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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경량 비행기 우주진입 성공

색과 파란 색이 섞인 소형 로켓 비행기가 모자브 사막 4만4천 피트 상공에서 활공한다. 테스트 파일럿 브라이언 비니는 헬맷과 군청색 비행복을 입은 채 조종실의 디지털 계기판을 들여다보며 동체에 난 18개의 작은 원형 창문들을 흘끗 내다본다. 스위치를 젖혀 로켓 엔진을 켠 뒤 산화질소와 고무에 점화시켰다. 결과는 즉각적이고도 격렬했다. 비행기가 미사일처럼 4G의 가속도로 돌진하자 그는 좌석에 꽉 눌려버렸다.

임무 통제 센터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각자 모니터로 비행 데이터를 분석한다. 밖에서는 친구와 가족들이 로켓 뒤로 뿜어져 나오는 배기 가스 띠를 바라다 보고 있다. 엔진 소리는 너무 멀어 거의 안 들리지만 좀 떨어진 곳에서 확성기에 대고 누군가를 조롱하는 소리처럼 점차 빨라진다.

1만5천파운드짜리 추진 로켓 모터가 4천5백파운드짜리 비행기를 구동하자 비니는 좌석에서 15센티미터 가량 튀어오르며(안전벨트의 조절력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엔지니어들은 후에 깨달았다) 본의 아니게 조종간에 사타구니가 걸리게 되었다. 이 힘 때문에 연료가 뒤쪽으로 쏠리면서 중력 중심이 뒤로 밀려났다. 그 결과 급격하게 고도가 상승하며 기체가 뒤집히려 했다.

비니는 이 정도 속도에서 조종간으로 조절하면 무리가 생기기 때문에 수평익을 살짝 조절해 비행기 앞부분을 낮추고 방향타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러자 갑자기 기체가 잠잠해졌다. 18분간의 동력 추진 상태가 15초만에 끝났지만 다시 활강해서 귀환하기 전에 엔진을 테스트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엔진이 멈추자 전직 해군 테스트 파일럿으로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불이 꺼진 구축함에 제트 전투기를 침착하게 착륙시킨 적이 있는 비니는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감속되던 기체가 다시 한 번 요동을 쳤다.
비니는 이를 견뎌냈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아직 긴장감이 가시지 않은 채 그는 모자브 사막으로 활강해 활주로에 진입한 후 착륙용 바퀴를 내렸다.

날개가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비니는 본능적으로 비행기가 곧 구를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조종간의 압력을 풀고 기체가 구르는 걸 막아보려 했지만 그 때문에 비행기는 더 빨리 하강했다. 활주로에 닿기 전에 기체의 고도를 높이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기체가 활주로에 강하게 부딪치면서 왼쪽 바퀴가 부러졌다. 스페이스쉽원은 활주로를 미끄러져 모래 속에 뛰어들더니 한 바퀴 돌아 거대한 먼지 투성이 속에서 옆으로 누운 채 정지했다.

이것은 20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가 키티 호크에서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지 100주년이 되는 날로 스페이스쉽원이 최초의 동력비행을 하기로 되어 있는 날이기도 했다.

야심찬 항공우주 엔지니어인 버트 루탄이 설계한 스페이스쉽원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억만장자 폴 알렌이 재정지원을 하는 2천5백만 달러짜리 우주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이다. 이 비행기는 1천만 달러 상금이 걸린 안사리 X상 수상 유력 후보이다.
X상은 2주만에 3명을 태운 로켓을 지구밑 궤도에 두 차례 발사해 올리는 팀에게 주어진다.

루탄의 혁신적인 우주선은 최초의 실용적인 민간 우주선이기도 하지만 이를 조종하도록 그가 선택한 대원들 역시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비행사들이다. 이들은 베테랑 테스트 파일럿들로 대단히 모험적인 우주선을 타고 지구밑 궤도로 첫 비행을 하면서 원대한 실험적 프로그램에서 기대할 수 있는 온갖 극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착륙 후 좌석 벨트와 낙하산, 교신 장치를 벗은 비니는 조종실 문 밖으로 몸을 내민 채 발을 모래에 질질 끌며 기어나왔다. 그곳은 우주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감탄할 만하게 제 기능을 다한 스페이스쉽원은 거친 비행에 대한 보상으로 단단한 활주로에 순조롭게 착륙해야 했다. 조종사도 짐짓 냉정한 척 하며 의기양양하게 기체를 걸어서 둘러볼 수 있어야 했다.

거친 비행에 대한 보상

대신 비니는 이글거리는 햇볕 밑에 서서 한때 보물처럼 여기던 기체에 난 손상을 조사하며 응급용 비행기와 기체를 활주로로 끌고 갈 견인 트럭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하늘에서는 두 대의 체이스기가 스페이스쉽원을 지구밑 궤도까지 운반했던 모선 화이트 나잇과 함께 선회하고 있었다. 이 비행기들은 모두 비니의 동료들이 조종하는데, 이들 중에는 곧 우주비행사가 될 조종사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는 남아프리카인 마이크 멜빌로 세계 최고의 조종사로 인정받고 잇다.

또 한 사람은 젊은 항공역학 엔지니어인 피터 시볼드인데, 그는 우주비행 같은 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스페이스쉽원은 크게 손상된 곳이 없었고 비니의 부상도 크지 않았지만 그는 이 사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사고로 프로그램이 중단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의문은 그의 훌륭한 친구들이 볼 때 그는 우주비행사가 될 기회를 잃은 걸까?

“정말 참담했습니다”라고 세 아이의 아버지인 51세의 비니가 회상한다. “하지만 버트가 제일 먼저 제가 다가와 먼지를 털어 주고 우주선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죠. ‘괜찮아. 플라스틱 비행긴 걸 뭐! 몇 주면 고칠 수 있어.’ 그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 사기를 북돋워 주려고 애썼습니다.” 루탄의 말은 사실이었다. 손상이 미미해서 루탄의 회사인 스케일드 컴포지트사는 수주만에 기체를 수리했지만 그날 중요한 X상 수상을 위한 우주비행 대회에서 비니는 점수를 잃었다. 이 대회는 공개리에 개최되었기 때문에 이 사고가 프로그램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우선 이 사고로 조종사들이 잔뜩 긴장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조종사들과 스케일드사의 엔지니어들은 이 사고가 비행 전 기체 구조 변경으로 인한 비행 특성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멜빌은 비니가 착륙을 잘못한 것은 순전히 조종상의 실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비행기를 조종한 게 아니라 F-18 전투기를 갑판에 착륙시킬 때처럼 땅으로 곧장 몰았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팀이 X상 수상을 하는 데 지장을 초래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비행기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루탄이 선발한 최정예 조종사들이 알랜 쉐퍼드와 존 글렌만큼 모험적이고 경험이 풍부하다 하더라도 이 비행기를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과연 무사히 귀환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루탄과 스페이스쉽원 조종사는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의 테스트 파일럿이자 시험 비행 책임자인 더그 쉐인은 X상 대회 시간이 임박해오고, 연말이면 연구비가 모두 떨어진다는 점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만약 이것이 좀 더 장기 프로그램이라면 비니의 착륙 사고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류의 사고는 시험 비행 중 늘 일어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 번 이같은 사고가 나면 X상 대회에 출전도 못하게 된다.

비니의 비행사고 후 4차례 비행

비니의 비행 사고 이후 수개월 동안 스페이스쉽원은 네 차례 밖에 비행을 못했다. 두 번은 시볼드가 했는데 그 역시 착륙이 순조롭지 못했다. 다른 두 번은 63세의 멜빌이 했는데, 그는 정부 지원없이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지구 대기권 밖까지 비행을 해 6월 21일 우주비행사 자격을 얻었다.

이 기사가 출판될 때쯤 이 팀은 X상 수상을 위해 9월 29일과 10월 5일 두 차례 비행을 하기로 되어 있지만 누가 스페이스쉽원을 조종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루탄은 시볼드와 비니에게 우주비행사 자격을 주고 싶어한다. 둘 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한데다 팀에 우주비행사가 더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탄의 우주 프로그램은 결국 타이어 원이라고 부르는데, 만약 그가 타이어 투 계획이 있다면(분명 있겠지만) 그에게는 숙련된 우주비행사들이 더 필요할 것이다. 시볼드와 비니는 멜빌보다 훨씬 젊기 때문에 루탄의 차세대 궤도 우주선이 나올 때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1,000만 달러의 상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항상 착륙을 성공시킨 멜빌에게 한 번 내지 두 번 비행 기회를 주는 것이 좀 더 현명한 결정이 될 것이다. 루탄이 스페이스쉽원을 설계하며 감수한 위험이 이제 보답을 하려는 시점에 그는 다시 한 번 조종사 선정에서 마찬가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게 되었다.

사실상 세개의 기체결합

루탄의 설계가 대담했기 때문에 조종사들이 몰려들었다. 스페이스쉽원은 사실상 세 개의 기체, 즉 글라이더와 로켓, 우주선을 하나로 결합한 것이다. 이 우주선은 각 비행 단계마다 각기 다른 조종장치와 설정을 이용하는데, 이중에는 궤도 재진입을 위해 셔틀콕처럼 날개를 특이하게 위쪽으로 치켜드는 과정도 포함된다.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전환하거나 한 단계 내에서 비행하는 매순간마다 고도의 수동 조작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은 현대식 우주선 사령관과 소유즈 우주비행사들이 거의 자동화된 발사와 궤도 진입, 궤도 재진입과 착륙 과정에서 체험해보지 못한 것들이다. 다행히도 루탄은 30년 동안 소수의 탁월한 재능을 갖춘 테스트 파일럿들을 양성해 왔다.

이들은 기묘한 모양의 고성능 레크리에이션 비행기와 전세계 일주 신기록 비행기로부터 비밀 군사 프로젝트 수행기와 과학연구용 비행기까지 온갖 특이한 비행기들을 조종해 본 사람들이다. 이들중 일부는 실험용 비행기 위에 말을 타듯 올라 타고 비행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치명적인 수평 급회전과 핵심 부품 손상, 조종 불가능 상황에 처하기도 했지만 결코 죽지 않았다.

현재 루탄은 비행기에서 우주선으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내면서 자신의 비행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조종을 맡긴 채 스케일드사에게는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도록 하고 있다. NASA도 40년 전 미국의 우주 프로그램이 초기 단계였을 때 이같은 방법을 사용해 시험 비행 훈련소에서 머큐리 세븐 대원들을 모집했다. 그 당시 비행은 육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늘날처럼 컴퓨터나 관료들의 지시를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 신세대 민간 우주비행사들은 여러 면에서 1950년대와 60년대의 테스트 파일럿 우주비행사들과 유사해 적극적이고 고도로 숙련됐으며 경쟁심이 강하지만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고 실수를 잘 했다.

스페이스쉽원은 1960년대에 닐 암스트롱이 조종해 대기권 밖 우주 언저리까지 비행을 했던 로켓 비행기인 x-15기를 원형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베테랑 조종사도 다루기가 쉽지 않다. 비니는 수천 시간에 걸친 거친 군용기 시험 비행과 나중에 우주선으로 발전한 로터리 로켓사의 로톤을 잠시 조종해 본 경험도 있다. 이 비행기는 꼭대기에 로켓으로 추진되는 헬리콥터 날개를 단 대형 수송기로 조종하기가 너무 위험해 현재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2000년에 스케일드 팀에 합류한 비니는 가장 신참인 셈이지만 군경력 때문에 다른 동료들보다 공식적인 경력은 더 많았다.



그는 2003년 12월 시험 비행 조종사로 선정되었는데 초음속 항공기 조종 경험이 가장 많고 로켓 엔진의 초기 시험을 감독했었기 때문이다. 그의 착륙 사고는 테스트 파일롯으로서의 그의 기술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그의 오랜 경력과 착륙 시간을 18분이나 단축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소가 좋지 않았다. 무동력 항공기로 착륙까지 남은 10초라는 시간은 손을 써보기에는 너무 짧았다. 그렇다고 멜빌과 시볼드가 스페이스쉽원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들은 운이 좋아 타이밍을 잘 맞춘 것 뿐이다.


공중에서 뒤집혀 추락

멜빌은 활기가 넘치고 안경을 쓴 할아버지로 스케일드사에서의 훈련을 제외하고는 공식 시험 비행 경험이 거의 없지만 일단 타본 비행기는 능수능란하게 조종한다. 그는 2003년 9월 한 무동력 비행기를 조종했었다. 스페이스쉽원이 갑자기 공중에서 뒤집히며 겉잡을 수 없이 추락했다.

바로 잡으려고 그는 조종간을 앞으로 밀고 기체 앞부분을 조금 낮추려고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그는 이 비행기의 꼬리가 일반 비행기와는 정반대로 기체 앞부분을 아래로 향하도록 설계된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비니처럼 판단을 잘못한 것이었지만 이 시점에서 그는 재조종할 시간이 넉넉했다. 루탄의 항공역학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커다란 꼬리 날개로 해결했다. 이들은 이 꼬리날개를 포드 F-250 픽업 트럭 앞에 실은 채 이륙장을 시속 90마일로 달리면서 실험했다.

멜빌은 루탄의 조립식 비행기들 중 하나인 롱-EZ를 제작한 후 설게자에게 성능을 보여주기 위해 미대륙을 횡단한 후 1978년 이곳 모자브 사막에 왔다. 깊은 인상을 받은 루탄은 즉석에서 그를 사업 파트너로 고용한 후 그의 아내인 샐리를 행정 직원으로 데려왔다. 멜빌은 스케일드 컴포지트사의 주주로 루타이 설계한 모든 비행기를 조종해왓다. 그는 루탄의 가장 오래되고 절친한 친구들 중 한 명으로 이들의 신뢰감은 절대적이다.

멜빌은 올해 5월 211,400피트 상공에서 동력 비행을 했는데, 도중에 계기판이 고장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행을 해 많은 조종사들이 엔진을 끄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관례를 깨다가 두 번째 사고를 냈다. 이 때에도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루탄이 막아줬다. “마이크는 아내 시스템이 고장났는데도 동력 비행 거리까지 비행을 했습니다”라고 루탄이 말한다. “다른 곳에서는 그럴 경우 테스트 파일럿이 해고되겠지만 이 경우 마이크가 계속 하늘에 머문 채 비행을 강행한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점이 6월 지구밑 궤도 첫 비행 조종사로 멜빌을 선택했던 이유들 중 하나라고 루탄은 말한다. 이 비행은 루탄의 비전은 물론 멜빌의 명성을 확고히 해 주었다. 우주선이 최고 고도인 30만 피트에 도달했을 때 멜빌은 3분간 무중력 상태를 체험했다. 그는 남캘리포니아의 경치에 감탄하고는 전날 밤 주머니에 넣어 온 M&M 초콜렛들을 뿌렸다.

초콜렛들은 우주선이 거의 수직으로 자유낙하해 다시 대기권에 진입할 때까지 그의 얼굴 앞에 떠 있었다. 날개를 위로 치켜든 상태여서 소음과 진동이 엄청났다. “전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가속도에 정신이 얼얼했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마치 허리케인 같았죠. 비행중 가장 놀란 시기였어요. 삐걱이는 진동이 너무나 요란해서 계기판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멜빌의 목소리는 무뚝뚝하고 묵직하게 들린다. 조종실 안에서의 정확한 행동만큼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도 연륜의 숙련된 테스트 파일럿이라면 당연한 자신감이다.

비행시뮬레이션 개발 주인공

멜빌이 지구밑 궤도로 첫 비행을 할 조종사로 선정된 건 그의 경험으로 볼 때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비니와 시볼드에게는 참기 힘든 소식이었다. “누군가 선발에서 탈락해 놓고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라고 항공역학 엔지니어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33세의 시볼드가 말한다. “우리는 좋든 싫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이 비행을 해보고 싶어하지만 비행 수는 한정되어 있고 조종사는 세 명이니 어쩌겠어요.”

스케일드사에서 시볼드는 본인의 가장 큰 두 가지 관심사, 즉 비행과 컴퓨터 기술 관련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그는 컴퓨터 시대의 신동으로 스페이스쉽원의 정교한 비행 시뮬레이션 개발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스케일드사가 백지상태에서 설계해 완성한 최초의 프로그램이자 실제 비행기용 운항 소프트웨어이다.

스케일드사의 주격납고에서 조금 떨어진 불꺼진 방에 놓여 있는 이 시뮬레이터는 실제 크기의 조종실 모형으로 탄소섬유 좌석과 계기판, 실제와 같은 작은 창들이 있는데 각 창마다 사실적인 전망을 볼 수 있도록 모니터가 달려 있다. 이 장비는 훈련과 공학적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실제 우주선에 적용할 변경 사항을 테스트하고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필자가 조종실에 들어가 앉자 시볼드가 비행 설정을 해주었다. 그가 필자 뒤에 있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비행기 동체를 강화하기 위해 어지럽게 배열된 창문들을 보며 조종사가 어떻게 이런 복잡한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시볼드는 필자의 뇌가 알아서 정보를 취합하기 때문에 곧 익숙해질 거라고 안심시켰다.

이 창들 중 한 곳을 통해 시볼드는 지난 12월 스페이스쉽원의 조종실과 거의 똑같은 화이트 나잇을 조종하면서 비니의 착륙 장면을 지켜보았다. 루탄은 조종사겸 우주비행사 훈련을 돕기 위해 두 기체의 조종실을 똑같이 만들었다. “전 공항으로 복귀하던 중 모든 걸 다 보앗습니다”라고 그가 회상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떤 기분이 들까 상상하는 정도였죠. 테스트 파일럿들은 탁월한 조종 기술을 갖춘 초인간이 되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래도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 배운 본능적인 반응이 올바르기를 바라지만 항상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그는 시뮬레이터 뒤쪽에 올라타서 비행 내내 필자에게 안내를 해준다. 상승하자 구름들이 서서히 우리 밑으로 지나쳐 간다. 화이트 나잇 아래 매달려 잇으니 정말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버튼을 눌러 시볼드가 필자가 탄 비행기를 떨어뜨린다. 기체 앞부분이 아래로 기울면서 화면들에 7마일 아래의 갈색 지면이 가득 찬다. 필자는 조종간을 당기고 엔진에 점화를 한다. 갑자기 기체가 급상승한다. 비행기를 직선으로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곧 통제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활주로 벗어나 사막에 착륙

시볼드가 시뮬레이터를 재설정한 후 필자는 다시 시도한 결과 조금 나아져 가까스로 엔진이 꺼지는 16만 피트 상공까지 버텨낸 후 관성으로 25만 피트 상공까지 올라가자 화면이 캄캄해지면서 별들과 지구의 수평선이 아래로 보인다. 우주선의 날개를 위로 접어 대기권에 재진입한 뒤 모자브 사막으로 활공해 돌아왔는데, 이곳에서 활주로를 벗어나 사막에 들이박혔다. 필자는 비행 훈련을 몇 시간 밖에 받지 않았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중력가속도와 격렬한 진동까지 체험했더라면 이 우주선이 얼마나 조종하기 어려운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볼드의 시뮬레이터는 지난 2년간 세 명의 조종사 훈련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두 번의 X상 도전 비행에 핵심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비는 착륙 연습에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실제 비행기로 착륙 연습을 해야 한다. 비행기의 움직임과 실제 지형에 따라 착륙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페이스쉽원으로는 연습 비행을 할 경우 한 번 비행당 수십만 달러가 소요되어 X상 상금중 집에 가져갈 돈이 적어지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다른 비행기로 연습을 한다.

과제는 산적한 데다 대회 개최일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모자브 사막의 분위기는 NASA에서 수성으로 유인우주선을 발사하던 당시를 연상케 한다. 그 당시 7명의 우주비행사들은 우주로 진출한 최초의 미국인 타이틀을 놓고 경쟁중이었다.

많은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데, 아마 이 때문에 루탄의 테스트 파일럿들은 동지이자 경쟁자인지도 모른다. 대회 비행 수주 전에 멜빌은 자신의 롱-EX기로 비니를 수 차례 끌어 올려 착륙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과정은 스페이스쉽원이 마지막 착륙 직전의 하강 속도와 거의 흡사했기 때문이다. 두 조종사는 이 우주선의 제한된 시야를 모의실험 해 볼 수 있는 조종실용 모형을 만들어보기까지 했다.

에릭 아담스는 파퓰러사이언스 항공 및 자동차 부분 편집자이다.

급감속 수평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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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드 컴포지트호 테스트

파일럿인 척 콜맨은 지구 궤도에 높은 중력 가속도와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스페이스쉽원과 똑같은 체험을 할 수 있는 훈련법을 고안해냈다. 훈련시킬 우주비행사에게 자신의 고성능 엑스트라 300호 보조석 조종을 맡긴 채 콜맨은 무중력 상태를 모방한 포물선 호 형태로 비행하다가 6G로 급강하하면서 15초간에 걸쳐 2~3초당 1G씩 서서히 감속한다. 그런 다음 그는 조종간을 잡고 비행기의 방향을 바꾸는데, 바로 이 시점이 자유낙하로 궤도재진입을 한 후 그가 조종간을 잡게 될 때이다.

이를 통해 기체가 요동하고 뒤집히는 비행을 하면서 G관성이 증가해 조종사들이 독특한 기체 균형회복 훈련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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