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라 불리는 이 수수께끼 비행기는 조만간 우리 앞에 정체가 드러날 듯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양한 군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독특한 가변익기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세간에 알려진 것이 없다.
이미 항공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지난 1989년부터 미 국방부가 노후한 F-111 가변익 비행 편대를 대체할 새로운 항공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1995년에 영구 퇴역한 F-111기는 전투기가 지닌 자위 능력을 갖춘 동시에 시속 2,600km 이상 속도로 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중형 폭격기였다.
이로부터 몇 년 뒤, 새로운 가변익기가 뉴멕시코주 캐넌 공군기지 부근 및 버지니아주 랭리 공군기지에서 목격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신형기를 참관하기 위해 고위 관리들이 두 기지에 모였다는 소문도 있었다. 이 비행기는 텍사스주 아마릴로 상공에서도 목격되었다. 본지는 지난 1995년 관련 소식을 독점 취재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 뒤 이 비행기는 처음에 보도된 바와 같은 일반적인 가변익기가 아니라 독특한 전방회전익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머니칼처럼 날개를 몸통에 접어넣을 수 있다고 해서 조종사들은 이 비행기를‘잭나이프’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뛰어난 설계 덕분에 전투기로도, 폭격기로도 쓸 수 있는 다용도 비행기다.
이 비행기 날개는 동체 뒷부분에 있는 회전축에 부착돼 있다. 날개를 옆으로 펼치면 비행기는 감속, 정확한 곳에 폭탄을 투하할 수 있으며 단거리 비포장 활주로에도 착륙할 수 있다. 날개를 전방으로 반쯤 꺾으면 기동성이 민첩한 전투기로도 변신한다. 날개를 완전히 접어 날개 끝이 맨 앞에 오도록 만들면 마하 3 속력으로 쾌속 비행하는 삼각형 형상의 비행기가 탄생한다.
미국 특허 5,984,231호에는 이 회전 날개에 대한 자세한 그림과 설명이 나와있다. 내용은 이렇다. “상기 장치는 항공기를 원하는 비행 상태로 변경하는데 쓰일 수 있다. 적절한 위치로 날개를 움직이는 것도 그런 방법 중 하나다.” 요컨대 이 전방회전익기는 비행 도중 부여받은 임무에 따라 최적 모양으로 변신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특허는 비밀 병기를 오래 전부터 만들어온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노스롭그루먼사가 1999년 11월 취득한 것이다. 기밀 해제는 대개 이런 특허가 나온 지 1년 안에 이루어진다.
전방회전익기는 1994년 합병한 노스롭사와 그루먼사가 그전부터 따로 해온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루먼사측에서 맡은 임무는 전방회전익이 달린 전투기 크기의 시제기를 개발하는 것이다. 독특한 날개 때문에 X-29는 마치 뒤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덕분에 놀라운 기동성을 자랑하며 45도 받음각에서도 좀처럼 실속(失速)이 발생하지 않는다.
전방회전익기는 구조상 불안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대신 민첩하다. 그러나 이런 날개 모양이 폭격기로서는 몇 가지 중대한 약점으로 작용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비행시 동체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확한 폭탄 투하가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오랜 연구 끝에 안정된 비행 상태에서 날개 모양을 바꿔 순식간에 불안정한 상태로 전환하는 이 항공기를 용도가 매우 다양한 전술 폭격기로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다 적의 레이다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기능을 추가하고 마하 3 이상의 빠른 속도를 주면 작전사령관이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꿈의 비행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미 공군은 F-111기의 후속 기종 개발 계획을 아직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공군이 중형 폭격기 같은 기종의 설계를 포기한 적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다. 현재 미 공군은 대형 폭격기 3종(B-1B, B2, B-52), 소형 폭격기 1종(재래식 폭탄 2발을 탑재할 수 있는 F-117A)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1970년대 전투기를 전술 폭격기로 개조한 F-15E가 있다. 하지만 퇴역한 F-111 아드바크에 필적할 다목적 중형 폭격기는 현재로서는 없다. F-111 후속 기종은 정확한 폭탄 투하 능력, 공중전의 우위, 장거리 비행 능력, 레이다 회피 능력, 목표지역에 대한 신속한 진퇴(進退) 능력 같은 다양한 전술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대다수 사람의 요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는 비행기를 설계하기란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항공기술자는 이 어려움을 “추적해오는 경찰차들을 모조리 따돌리면서 2톤의 짐을 싣고 험준한 비탈길을 거뜬히 올라갈 수 있는 경주용 자동차를 설계하는 일”에 비유한다.
과거 다목적 비행기는 설계상 부분적 희생이 불가피했기 때문에 완전무결하다고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전방회전익기는 다양한 비행 능력을 가진 첨단 전술 전투폭격기에 요구되는 설계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노스롭과 그루먼은 첨단 항공기 설계 분야에 풍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노스롭은 B-2 스텔스 폭격기, YF-23 첨단 전술 폭격기 시제기, 최근에 공개된 태싯블루(Tacit Blue) 스텔스기의 주계약사였다. 그루먼은 X-29와 해군의 첨단 가변후퇴익기 F-14 톰켓을 설계 제작했다.
지난 얘기이긴 하지만 두 회사가 하나로 합치면서 얻어진 설계력의 상호 보완 효과가 컸던 것 같다. 그렇다면 YF-23과 X-29는 모두 난관에 부딪힌 게 아니라 은밀한 프로젝트를 은폐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웠던 방편이었을까? 만약 두 기종이 하나로 합쳐졌다면 틀림없이 엄청난 군용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 신형기를 몰 새로운 비행대도 극비리에 당연히 편성되었을 것이다. 최근 본지는 항공 전문 기자 짐 구덜로부터 신형기를 모는 조종사들이 부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부대 휘장을 입수했다. 이 휘장에는 여느 휘장처럼 비행기에 대한 단서가 들어 있다. 검과 앞으로 튀어나간 손잡이는 비행기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같다.
국방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재 이 비행기는 일반에게 공개하기 위한 최종 심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극비리에 개발된 F-117처럼 전방회전익기도 언젠가는 대낮에 창공을 날면서 에어쇼 주역으로 떠오르겠지만 당분간은 밤에만 비행할 것이고 자세한 설계 내용도 소수 관계자들의 머리에만 들어 있을 것이다.
전방회전익기의 역사새로운 가변익기의 뿌리는 과거에 개발됐는 파격적인 비행기 설계에서 비롯된다. 1980년대 중반 그루먼 항공사는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 NASA, 미 공군과 함께 X-29(오른쪽)라는 실험기를 개발했다. 이 연구 목적은 전방회전익(FSW: Forward-Swept Wing)을 가진 비행기의 기동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FSW기는 불안정한 대신 기동성은 뛰어나지만 조종사에 의한 조종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전기신호식 비행조종 시스템, 초강력 날개 작동기, 유연한 날개 소재가 결합돼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공중제비를 돌 수 있는 FSW기가 탄생했다. FSW는 재래식 날개에 비해 장점이 많지만 특히 항력과 실속이 적은 게 강점이다.
X-29는 오랫동안 무리 없이 날면서 FSW기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조종사가 높은 중력을 견딜 수만 있다면 미래형 FSW 전투기는 탁월한 공중전 능력과 미사일 회피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X-29 개발이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도 미국 전투기 중에서 전방회전익을 가진 기종은 전무한 형편. F-22나 JSF(합동타격전투기) 같은 첨단 기종도 FSW를 도입하지 않았다. 반면, 러시아는 FSW 잠재력을 깨닫고 Su-37기를 FSW기로 개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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