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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계 최악의직업

지금 직업이 불만스러운가?38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 날벌레가 우글대는 수풀 한가운데로 침대커버를 끌고 다닌다고 상상해 보라. 주기적으로 발을 멈추곤 하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버에 달라붙은 수십 마리의 해충을 일일이 핀셋으로 집어 채집병에 담아 넣기 위해서다.

직업을 바꿀까 고민 중인가? 수년간의 교육과정 끝에 마침내 수의사가 돼 연구소에 취직했는데 막상 하는 일이라곤 멀쩡한 강아지들을 불치병 환자로 만드는 거라고 상상해보라. 더구나 연구가 끝나고 나면 불쌍한 강아지들은 모두 안락사 처리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말이다.오늘 하루도 형편없다고 생각하는가? 환자 십여 명의 항문에 생긴 사마귀를 꼼꼼히 살펴보는 일로 하루를 보내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은 분야나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조사 결과 본지에서 과학계 최악의 직업으로 선정된 나머지 14개 일에 종사하는 분들을 가엾게 여길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들 직업을 꺼리는 만큼이나 이들 역시 우리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번 조사과정에서는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수백 명의 과학자들을 상대로 최악의 직업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과학담당 기자”라는 영광스럽고도 존경스러운 직업이 계속 득표를 얻었으니 말이다. 실제 과학 연구에 종사할 기회가 없다는 점과 기사 작성 시 대상이 되는 주제를 단순화 아니 “초단순화”해야 한다는 애로사항이 주된 이유로 거론됐다. 물론 이런 점도 이 직업의 매력이겠지만 말이다.

1.항문 사마귀 연구원

“하루 15명 정도의 엉덩이를 보는데 그 중 1/3이 사마귀가 있습니다.” UC샌프란시스코의 간호사 나오미 제이의 설명이다. 제이와 전염병 전문 의사인 조엘 팰러프스키 박사는 사상 최초로 항문에 발생하는 성인성(性因性) 질환에 관한 광범위한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제이는 “두 사람 모두 엉덩이의 왕과 여왕인 셈이죠.”라고 평한다.

우리 모두 평생을 살면서 항문 사마귀에 걸릴 확률이 약10%정도 되는데 항문 사마귀의 변종 가운데 가장 유해한 종류는 바로 유두종(乳頭腫)이다. 제이에게 있어 유두종이야말로 경계대상 1호이다. 이 성인성 질환은 여성에게 경부암(頸部癌)을 유발할 수 있으며 남성, 여성 모두에게 항문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

이처럼 치명적인 희귀 질환의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제이와 같은 전문 간호사에게 문제의 부위를 검사 받는 수밖에 없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13년간 이 일을 했는데 진찰 도중 환자가 대변을 본 경우는 두 번밖에 없었답니다. 그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죠.”

2.기생충 학자

기생충의 숙주가 되기보다야 기생충을 연구하는 편이 낫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즉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순전히 자의로 이 일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믿거나 말거나 간에 말이다. 이들은 세계보건기구와 각종 국제자선단체의 후원 하에 수백만 인구를 괴롭히는 질병을 근절하고자 열대지역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그러나 일반대중으로서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은 자주 접하면서도 기생충과 싸우는 전문가들의 고충에 관해서 들을 기회는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기 전에 이쯤에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권하는 바이다]...회충의 경우 소장에 알을 부화한 뒤 폐로 이동한다.

회충 알은 기침을 통해 구강으로 들어가 뱃속으로 삼켜져 이곳에서 16인치 길이 정도로 자란다. 또한 암컷은 여기서 수십억 개의 알을 낳는데 이 알들은 대변을 통해 바깥으로 배출돼 다시금 새로운 생명주기를 시작한다. (성충 역시 이러한 경로를 통해 외부로 배출되는데 그 형태가 마치 스파게티 국수가 얽혀있는 큼지막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반크롭트사상충은 때때로 음낭(陰囊)에 자리 잡게 되는데 이곳에서 림프의 흐름을 차단하곤 한다.

그 결과 상피병(象皮病)이 발생하는데 상피병이란 음낭이 비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질환으로 목숨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이다. 한편 이와 함께 메디나충의 경우를 살펴보자면...[위의 조언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하기 바란다]...암컷 메디나충은 내장으로부터 피부 즉 다리 피부 바로 밑 부분으로 이동해 이곳에서 3피트나 되는 길이로 성장하기 시작하며 그 자리에 알을 까놓는다.

알에서 깨어난 수천 마리의 유충은 피부에 수포를 만든 뒤 이를 뚫고 나온다. 모충은 여전히 체내에 남겨진 상태에서 말이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모충을 없애기 위해 막대기에 모충의 머리를 감아 아주 천천히 비트는 방법을 써왔다.

모충의 길이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루에 막대기를 한번씩 돌린다고 생각하면 대략 수주 또는 수개월이 소요된다. (의학의 상징물이 뱀과 막대로 형상화된 고대의 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라는 점만 보더라도 이러한 치료법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생충학자들은 이처럼 음지에서 묵묵히 인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더욱이 공공연히 입에 올리기에는 영 껄끄러운 이 분야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리라. “기생충 사진을 보인다거나 관련 질환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일반대중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거든요.” 에머리대에서 기생충학을 연구하고 있는 에릭 오테슨은 이렇게 평했다.

3.실험용 동물을 관리하는 수의사

“수의과대학에 가는 이유는 대부분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죠.” 콜로라도 주립대 수의과대학의 데이빗 닐 박사의 말이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면 아주 흥미로운 전이를 겪게 됩니다.” 사실연구에 관심 있는 수의사라면 대부분 애완견 또는 고양이의 벼룩이나 소독해주며 소일하기보다는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기 마련이다. 이때 수의대생 상당수는 닐의 지적대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근본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미묘한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병든 동물을 치료해주는 역할로부터 멀쩡한 동물을 병들게 하는 역할로 옮겨가는 것이다.” 닐도 한때는 심장질환 연구를 위해 어리고 건강한 비글종 개에게 동맥혈전증세를 일으키도록 시술한 적이 있었다. 개에게 심장 박동기를 이식함으로써 어떤 형태의 박동기가 가장 성능이 우수한지 가려내는 연구를 도왔다. “실험실에 있는 개들은 하나같이 순해요.

실험 과정에서도 너무 말을 잘 듣죠.”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닐의 음성이 우울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개들 입장에서 보면 한 주라는 기간 중 가장 좋은 시간일 테니까요.” 연구가 끝나면 개들은 여지없이 안락사 처리됐다. 생물과학계 전반에 걸쳐 쥐부터 침팬지에 이르는 각종 동물들이 실험용으로 사용되다 죽임을 당하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대체로 최대한 인간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이러한 연구를 통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한 마디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사회적 묵계가 이루어져온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처럼 꺼림칙한 일을 직접 해내야 하는 사람은 닐과 같은 수의사들이다. 콜로라도 주립대 철학과 교수인 버니 롤린은 그간 동물 복리에 관해 연구해왔다. 롤린 교수에 의하면 수의사들 대부분이 동물 실험과 관련된 도덕성 문제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다고 한다.

4.여성 성질환 연구원

질(膣)의 감염성 질환 연구에 관심이 있다면 해당 부위를 문지르거나 소변검사 또는 피펫을 사용해 샘플을 채취할 수 있다. 아니면 생리대에서 샘플을 채취할 수도 있다. 호주의 미생물학자 수잔 갈란드가 이끌고 있는 로얄 여성전문병원(빅토리아 주 소재)의 연구팀은 생리대야말로 많은 인구를 대상으로 한 성인성 질환의 역학 조사에 있어 가장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의 경우 의사가 개입되는 테스트보다는 혼자 할 수 있는 친숙한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연구과정에서는 원심분리기를 사용해 테스트할 용액을 추출한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생리대에는 샘플 채취용 도구로서 결격사유가 있다. 생리대의 본래 목적은 용액을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갈란드의 말대로 “생리대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으로 직접 짜는 것이다.” 물론 장갑은 낀 상태에서 말이다.

5. 매립지 모니터요원

지질학을 전공한 마이클 하클로드는 미끼 아니 낚싯바늘에다 줄, 봉돌까지 덥석 물고 만 케이스다. 하클로드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오래된 매립지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이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질 및 토양 대상으로 실시된 현장조사에 참가했다.

연구작업에 직접 참여한 경력이 앞으로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러나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38 의 무더위 속에서 캘리포니아 주 베이커스필드 매립지가 뿜어내는 악취였다. 수십 년 묵은 쓰레기 수천 톤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고농축 침출수가 여과 없이 스며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재 탄 냄새가 뒤섞인 시큰한 금속성 내음 때문에 수시로 구역질이 났어요. 하루 일과를 마칠 무렵이면 온몸에서 화공약품 냄새가 진동을 했죠.”

하클로드는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쓰레기에 포함된 다이옥신 성분이 가장 위험한 발암물질이더군요. 거기다 더 압권인 건 시간당 보수가 유해물질 처리반원의 절반밖에 안됐다는 겁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하클로드는 지질학 연구분야에 종사하겠다는 본래의 꿈을 접었다. 그는 현재 고등학교 과학교사로 재직 중이다. 과연 이게 더 나은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6. K-25빌딩 철거작업원

“석면과 방사선, 플루토늄, 기타 유독성 화학물질”은 본지의 독자인 윌 클라크의 생활이다. 클라크는 지난 해 처음 실린 “최악의 직업” 기사를 보고 난 후 140만 평방피트의 대형건물인 K-25빌딩을 철거하는 자신의 일을 후보로 추천했다. K-25빌딩은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 위치해있다. U자형의 대형건축물로 최초의 원자폭탄에 사용된 우라늄 농축작업이 이루어진 장소이며 1977년까지 이 작업이 계속된 곳이다.

실제로 건물 전체가 방사선과 석면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석면은 1940년대 방화재로 많이 사용됐으나 이후 발암물질로 판명된 소재다. 현재 클라크와 동료들은 이런 위험에 노출된 채로 복잡한 철거작업에 진땀을 빼고 있다. “전용작업복과 종이 옷, 라텍스 장갑 두 켤레, 모자, 고무 부츠, 안전모 그리고 이중 필터가 달린 방독면을 착용한 후 일을 시작하죠.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나면 샤워를 하고 온몸을 문질러 닦습니다. 차나 집안 식구들에게 유해물질을 옮기지 않기 위해서죠.” 클라크의 설명이다.

7.세인트 존 항구의 생태학자

1억2천만. 뉴펀들랜드의 아름다운 세인트 존 항구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숫자이다. 그렇다면 항구 주변에 서식하는 물떼새의 수를 가리키는 게 아닐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음...그럼 여름 밤하늘에 보이는 별의 수일 것이다. 역시 아니라고? 오, 이제 알았다! 천혜의 해양환경에서 서식하고 있는 어종의 수가 틀림없다. 또 틀렸다고? 1억2천만이란 숫자는 도심 하수구에서 항구로의 일일 오물 배출량이 1억천만 리터라는 의미다. 올림픽 수영장 50개 정도를 채울 만한 분량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역사적으로 별도의 하수처리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항구의 오물을 광활한 대서양으로 내보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런 생각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오늘날 시의 거주인구가 13만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북대서양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뉴펀들랜드 메모리얼 대학의 미생물학과 교수인 데보라 스콰이어즈-파슨즈가 이끄는 연구팀이 나섰다. 이들은 보트를 타고 직접 바다에 나가 오물의 샘플을 채취해 하수쓰레기가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해악을 규명하고자 한다.

세인트 존 항구는 주위의 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단 스콰이어즈-파슨즈 박사의 말대로 “해수면 위로 떠오르는 오물더미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물이라면 대체 뭘 말하는 걸까? “콘돔과 생리대, 배설물 등이죠.” 박사의 설명이다. 항구 부근에서의 상업적 어로행위는 2001년부터 금지되고 있다. 메모리얼대의 연구 결과 여기서 잡힌 생선에서 대장균과 리스테리아가 그램당 무려 50만 마리나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는 허용치인 그램당 6마리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세인트 존 항구 최초의 하수처리장은 2007년도에 개장될 예정이다.

8. 이라크의 고고학자

인류 문명과 농경문화의 요람. 인류가 최초로 도시를 건설한 역사적 현장. 문자의 탄생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최근 들어 세계에서 납치나 살상행위가 가장 빈번한 곳이기도 하다. 고고학자들에게 있어 이라크는 다시없는 보배다. 이들은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도 고국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박물관에 소장함으로써 정부의 보호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현재는 치안 상황이 호전되기 전까지 고고학 관련 업무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한편 8,500점 이상의 유물이 도난당했으며 그나마 이것도 명세목록이 작성돼있던 박물관의 소장품만 집계한 수치에 불과하다. 고고학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라크 각처에 흩어져있는 유적지에서 마구잡이로 도굴되는 유물들이다. 도굴행위를 감시하고자 노력 중인 고고학자 프란시스 데블로위에 따르면 고대 바빌론을 포함해 30 곳 이상의 중요 유적지가 도굴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사도 “지극히 초보적이며 불완전한 수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연구진들이 다시 복귀한 후에야 정확히 어떤 곳이 도굴됐는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떤 유물이 소실됐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9. 날벌레 채집원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한적한 숲으로 가라. 하얗고 커다란 코르덴 천을 꺼내 들어라. 이 천을 등 뒤로 끌면서 행여 곰이 접근하지 않도록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제켜라. 도중에 모기를 때려죽이지 않도록 조심하라. 몸이나 흰 천에 달라붙는 수백 마리의 날벌레는 발견 즉시 핀셋으로 잡아 병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벌레 중에 라임병(Lyme disease)의 병균을 지닌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업을 하루 50회 가량 반복하라. 이것은 파이 델타 사드(Phi Delta Sade)에서 보낼 지옥 같은 한 주간을 위해 마련된 지침내용이 아니다. 예일대의 전염병학과 교수인 덜랜드 피쉬가 이끄는 연구팀의 작업지침사항의 일부이다. 이들은 현재 미 동부지역의 라임병 감염확률을 측정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연구진은 “천을 들고 날벌레를 채집”하는 동시에 병원균 매개체에 신체 노출을 무릅쓸 학생 수십 명을 항상 확보하고 있다. 물론 나름대로 보호책을 강구한 상태에서 작업에 나서긴 하지만 일상에서 가장 부주의한 일반인이 부딪히는 수보다 훨씬 많은 해충과 맞닥뜨리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하루 수천 마리의 해충에 시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이 작업을 몸소 경험해본 킴 파워즈는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고 회상한다.

햄버거를 굽는 것과 비교해 보수가 조금 높은 편이었지만 킴의 경우 돈보다는 전염병학 분야와 관련된 경력을 쌓고자 그런 고역을 감수한 것이다. “찜통더위 속에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무장을 한 채 커다란 흰 천을 들고 숲 속을 헤매야 했어요. 노래까지 부르면서 말이죠.” 그 과정에서 최소한 한 번쯤은 벌레에게 물렸으며 일사병으로 기절할 뻔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결정적인 발병 증세는 나타나지 않은 상태다. 바로 라임병 말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10 간호사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에게 지난해의 “최악의 직업” 리스트를 능가할 후보 직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이후 수많은 간호사들이 자신의 직업을 거명했다. 이유인즉슨 다음과 같다. “존경을 받지 못하는 건 여전해요. 의사들은 우리를 노예 취급한답니다.” “교육 받은 것에 비해 보수가 너무 낮아요.” “요즘 병원마다 간호사가 부족한 것만 봐도 뻔하죠.” 사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의료계는 간호사 인력이 11만명 정도 부족하며 2008년까지 50만 명의 인원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한다. 각종 연구 결과 또한 간호사로 일하는 본지의 독자들의 불만사항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업무상 스트레스와 장시간의 근무, 저임금, 승진기회의 부족 등을 이유로 병원을 떠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까? 최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연구 결과 간호사 인력이 가장 부족한 병원의 경우 수술환자의 사망 확률이 31%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가 가장 부족한 병원이란 과거 간호사를 제일 심하게 부려먹은 곳이란 뜻일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얼마 안 있어 ‘최악의 직업’ 리스트의 1위 자리를 “환자”에게 내줘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

11. 컴퓨터회사의 헬프 데스크 상담원

알아먹을 수 없는 말만 해준다고 미워하지 말라. 이들은 누구보다 컴퓨터의 힘과 정교한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창문 하나 없는 방안에 갇혀 전화기를 붙들고 16비트 수준의 돌대가리들과 씨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처지다. 델라웨어의 한 상담원은 최근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한다.

어느 사용자가 전화를 걸어 컴퓨터의 “커피 컵 홀더”(실은 CD드라이브)가 부러졌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 심각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허리에 찰 권총이라도 지급 받아야 한다니까요.” 상담원은 이렇게 털어놓고 있다. 연봉 3만5천달러를 받고 감수하기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직업이다. 하긴 미국에서 이런 직업이 완전히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 이미 상담업무 대부분이 인도 등지로 아웃소싱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의회의 과학담당 보좌관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과학자들이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과학이라는 진리의 횃불로 의회를 밝히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안은 채 워싱턴에 모여든다. 마치 영화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막상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의원들의 보좌관직을 수행하면서 이들의 꿈은 너무나도 빨리 무참히 깨지고 만다. “의회 사람들에게 과학을 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제 막 1년간의 보좌관 생활을 접은 해양생태학자 라파엘 사가린의 말이다. “모든 것이 힘의 논리로 결정될 뿐이죠. 내가 가진 데이터가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내 주장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 해도 이것들은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멸종위기의 어종으로부터 지구온난화에 이르기까지 담당분야의 모든 쟁점사안이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학계의 합의를 둘러싼 온갖 소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사가린이 보좌한 힐다 솔리스 의원(민주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은 같은 주를 대표하는 동료 의원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법령을 제정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재 환경관련 법안을 제정하는 자원 위원회와 에너지 및 통상 위원회의 의장직은 리처드 폼보(공화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와 빌리 터진(공화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이 맡고 있다. 폼보는 ‘멸종위기 어종에 관한 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터진의 경우는 온실가스의 데이터 검토보다는 오염가스의 배출 주범인 기업들에 조력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위원회에서 의회가 지구온난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라도 됐을 개정법안조차 통과시키지 않았다는 건 정말 한심한 일입니다.지나치게 정치화돼 있는 상태라 과학이 설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죠.” 사가린은 이렇게 회상한다. 현재 박사 후 과정[지난 해 “최악의 직업” 리스트에서 10위를 차지한 바 있음]을 밟기 시작한 사가린은 정부 일에서 해방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하고 있다. “다시 연구 일을 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사가린의 솔직한 심정이다.

13. 공립학교의 과학교사

애리조나 주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항상 부족한 예산에 쪼들리는 형편이다. 학기가 시작된 지 2주째 접어든 어느 날 영어교사인 하워드 러프너가 한창 수업 중인 교실에 갑자기 교장이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과학과목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평소 융통성 있는 성격의 러프너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실험실은 어디죠? 기자재는 어느 정도 구비돼 있습니까? 실험용 물품을 구입할 예산은 얼마나 되나요?” 어떤 대답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예산도 기자재도 실험실도 물론 교과서도 없다는 말뿐이었다. 재정상태가 빈약한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수천의 과학 교사들이 그렇듯이 러프너 역시 아쉬운 대로 독창적인 수업안을 짜고 사재를 털어 몇 백 달러를 지출하는 것으로 충당해야 했다. “과학과목은 점점 더 소홀히 취급되고 있습니다.” 전국 과학교사 협회의 회장인 게리 휠러의 지적이다. 2002년 ‘낙오 학생 방지(No Child Left Behind) 법’이 시행된 이후로 상황은 한층 더 악화됐다.

이 법안은 학생들로 하여금 매년 산수와 읽기 테스트를 통과하도록 규정하는 반면 과학과목의 경우 3년에 1번씩만 테스트를 치르도록 명시하고 있다. 값비싼 실험용 기자재 때문에 과학수업에는 읽기나 산수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최근 과학교육에 할당될 예산이 3R(reading, riting, rithmetic ; 읽기, 쓰기, 산수) 부문에 전용되고 있다. 그 결과 최소한의 과학 지식도 갖추지 못한 인구만 날로 양산되고 있다.

14. 질병 분류사

코(nose)와 무슨 상관이 있는 일이냐 하면 전혀 무관하다 하겠다. 물론 이 직업에 따라다니는 코에 관한 갖가지 농담을 참아내려면 코뿔소만큼이나 얼굴이 두꺼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질병분류사가 하는 일은 주(州)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주 보건부의 가장 낮은 직급에서 사망자 통계의 도표 작성 업무를 담당한다. 질병 분류사는 보수도 낮은데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직업이다. 하루 종일 1,243페이지의 매뉴얼을 뒤적이며 사망증명서 검토에 매달려야 한다. 매뉴얼을 가득 채운 육중한 애깃형 활자는 죽음의 불가사의한 분위기라도 연상시킬 듯 하다. 「질병 및 관련 보건 문제에 관한 국제 통계 분류 총서」라는 제목의 이 책에는 질병 분류사가 스프레드시트 상에 입력할 각종 사망 원인 코드들이 총망라돼있다. 사망 원인을 구체적인 통계 수치로 전환함으로써 공중보건당국의 업무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질병 분류사의 업무는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닌다. 일반대중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질병 분류사들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날 유방암이나 당뇨 같은 질환이 증가 추세에 있는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Nosoloist의 ‘noso’는 “질병”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하지만 이 직업에는 각종 수치와 서식, 서류 작업을 상대하기 위해 필요한 무한한 인내심 말고도 죽음에 대해 폭넓게 수용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에 대해 질병 통제 및 예방 센터에서 근무하는 질병 분류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망증명서를 확인하다 보면 사망 원인이 2가지 이상씩 나열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우리는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분류해내야만 한답니다.”

15. 뿌리 분류사

20파운드 무게의 뿌리 덮개를 가져다 테이블 위에 던져놓고는 그 내용물을 크기 별로 일일이 나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0.5밀리미터 단위로까지 말이다. 이것이 바로 뿌리 분류사라는 지겨운 직업의 실체다. 뉴욕 주립대의 환경과학 및 산림학 대학의 루스 야나이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지상의 생태계에 대해선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땅 밑의 생태계에 관해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죠.” 야나이 교수는 여러 주제 가운데 현재 긴 뿌리의 생존 방식과 뿌리 성장에 산성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를 위해서는 뿌리를 크기별로 분류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뿌리란 몇 인치 굵기의 괴경(塊莖)이 아니라 작고 가느다란 덩굴손을 의미한다. 따라서 연구작업을 돕는 사람 중 한 명이 현재 하루 8시간씩 이 일을 하고 있다. 앞에 쌓아놓은 한 무더기의 뿌리를 핀셋으로 하나하나 집어내 크기 별로 분류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뿌리 한 다발에 2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식당 서빙 일보다도 적다.

16. 학계의 이단아

알프레드 베게너는 대륙 이동설이라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온갖 조롱을 감내해야 했다. 주다 포크먼은 암 종양이 자체적으로 혈관 네트워크를 생성한다는 이론을 피력한 탓에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또한 갈릴레오의 경우 어떤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이들처럼 한때 미치광이로 매도당했던 과학자들에게 환호하고 있다. 반면 그들을 조롱했던 반대세력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렇게 인정을 받기까지 학계의 이단아로서 감수해야 하는 고통은 만만치 않은 것이다.

2004년 최고의 이단아를 뽑으라면 단연 빅뱅이론을 부정한 학자들이다. 이들 가운데 UC샌디에고의 제프리 버비지 교수는 대표적 인물이다. 버비지는 우주가 확장된다는 가설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주학계 대부분이 믿고 있는 바와 같이 특정 지점에서부터 우주의 팽창이 시작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우주는 자연의 진동자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팽창과 수축 운동을 무한 반복한다고 한다. 과학자로서 버비지 교수의 자질은 1959년도 워너상(매년 젊고 열성적인 천문학자를 선정해 수여하는 상), 1999년도 브루스 메달(천문학계의 공로상) 수상 그리고 준성(quasar)과 은하계의 물리학적 속성에 관한 광범위한 저술을 통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버비지 교수는 빅뱅이론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각종 연구자금 지원이 끊긴 상태이며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자신의 이론을 저서로 출간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주 드물게 초청 제의가 들어온 회의석상에서 발언이라도 할라치면 대부분의 청중들이 야유를 보내는 가운데 일부 과격인사들의 고함소리에 파묻히곤 한다.

17. TV 기상캐스터

2001년 3월 미국 동북부의 기상캐스터들은 최후의 심판이라도 알리는 예언자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겨울의 대재앙이 또 다시 들이닥치려 한다! 수십 인치의 폭설이 쌓여 사람들의 발을 묶을 것이라 전하면서 위치와 시간까지 예견했다. 그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몰려들었던가? 무시무시한 예보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기상캐스터들은 방송사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적어도 예고하던 눈보라가 나타나지 않기 전까지는 말이다. TV의 기상예보관 전부가 과학자는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더 나은 자리로 가기 전에 잠시 외유를 하는 기자이다.

펜 주립대의 기상학과 강사인 린 그렌시에 의하면 이런 경우 기상예보에 관한 복잡다단한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날씨는 원래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그렌시의 말대로 3일 후에 내릴 폭설을 정확히 예보한다는 건 “순 거짓말”에 불과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건은 기상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예보관들조차 학문적 주의를 기울일 수 없게 내몰고 있다. “이 나라의 기상예보는 한 마디로 뉴스 담당 국장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습니다.” 그렌시의 설명이다. 경쟁사에서 폭우나 폭설, 태풍이 다가온다는 예보를 내보낼 경우 시청자들은 금세 그 쪽으로 채널을 돌릴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예보내용을 과장해 시청자를 붙들어놓는 수밖에 없다.

그렌시 교수 밑에서 공부한 졸업생들 가운데 기상예보관이라는 직업에 좀더 책임감을 싣고자 노력했던 몇 명은 해고 위협까지 직면해야 했다. “오늘날 과학계에서 기상예보는 패스트푸드처럼 돼버렸습니다.” 그렌시는 이렇게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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