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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그리고 과학입국의 꿈

‘역사는 초월적인 어떤 개념으로 씌어질 수 없으며, 정치적 의도에 의해 씌어져서도 안 된다. 오직 객관적 사실로만 묘사해야 한다.’ 이는 독일의 역사가 레오폴드 랑케가 한 말입니다.

역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드라마이며, 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역사학계의 불문율을 강조한 얘기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어제의 일도 만약이라는 가정(假定)아래 재구성하고 싶어 합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한 학생,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타이밍을 잃어 손해를 본 사람들을 연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죠. 저 역시 만약이라는 가정의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역사를 접하게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조선의 역대 임금(왕세자 포함)중 우리에게 낯익은 사람은 태조(이성계), 태종(이방원), 세종, 단종, 세조, 연산군, 중종, 선조, 광해군, 인조, 숙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 고종 등일 것입니다.

이들이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 된 것은 역사적 격변과 함께 TV 드라마의 주요 대상이 됐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소현세자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三田渡)의 치욕을 겪었던 인조의 큰 아들이죠.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청나라로 끌려가 9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볼모로 지내게 됩니다.

하지만 소현세자는 명(明)과 청(淸)이 교체되는 대륙의 한 복판에서 국제 정세란 공허한 명분이 아닌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본토인 중국에서조차 한물 간 성리학을 금지옥엽으로 모시는 조선의 우물 안 개구리 식 사고방식을 깨뜨려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됩니다.

소현세자의 이 같은 생각은 아담 샬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공고화됩니다. 32번째 예수교 신부로서 북경에 머물던 그는 해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역서와 대포를 제작하는 일을 맡아 명나라 신종의 신임을 받습니다.

또한 청 세조 역시 북경 점령 후 그의 과학지식을 이용하기 위해 지금의 천문대장 격인 흠천감정(欽天監正)으로 기용하게 됩니다.



종교적 관점을 배제하면 아담 샬은 첨단 서구과학의 전도사였던 셈인데, 소현세자는 그를 통해 새로운 사상과 문물의 세례를 받게 됩니다.

특히 소현세자는 천문, 산학(散學) 등 여러 가지 과학서적과 여지구(지구의)를 갖고 귀국하게 되는데, 그는 이를 통해 조선을 새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추구하게 됩니다.

소현세자가 아담 샬과 교분을 맺은 것은 1640년대 초반으로 일본이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개국한 때보다 210년이 앞섭니다.

소현세자의 개방적이고 과학적인 사고가 현실화됐다면 그야말로 조선과 일본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귀국 후 2개월 만에 죽습니다. 그것도 30대 중반의 장성한 세자에게는 큰 병이 될 수 없는 학질이 원인이 됩니다. 이로 인해 아버지, 즉 인조에 의한 독살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지원을 받은 소현세자가 자신을 밀어내고 왕위를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소현세자가 순조롭게 즉위해 국제 정세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정사를 펼쳤다면 조선의 운명은 분명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이라는 화두(話頭)에 여전히 매달리게 됩니다.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의 후예들은 소(小) 중화주의의 명분과 예학을 끌어안고 조선의 국력을 지루하게 갉아먹습니다.

글로벌화의 큰 흐름 속에서 여전히 맹목적인 반미, 반일을 외치는 광경에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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