인용지수(SCI)에 등재된 저널 중에서도 상위권에 집중적으로 게재됐다.
‘깐깐하다’는 소문에 학생들은 현 교수를 꺼렸다. 이 소문도‘제대로 배울 수 있다’로 바뀌면서 그는 올해 밀려오는 학생 중에서 인재를 골라내느라 애를 먹었다. 현 교수 밑에서 석사학위를 받으려면 세계적인 논문 1편, 박사학위는 2편을 써야한다. ‘강요’를 떠올리지만 이는 외부의 잣대일뿐, 현교수는 학생들과 어울려 자유로운 토론지도를 한다. 현 교수는 제자들에게‘연구가 컴퓨터 게임보다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줬고‘고기를 잡는 방법을 속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스스로 알아서 연구를 하도록 터득한 독립적인 과학자’로 변신시켰다. 학생들은 현재 세계적인 논문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현 교수는 자신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도“학생들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다”라며 학생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현 교수의 쉼 없이 도전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저희는 나노 분야의 대한민국 국가대표입니다. 나라별로 한 팀과 싸우는 게 아니라 여러 팀과 싸워야 한다는 게 축구와 다른 점이죠. 과학기술 세계에서는 1등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경쟁자가 이렇게 많은데 이기려면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한수진기자<popsci@sedailly.com>
현택환 교수 약력
64년 대구생
87년 서울대 화학과 졸
89년 서울대 화학과 석사
96년 미국 일리노이대 박사
97년∼현 서울대 응용화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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