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이라 하면 목재골조나 주방의 스토브에서 시작해 냉난방 시설이나 실내 배관 등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에 컴퓨터나 비행기, 우주 등으로 대표되는 최신기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첨단기술」이라는 것이 그저 우리가 사는 집바깥의 소식이라고만 인식이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술진보가 급격하게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인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첨단기술이 우리의 주택에 속속 보급되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하루가 다르게 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안의 더러워진 벽면이 자동으로 세척되는 것이나 최첨단의 주방기구들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특히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연료전지의 개발이나 주방의 모든 시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은 우리의 미래생활이 어떠할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지는 특집기사를 통해 우리의 주택에 보급될 최첨단 기술을 집중 조명해보고 25년 뒤의 우리 주택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 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MIT 공과대학의 건축학과 소속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인 호세 두아르티는 미래의 주택을 설계하고 있다. 사실, 컴퓨터가 집을 설계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두아르티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새로운 유형의 주택 설계 프로그램에 ‘가족 구성원수’, ‘생활 습관’, ‘필요한 방의 개수’, ‘예산 규모’ 따위를 입력한다. 마우스를 클릭한 그는 컴퓨터가 설계한 집에 대해 대략 설명하는 동안 편안히 의자에 몸을 묻는다. 이어 컴퓨터가 출력한 설명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몇 가지를 수정한 후 집 설계 도면 작성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다. 드디어 컴퓨터가 주택의 입체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저는 이 소프트웨어를 가상 건축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라고 두아르티는 진지하게 설명한다. 그는 지금 건축업자나 주택 소유주들을 상대로 이 소프트웨어를 상품화시키고자 재정 후원자를 찾고 있다.
이 소프트웨어는 그냥 평범한 미래 주택 프로그램이 아니다. 현재 두아르티의 소프트웨어는 「시자 말라구에이라」라는 유명한 포르투갈 건축가의 건축 스타일로 설계도를 그린다. 물론 다른 건축가들의 스타일로도 구현할 수 있다. 즉,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서부터 아메리칸 카핀터 「고딕」에 이르기까지 소비자가 마음에 들어하는 그 어떤 설계도라도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10년 안에 전문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을 일반 주택구매자들에게 제공하는 게 꿈이라고.
이제, 미래 주택으로 한 번 들어가 보자. 우선 건물의 정면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편안히 여길 만한 모습으로 꾸몄다. 그러나 내부 구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첨단 기술이 낳은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가상 건축가’라는 기술을 이용,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주택 설계가 가능했기 때문.
저절로 깨끗해지는 표면 기술을 사용하면 집안 살림이 편해질 것이고, 지하실에 설치되는 연료 전지 기술을 통해 집안 전체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받을 수도 있다. 이 연료 전지는 완전 연소에 가까우므로 환경 오염물질을 거의 내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주택들 역시 이 기술의 혜택을 받게 되겠지만, 당장은 새로 짓는 주택에서 이 기술을 선보이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들을 구입할 의향이 있느냐는 점. 왜냐하면 지난 100년 동안도 주택 관련 기술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 불편함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이를 건축업자들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주택 소유자들 역시 커다란 혁신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택 산업은 마치 1950년대의 자동차 산업과 유사한 상태에 있다”고 켄트 라슨은 말한다. 그는 현재 MIT의 「하우스엔(House-n)」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장차 신기술이 주택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내는 중이다. 주택 구입자들조차 부엌의 싱크대 색깔에나 민감하지 주택 구조물의 내구성 문제는 전혀 소홀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최근엔 다행스럽게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 미국 버몬트의 브래틀버러에 본사를 두고 환경친화적인 설계와 건축 관련 기사를 다루는 <인바이어런맨털 빌딩 뉴스> 편집장인 알렉스 윌슨에 따르면 최근에서야 비로소 환경친화적인 ‘그린 빌딩’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내년쯤 해당 산업의 성장률에 초점을 맞춘 시장 조사 결과를 출판할 예정이다. 미국노인협회(AARP)의 예측에 따르면, 2010년이면 미국 내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4천만에 달하고, 2030년이면 6천9백만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집안 생활을 도와줄 신기술을 필요로 할 잠재소비자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아울러 제조업체들이 TV에서 냉장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전제품을 인터넷과 연결하려는 추세인만큼, 머지 않아 집 전체가 온라인화하는 것도 가능하다.
LA에 본사를 두고 연간 24,000채의 집을 짓는 카우프먼 앤드 보드사는 지난 1998년 샌프란시스코 해안 지역 주택 단지에 디지털 배선 패키지를 도입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주택 구입자들 중 80%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이 패키지를 신청했다. 지금 이 회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인터넷을 통해 조명과 보안, 난방 및 냉방 시스템을 관리하는 장치를 옵션으로 내놓고 있다.
물론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 회사의 사장 브루스 카라츠는 앞으로 20년 사이에 몇 가지 신기술들이 더 나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를테면, 그날 그날 방송될 프로그램 일정이나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을 알려주는 욕실 거울, 주인을 알아보고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현관문, 체중을 잰 후 추천 메뉴를 정해주는 저울 등이 그것이다.
주택 모형 변화의 첫 단계는 새 집을 대략 얼마의 비용으로 어떻게 골라 짓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카라츠는 자신의 회사가 짓는 주택의 80% 정도에 대해 대출을 주선해주고 있는데, 비용 문제는 인터넷을 통해 즉시 해결할 수 있게 만들 예정이다.
“온라인을 통해 각각의 방 모양의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말 그대로 방 구경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출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올 겁니다.” 물론 건축 과정을 매일매일 관찰할 수도 있다. “저희 회사는 그 날 일어난 건축 과정을 모두 기록합니다. 건축업자가 궁금하게 여기는 사항이 있으면, 바로 웹사이트에 올려지죠.”
주택 건축은 대개 공장에서 미리 완성시킨 구조물들을 현장으로 운반하여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방식은 이미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기초부터 짓기 시작하는 주택보다 레고 블록처럼 짜 맞추는 방식을 취하는 주택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게 피터 요스트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까지 메릴랜드의 어퍼 말버러에 있는한 미국립주택 연구센터협회에서 자원환경분석과의 책임을 맡은 적이 있다. 인건비가 오르는 바람에 몇몇 대형 주택건설업체들이 조립 공장을 사들였고, 조립 공장의 우수한 품질관리 시스템 덕택에 예전보다 더 나은 주택을 공급하게 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기술 개발이 주택 설계 및 건축 과정에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지만 실지 제품에 적용되기엔 아직 멀다. 주택 구조에 전통적인 목재 골조를 대신할 품목들은 이미 많이 개발되었다. 폼 단열재와 섬유 보드를 샌드위치 구조로 만든 단열 패널을 비롯, 톱으로 썰어낼 수도 있는 가벼운 콘크리트 벽돌, 거품 형태의 영구 단열재 콘크리트, 심지어는 태풍이나 좀벌레에도 끄떡하지 않는 최첨단 합성 목재까지 시장에 나온 상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런 대체 품목들은 아직 틈새 시장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상태가 조만간 급변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목재 골조는 형틀을 짜기가 쉽고 쓰임새가 탄력적이라는 이점이 있어 쉽게 퇴보하진 않을 겁니다”라고 노웍과 코네티컷에서 일하는 스티븐 윈터는 전망한다.
갈수록 자원이 줄어드는 만큼, 나무 조각들을 접착제로 압축시켜 만드는 인공 목재가 인기를 끌 것이라는 것이 윈터의 생각이다. 삼림 벌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건초의 섬유질 같은 목재의 대체 소재로 만든 합판들이 더 광범하게 쓰인다는 것이다. 그는 규토를 주원료로 한 절연 보드나 시멘트와 목재를 배합해 만든 지붕과 외벽 등에 합성 소재가 더 많이 쓰일 것이라 전망한다.
아울러 전류를 이용, 유리의 투명도를 바꿀 수 있는 전기크롬 유리도 등장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최소 세 업체가 수년 내에 전기크롬 창문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창문들은 전류를 공급하는 광기전성 전지를 갖추고, 외부의 밝기 상태에 따라 유리의 투명도를 바꿀 수 있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장착돼 있다. 이 전기크롬 창문은 빛은 물론 열까지도 차단할 수 있다. 창문을 어둡게 하는 데 드는 에너지 1kw면 에어컨에 쓰이는 에너지 30kw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첨단 감지기들이다. 첨단 감지기가 하는 주요 기능은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감지, 문제가 발견되면 구조 연락을 해 주도록 조처하는 것이다. MIT의 라슨은 언제 지붕에 물이 새는지, 송수관에 곰팡이가 언제 피는지를 감지하는 울타리가 머잖아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모토롤라가 개발 중인 디지털 꼬리표를 읽어내는 감지기들도 곧 나올 예정이다. 음식의 재료나 조리법 등이실려 있는 이 꼬리표가 판독기 근처로 지나가기만 하면 된다. 결국, 닭고기를 얼마나 오래 요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오븐의 출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의료용으로 쓰일 감지기들도 있다. 한 예로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감지, 정상치 이하로 낮아진다 싶으면 집에 연락해주는 ‘반지’를 들 수 있다. 주택 시스템은 발광 페인트를 통해 환자에게 알려준다. 만일 반지를 끼고 있는 환자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곧바로 병원으로 연락한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이런 기술에 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택 상담사 케네스 왝스는 인터페이스만 해도 제각각이라며 삶을 더 이상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 그는 VCR에서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명령체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다른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다. 감지기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사생활을 타인에게 중계한다면 반가워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어느날 수리공이 난데없이 집 앞에 나타나 냉장고가 자기를 불렀다고 말하는 상황이 생기면, 십중팔구 경찰을 부르지 않겠느냐고 애리조나주에서 기술 연수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그레이슨 에반스는 꼬집는다.
집안에 있는 센서와 장비가 생산하는 데이터 신호의 교환 방식도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반스는 가정내 전선이나 무선을 통해 데이터를 전송하는 기술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전자렌지나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오히려 새로운 기기가 출현하면서 전자파가 인간을 침해하는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를 보고 이바스는 “마치 고양이와 쥐의 쫓고 쫓기는 형국”이라고 표현한다. 새로운 도구가 나올수록 인류는 점점 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전자신경시스템’의 도입이 진지하게 검토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앞으로 데이터 전송을 위한 대역폭이 커지면 광섬유케이블이 각광받게 될 전망이다. 또 냉난방 시스템과 전력 공급 방식도 변화 조짐이 보인다. 현재 환경관련 법규에 따르면 주요 가전제품은 수명이 다하면 재활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기존 냉난방 장치를 ‘판매’하는 영업 방식에서 ‘임대’형태의 전환을 강구중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냉난방 서비스에 대해 매월 일정금액을 청구하는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을 택할 경우 회사측에서는 냉난방 시스템을 최적 상태로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애써 시스템을 구입하여 유지 보수할 필요없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풍력이나 태양열을 통한 전력을 생산하는 일도 환경보전에 한 몫 한다. 미국 내에서만도 풍차를 이용해 2십5억와트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5백만 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에 맞먹는다. 미에너지국이 운행하는 소규모 풍력 발전소는 2020년까지 8백억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최근 부상하는 또 다른 기술로는 가정에 설치하는 연료 전지를 꼽을 수 있다. 이 연료 전지는 천연 메탄가스나 수소를 전기분해하여 전기를 생산하므로 매연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뉴욕 라담시의 플러그 파워는 이미 17개의 시범용 장치를 현장에서 가동중이다.
대부분의 연료 전지는 재생이 불가능한 천연 가스에 의존한다. 그러나 국립재사용에너지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인 존 터너는 이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있다고 말한다. 이 실험 장치는 햇빛이 잘 드는 사무실 밖 정원 탁자에 놓여 있다.
이것은 세 개의 조그만 태양열 패널이 전해조에 전력을 공급한다. 전해조는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고, 이때 발생한 수소는 연료 전지의 수소 저장 탱크로 보내진다. 연료 전지는 그 수소를 연소하여 팬을 돌리는 것이다. 터너가 패널을 덮고 난 이후에도 팬은 한 시간 남짓 돌아갔다. 그는 야간에 일반적인 가정에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만큼 큰 저장 탱크를 탑재한 대형 장치를 구상하는 중이라고.
가정에서 전력 생산이 일반화되면, 결과적으로 각 가정이 소규모 발전소가 되는 전력공급 시스템이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런 ‘분배’구조라면 인터넷이 차지하는 역할도 점점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떤 가정이 외부 전력이 필요하게 될 경우 내장된 컴퓨터 프로그램이 즉시 인터넷을 통해 가장 값싼 전력을 찾아 줄 것이며, 반대로 전력이 남아도는 가정은 값을 가장 잘 쳐주는 곳에 전력을 팔 수 있을 것이다.
이 신기술이 실용화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 터너가 계산한 결과, 지금 당장 그가 고안한 태양열 연료 전지를 실용화하려면 8만 달러가 든다고 한다. 그러나 가격 문제는 컴퓨터가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 즉, 수요가 늘어 시장이 커지면 비용이 크게 준다는 것. 장비및 서비스 비용을 다달이 물게 하는 휴대전화 공급업체의 사업전략을 택하자는 의견도 많다.
신기술의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주택을 가능한 한 작게 짓는 것. 윈터의 말에 따르면, 미국 내 주택의 평균 크기는 1970년대의 150평방미터에서 215평방미터로 늘었다. 크기가 지금보다 작고 비용이 덜들면서도 질적으로는 훨씬 나은 집이 과연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윈터는 자동차를 빗대어 설명한다.“BMW는 바람처럼 달리면서도 편안하고, 실내 공간도 넓다. 그런데 다른 많은 차들은 이보다 30%가 크면서도 디자인이 잘못된 탓에 실용성이 떨어진다.” 집도 무조건 크게 만들 것이 아니라 더 좋게 만들어야 하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다.
지금으로부터 25년 후, 우리의 주택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
본지는 미래의 주택이 현재의 주택과 비교하여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5인의 미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불러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냅킨 위에 즉석에서 그려낸 미래 주택 모습과 특징이 이채롭다.
머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주택의 곳곳에서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미래의 주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사는 집의 겉모습은 앞으로 25년 후에도 별 큰 변화가 없겠지만, 정작 본격적인 변화는 집안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전문가들의 예측을 소개한다.
플리니 피스크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맥시멈 포텐셜 빌딩 시스템 센터 소장
2025년의 집은 공간적 배치와 스타일 면에서 여러 유형이 존재하는 일종의 전투장비와 같을 것이다.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탄력적으로 짓는 동시에, 공간적 용도 변화에 따라 확장과 해체가 용이하게 설계될 것이다. 집의 가치는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아울러 집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를 재배치하거나 용도 변경의 용이성도 중요시된다. 갈수록 지구 온난화 현상이 문제가 되는 만큼, 개별 건물의 역할과 기능이 소유주에게는 물론 건물이 위치한 지역에도 매우 의미가 깊다.
지 제임스
미 에너지국의 빌딩 아메리카 프로그램 매니저
미래에 건설될 주택의 외양은 오늘날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에 대해서 주택 구입자들이 갖는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연료 전지나 태양열 발전 등과 같은 최신 기술이 널리 사용되고 비용은 훨씬 저렴해질 것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 주택 단지보다는 작은 마을과 같은 주거 형태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을 것이다. 또한 건축 시스템의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가전제품의 구성이나 배선과 관련된 변화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애비 프리드먼
맥길 대학 건축학과의 주택 공급 프로그램 소장
주택의 외형은 거의 그대로 보존될 것 같다. 그러나 내부는 거주자의 생활 습관의 변화, 기술 혁신 등의 영향을 받아 많은 변화를 보일 것이다. 주거 비용이 오르면서 단촐한 핵가족 단위의 주거 형태가 늘어나는 반면, 건축과 관련한 비용 문제 때문에 천연 재료의 사용은 줄게 될 것이다. 아울러 미리 제작, 완성된 모듈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건축이 이루어질 것이다. 에너지 효율은 기본이고, 지능형 가전제품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다. 외부세계와 통신할 땐 컴퓨터가 지배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위톨드 리브친스키
펜실베니아 대학 도시 부동산학과 교수
‘미래의 집’이니 ‘내일의 도시’니 하는 것에 다소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스피커나 전자 장치, 자동차 등과 달리 건축물은 오랫동안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내 운동화는 6개월 전에 산 것이고, 컴퓨터는 이제 2년이 되었으며, 자가용은 6년 전에 구입했다. 반면 집은 1908년에 지어진 것이다. 내 이웃들 중엔 이보다 훨씬 오래된 집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현대인들은 19세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도시의 무차별 확장 현상은 분명 우리
곁에 계속해서 존재하겠지만 이 사회가 다양성과 상업화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맬콤 웰스
작가. 흙을 재료로 한 건축에 대한 도서 다수 집필
1990년대 들어 컴퓨터의 사용이 전 세계로 퍼진 경우처럼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생태계 친화적인 건축이 표준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도시의 비대화에 질린 사람들은 벌써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대지를 가득 메운 콘크리트 빌딩과 아스팔트의 확장을 막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가정의 기능을 갖춘 주택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흙을 사용하여 짓는 건물의 에너지 절약 효과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실내도 밝고 쾌적하다. 이런 건축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소생시킨다는 데 있다.
Get Wired
초고속 통신망을 통해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으로 제어하는 미래의 주택은 약속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에서 장보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By Suzanne Kantra Kirschner
아침 6시 15분전, 밀러의 가족은 아무도 일어날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커피는 끓고 있고, 애완견은 바깥 나들이에 나섰다. 정원에서는 스프링클러가 저절로 돌아가고, 위 아래층 욕실안은 바닥과 수건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다.6시가 되자, 안방과 아이들 방 커튼이 서서히 걷힌다.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스며들어 밀러 가족을 단잠에서 깨운다. 일과 공부가 기다리는 하루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밀러 가족이 하인들의 시중을 받는 저택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다. 다만 그 하인이 사람이 아니라 정교하게 만들어진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이라는 점이 틀린 것 뿐이다. 오늘날 시스템이 하는 일반적인 기능은 냉난방을 조정하고, 보안을 책임지며, 조명과 오디오, 비디오를 작동시키고, 컴퓨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뿐만은 아니다. 앞으로는 사람의 일과를 챙겨주고, 건강을 체크하며, 사람이 내린 지시나 스스로 수집한 정보에 따라 자질구레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결해주는 기능이 추가된다. 더욱 반가운 일은, 식구들의 생활습관까지 알아뒀다가 그때그때 적절하게 맞춰준다는 점.
밀러네 식구는 침대에서 일어나 맨 먼저 개인용 디스플레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종이 한 장 크기의 무선 LCD 터치스크린을 열면, 출근길 교통 상황에 날씨 정보를 포함한 그 날의 일과가 일목 요연하게 정리돼 나타난. 더러는 사용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오늘 밀러에게는 다음 주에 있을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 선물을 보내겠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아차 싶었지만, 밀러는 단지 선물을 고르고 인사말을 타이핑하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시스템이 다 알아서 한다.
밀러 부인에게는 반년마다 받는 치과 검진이 오늘 있다는 전자우편이 들어왔다. 시스템이 벌써 밀러 부인의 바쁜 일정사이에 비어있는 시간을 비집고 검진 예약을 해둔 상태며, 그 시간에 맞추어 가겠다는 답신을 보내는 것으로 치과 검진 문제는 해결되었다. 밀러의 아들은 시스템이 일러준 학교 점심 메뉴 때문에 고민이었다. 싫어하는 생선 튀김이 나온다는 것인데, 결국 도시락을 싸들고 가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아직 딸은 너무 어려 일과표가 따로 없다. 그렇지만 귀여운 딸아이가 잠에서 깼는지 여부는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누구나 알 수 있다.
아침식사를 끝내고 차에 오른 밀러 부인은 차안에 있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현재의 교통상황을 확인한다. 밀러는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시스템이 그녀를 알아보고 문을 열어준다)에게 딸아이를 맡기고 집안에 있는 자기 사무실로 들어갔다.
이 정도라면 2025년에 살아갈 집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2010년, 아니 2005년 정도만 되어도 당장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첨단 홈오토메이션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 벌써부터 하나 둘 실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쌍방향 네트워크와 홈 서버가 홈오토메이션 구현의 핵심 열쇠다. 네트워크를 통해 방에서 방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서버는 두뇌 역할을 한다. 즉, 들어오는 정보를 집합시키는 동시에 에어컨이나 위성 TV 수신기 등과 같은 구성요소들에 다양한 작업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새로운 주택 기술 시장조사업체이자 컨설팅 회사인 팍스 어소시에이츠사에 따르면, 미국 내 올 한 해에만 150여만 주택이 신축되며, 이중 14% 정도가 초고속 인터넷 접속과 홈오토메이션을 위한 배선을 갖추게 된다. 또 2004년이면 새 주택의 45~50%가 이같은 설비를 하게 될 전망이다. 패스트사나 크레스트론 리모트 컨트롤 시스템즈사는 벌써부터 조명, 보안 및 오락 장치들을 조종할 수 있는 컨트롤러가 딸린 패키지형 주택을 내놓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이나 월풀 등의 회사는 식품을 저장하면서 인터넷 검색도 가능케 하는 네트워크형 냉장고의 시제품을 내놓았다.
선빔사는 내년 초쯤 자명종 시계와 전기 담요, 커피 메이커 등을 포함한 홈 링킹 테크놀로지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 물론 이들 가전제품은 상호 협조체계를 유지하며 작동된다. 한편, 애리스턴 디지털사도 휴대 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명령을 내리는 지능형 세탁기 「마게리타 2000 닷컴」을 출시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홈오토메이션이 뜨는 것일까? 팍스 어소시에이츠사 소속 연구원 커트 셰프는 “엄밀히 말하면 홈오토메이션이 아니라 데이터 네트워크”라며 “초고속망을 깔면 홈오토메이션 설치가 훨씬 쉽다”고 초고속 통신망의 장점을 열거한다. 홈오토메이션 앤드 네트워킹사를 경영하고 있는 데이비드 한셋은 직장에서 이미 친구나 가족 혹은 특정 서비스와 곧바로 연결하는 편리함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제는 집에서도 똑같이 서비스를 즐기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홈오토메이션의 최대 걸림돌은 아직까지 일반적인 배선이나 표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 전화선과 동축케이블, 광케이블에서 전선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전선이 오늘날 우리 가정을 채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공급되고 있는 데이터 전송방식인 프로토콜은 이보다 더 다양하다. 따라서 전선처럼 작용하는 네트워크가 시급한 상황이다. 스테레오 시스템이건 토스트기건 같은 콘센트에 꽂아서 쓸 수 있는 표준이 필요한 것이다. 스리콤사에서 올 가을에 출시할 예정인 「이더넷 파워 소스」가 어쩌면 이 역할을 하게 될 것도 같다. 이 제품은 데이터는 물론 전력까지도 공급하는 장치이다.
홈오토메이션 시스템과 개인용 혹은 공동 장비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무선 장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만큼, 무선 통신의 표준을 정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가장 유망한 무선 표준으로 블루투스를 꼽을 수 있는데, 이는 9미터 거리에서 1Mbps의 속도의 데이터 전송을 가능케 한다.
만일 단 하나의 프로토콜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든 프로토콜에 대해 범용 번역기 역할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 표준을 기대해봄직도 하다. 이에 대해 한셋는 결국 세 가지 표준이 살아남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첫째는 장비들 사이의 위성 통신이나 무선 전송을 포함하는 무선 네트워크용이고, 두 번째는 전원 케이블용이다. 세번째는 전화선, 광섬유, 동축케이블을 포함하는 유선 네트워크를 위한 표준이다. 그리고 네트워크들 간에 서로 대화가 가능하게 만드는 번역기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앞서 말한 밀러의 집에 설치된 홈오토메이션은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당장 해야 될 숙제가 없는지를 체크한다. 이 숙제를 다운로드받아 마치고 교사에게 보낸 후에야 TV가 켜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들은 별 도리 없이 공부방으로 향한다.
저녁 시간이 되자 밀러는 디스플레이를 통해 아까 주문한 연어가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뭘 만들지 웹사이트를 뒤진다. 그리고는 지능형 앞치마를 두른 후, 섭씨 170도로 데우라고 오븐에 지시한다.
그 날 밤 밀러네 식구가 잠자리에 드는 동안, 시스템은 식구들이 깜박 잊고 켜둔 조명들을 차례차례 끄고, 온도를 조정하며, 커튼을 내린 후 보안 장치를 가동시킨다. 그동안 밀러 부인이 욕실에 걸린 진료용 거울을 슬쩍 확인해보니, 낮에 한 운동 덕택에 혈압이 낮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밀러는 내일 아침 비행기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자동차 렌탈을 요청해 둔다. 밀러 가족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간다. 머지않아 우리가 사는 일과도 이렇게 될 것이다.
거울로 진단
아이디오사의 시험용거울. 심장 박동수와 혈압 등을 재며,건강 진단 결과를 의사에게 전달한다.
앞치마가 요리사
필립스사에서 개발중인 이 신기한 앞치마만 두르면 오븐을 미리 달궈놓을 수 있고, 조리법을 배우거나 아이들을 식탁으로 부를 수도 있다.
첨단 사무실 모습
필립스사에 따르면, 미래 사무실에서는 필기체를 인식하는 지능 펜과 비디오 카메라, LCD 패널, 프린터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세탁기도 인터넷으로 작동 아리스톤 디지털사가 내놓은 최첨단 세탁기 「마게리타 2000 닷컴」은 휴대전화나 인터넷으로도 작동된다.
어린이용 스테레오
아이들이 필립스사의 「모비」같은 무선 스피커를 들고 다니며 좋아하는 음악을 즐길 날이 온다. 음악은 홈오토메이션 시스템에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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