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렵하고 나지막한 크롬 소재의 차체는 당시 미국 자동차 역사에 있어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시판 차량 대부분이 러닝보드 및 도토리껍질 형태의 헤드라이트를 장착한 보니 앤 클라이드식 스타일로 운두가 높고 펑퍼짐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Y-Job모델은 오늘날의 컨셉트카들처럼 오토쇼의 눈요깃거리로 제작된 것이 아니었다. 디자인실장인 할리 얼이 직접 디트로이트 시내로 타고 나가 멋진 자태를 한껏 뽐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컨셉트카 발전 히스토리
Y-Job의 등장 이후 지난 64년간 컨셉트카는 수많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다양한 용도로 제작됐다. 그중 일부는 신기술의 실효성을 입증할 목적으로 제작됐다.
전자동 내장형 헤드라이트나 파워 윈도우(power window), 크루즈 컨트롤(cruise control), 리어뷰 TV(rearview TV), 주차 센서, 키를 사용하지 않는 점화장치, LED 브레이크 조명등, 채광 조절형 지붕 유리창(variable-opacity roof glass), 내비게이션 시스템, 레인센서(rain sensor), 접이식 금속 지붕 및 지금은 보편화된 기타 수십 개의 설비가 일찍이 1940년대의 컨셉트카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그 밖의 컨셉트는 실용화되지 못했다. 1996년도 브리티시 오토쇼에서 코번트리 대학의 디자인팀은 ‘컨셉트2096’ 모델을 소개했다. 이 차는 바퀴와 차창이 없는 무인자동차로 늪을 건널 때 넓적다리의 피를 빠는 거머리와 흡사한 생김새를 지녔다. 동력장치(power plant)의 경우는 어떨까? 제작당사자들이 인정하다시피 존재치도 않던 “슬럭 드라이브(slug drive)”의 사용을 가정했다.
일부 컨셉트카는 신형 디자인 동향에 관한 일반대중의 반응을 가늠하는 여론조사나 시사회의 기능을 했다. 반면 디트로이트쇼에서 전시할 목적으로 시판 모델에 파격적인 변형을 가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차년도에 출시할 픽업트럭에 26인치 두께의 바퀴와 고무 밴드 타이어, 중장비에 사용되는 15리터 V12엔진 및 40,000 달러 상당의 화려한 도색작업을 첨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미래차 방향제시
하지만 컨셉트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목적은 미래 자동차의 향방을 제시해줄 법한 모델을 제작하는 일이다. 실제로 운행 가능하건 또는 그저 플라스틱 셸에 그치건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오늘날처럼 자동차업계 전반에 걸쳐 미래 모델의 개발이 중요성을 더하고 있는 상황에서 컨셉트카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오늘날의 컨셉트카 개발은 군비경쟁과 흡사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BMW와 같은 세계 유수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디자인 컨티뉴엄(매사추세츠 주 소재)사의 수석 산업디자이너인 데이빗 레이추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즘 컨셉트카의 제작 대수만 보더라도 놀랄 만 합니다. 시장 진입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라 할 수 있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컨셉트카의 황금기인 1950년대 그리고 이후 수십 년간 그중 최상의 모델들은 기술의 향방을 예견해주는 한편 시험대의 역할도 담당했다.
물론 반짝 효과를 노린 디자이너의 손에서 모조 제트배기장치나 로켓 핀(fin), 전투기용의 물방울형 조종석 덮개(bubble canopy) 따위가 장착됨으로써 미래형 자동차로 둔갑할 가능성이 늘 존재했지만 말이다. 오늘날 컨셉트카 디자이너는 무선 내비게이션 네트워크 시스템처럼 차체 내부에 사용될 각종 기술 문제를 다룬다. 이와 같은 기술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
미래의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신기술의 특성상 일반대중에게 이해시키기란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하이브리드 기술이 그처럼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컨설팅사인 디자인 컨티뉴엄(Design Continuum, 보스턴 소재)의 선임디자이너 앨런 머드의 지적이다.
“사람들은 전기모터와 가솔린 엔진의 결합에 대해 쉽게 이해합니다. 반면 재생형 브레이크 시스템의 원리를 일일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죠. 그런데 수소와 연료전지기술 대목에 이르러서는 내용이 더욱 더 어려워집니다.”
GM 2002년형 오토노미
그러나 최근 등장한 컨셉트카 가운데 두드러진 모델이 몇몇 눈에 띈다. GM의 2002년형 오토노미 모델의 프로토타입은 지난 십년간 등장한 컨셉트카 중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내장형 연소엔진의 후기 패러다임에 입각한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 오토노미의 경우 동력장치(power plant)와 연료탱크, 스티어링 컨트롤 장치가 6인치 두께의 “스케이트보드”에 밀집돼있다. 거추장스러운 엔진이나 연료탱크는 물론 추진축(drive shaft)까지 생략됐다. 더 나아가 운전대의 자리가 고정돼있지 않을뿐더러 운전자가 원할 경우 운전대를 아예 생략할 수도 있다.
스케이트보드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스냅온(snap-on) 형태의 차체는 물론 좌석 및 컨트롤시스템 등의 부분에서 파격적인 설계를 시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문제는 있다. 이러한 기술은 앞으로 수년 후에나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출신 디자이너인 그랜트 라슨의 작품인 1993년형 포르쉐 박스터 모델의 경우처럼 컨셉트카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둔다 하더라도 반드시 생산단계로 연계되는 건 아니다.
현실세계에는 규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컨셉트카에서는 범퍼나 배기가스, 보행자 안전 등급따위의 관련규정을 깡그리 무시할 수 있습니다.” 볼보 컨셉트 센터(캘리포니아 주 카마릴로 소재)의 부사장인 라스 에릭 룬딘의 설명이다. “따라서 컨셉트카 단계에서 실제 차로 넘어가게 되면 원래의 디자인을 고수할 수 없기 때문에 실망하기도 하죠.”
그러나 현재 룬딘은 스웨덴 고센버그에 위치한 볼보 본사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음을 주지하라. 오늘날의 컨셉트카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은 토요타시티나 디트로이트의 본사 사무실에 갇혀 지내는 직원들이 아니다.
남부캘리포니아나 바르셀로나 파리, 밀라노 등 활력이 넘치는 문화 중심지를 무대로 활약하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스타일리스트들이다. 컨셉트카는 찬란한 태양 아래 양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탄생되고 있다. 룬딘은 이렇게 말한다. “본사 한가운데 틀어박혀 있다보면 최고의 디자이너라도 생산프로젝트의 완성 독촉에 늘 시달려야 합니다.
컨셉트카를 구상해낼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죠. 미래의 일보다는 지금 당장 눈앞의 업무가 중요하니까요.” 컨셉트카 디자이너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확실히 문제가 될 만하다. 직업의 본질상 이들에게는 미래가 곧 현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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