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수급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자일리톨 제조공정이 최근 국내기업에 의해 개발돼 주목받고 있다.
기존 방식에 비해 생산 수율을 무려 40% 가까이 높일 수 있는 이 공정의 핵심은 첨단 바이오기술로 탄생한 미생물과 발효과학이다.
자일리톨의 변신은 무죄
자일리톨(xylitol)이란 단어를 들으면 으레 껌을 떠올리게 된다. 봉고, 퐁퐁, 박카스, 하이타이처럼 특정회사의 제품명이 상품 이름으로 변한 경우는 아니지만 이미 자일리톨과 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돼 있다.
사실 전 세계 자일리톨 생산량의 90%가 충치 예방용 기능성 껌의 제조에 사용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이미지 연상을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일리톨은 당도와 용해도가 설탕과 가장 유사한 저칼로리 식품으로 지난 1940년대부터 설탕 대체물로 연구가 이루어져온 천연감미료다.
지금의 이미지는 1970년대 자일리톨의 충치예방 효과가 밝혀지면서 기업들이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로 껌의 첨가물로 사용해온데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런 자일리톨이 지금 조용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지속돼온 껌의 원료라는 틀을 벗어나 설탕을 대체하는 천연 웰빙 감미료로서 본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
이는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비만과의 전쟁이 단초가 됐다. 각국 정부가 설탕을 비만의 주적(主敵)으로 지목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주로 섭취하는 식품들을 중심으로 설탕의 사용 규제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자일리톨은 현재 껌과 사탕은 물론 초콜릿, 과자, 쨈, 우유, 요구르트, 주스, 소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음료 부문에서 설탕을 밀어내고 있다.
기능성 측면에서도 충치예방과 함께 시원한 청량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치약, 구강청정제, 화장품, 물티슈, 영양제, 샴푸 등의 제품이 출시된 상태다. 지난 8월에는 자일리톨 내의가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쓰임새가 다양화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당연지사. 최근 2~3년 동안에만 연평균 35% 이상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올해 시장 규모는 약 6,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고도 경제성장을 구가 중인 중국에서 자일리톨 껌의 수요가 본격 창출되면서 시장 성장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처럼 늘어난 자일리톨 수요를 생산량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자일리톨은 자작나무, 옥수수 속대 등에 함유된 헤미셀룰로오스(hemicellulose)에서 추출한 천연물질인 탓에 필요하다고 갑자기 생산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브라질 등 주요 옥수수 생산국들이 옥수수를 친환경연료인 바이오 에탄올의 재료로 전용하면서 원료부족을 한층 부채질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바이오 기업인 엘피바이오(대표 최수경)가 첨단 바이오기술을 활용해 이 같은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미생물과의 조우
엘피바이오가 자일리톨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해 초. 바이오 분야에서 신규사업을 물색하던 중 회사 주주와 인연이 있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김정회 교수와의 만남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한국생물공학회 회장을 역임한 미생물 분야의 대가. 그는 우리나라에 자일리톨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미생물을 활용한 자일리톨 생산의 효용성에 눈을 떠 상업화 기술 확보를 위해 열정을 바쳤던 인물이다.
엘피바이오의 최 사장은 “당시 다수의 기술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숙의를 거듭했지만 이들 대부분이 상당한 투자비가 요구되는 반면 사업화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였다”며 “이 과정에서 김 교수의 미생물 자일리톨 생산기술을 알게 돼 지체 없이 공동연구에 돌입했다”고 설명했다.
최 사장이 이 기술에 주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전 세계 자일리톨 수요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존 화학적 제조공정이 환경적·효율적으로 적지 않은 폐단을 갖고 있어 새로운 공정기술에 대한 욕구가 업계에 팽창해 있다는 것.
세계각국이 설탕을 비만의 핵심 유발요인으로 지목하고 사용을 규제하면서 자일리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자일리톨은 자작나무나 옥수수 속대를 가수분해해 원료물질인 자일로스(xylose)를 추출한 후 니켈을 촉매로 한 수소첨가반응(hydrogenation)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화학적 방식은 공정과정에서 대량의 폐수가 발생, 환경오염 문제를 유발하는데다 중금속인 니켈의 사용으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
특히 수소첨가반응 공정 이전에 반드시 자일로스의 정제과정이 필요해 생산비용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발생한 원료 유실로 최종 생산수율이 50~60%로 떨어지는 등 원료 낭비 또한 심각하다.
자일로스를 미생물로 발효시켜 자일리톨로 변환하는 김 교수의 아이디어는 바로 이 모든 폐단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목표를 정하자 엘피바이오는 모든 역량을 올인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다. 즉각 자일리톨 및 발효기술 분야에서 내노라 하는 전문가를 영입했으며, 기존 사업을 잠정 중단한 채 김 교수와 함께 이 기술의 상업화에 착수했다.
이렇게 2년여를 노력한 끝에 엘피바이오는 지난 8월 ‘미생물을 활용한 자일리톨 대량생산 공정’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번에 완성된 공정은 자일로스 원료에 ‘캔디다 트로피칼리스(Candida tropicallis)’라는 미생물 균주를 넣은 뒤 1기압, 30℃의 조건에서 발효시켜 자일리톨을 얻는다. 사람이 밥을 먹고 대변을 보듯 캔디다 균주가 자일로스를 먹고 자일리톨을 배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이와 관련, 최 사장은 “이 공정은 사전정제 없이도 미생물이 자일로스 원료를 곧바로 자일리톨로 전환해줘 생산수율이 무려 98%에 달한다”며 “복잡한 화학공정이 없어 친환경적인데다 20%의 원가절감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캔디다 트로피칼리스
물론 이전에도 화학공정을 대체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들이 개발됐었다. 그러나 대량생산에 실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이번 성과는 단순한 미생물 발견이 아니다. 미생물 배양에서 자일리톨 정제·추출·결정화에 이르는 모든 공정의 개발이 완료돼 지금 당장 공장을 지어도 된다.
그렇다면 이를 가능케 한 1등 공신인 캔디다 트로피칼리스는 과연 어떤 미생물일까.
일반인들은 왠지 이름에서 범상치 않은 기운마저 느껴지겠지만 사실 이 균주는 이미 다양한 식품제조 공정에 활용되고 있는 흔하디흔한 미생물이다. 이를 모르는 식품업계 종사자는 단 한명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 평범함 속에 진정한 기술력이 숨어있다. 이름은 같아도 자일리톨 생산에 쓰이는 엘피바이오의 캔디다 균주는 보통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원래 김 교수가 처음 캔디다 균주로 자일리톨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것은 10여년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상용화에 실패했던 것은 캔디다의 특성 때문이다.
일반 캔디다 균주로 얻은 자일리톨은 계속 자일리톨 상태로 남아있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디자일로스(D-xylose)라는 성분으로 변화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 즉 아무리 공정 수율을 높여도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자일리톨의 양은 기존 화학공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민에 빠진 김 교수는 이 난제를 풀어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고 결국 첨단 바이오기술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자일리톨이 디자일로스로 변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이를 유발하는 캔디다 균주의 DNA구조를 아예 바꿔버린 것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일리톨 생산 전용 캔디다 균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엘피바이오의 최 사장은 “현재 이 기술을 도입하려는 국내외 업체들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며 “이미 호주의 한 업체와 공정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세계 최대 자일리톨 생산기지인 중국의 모 업체와도 계약이 임박해 내년이면 미생물 발효기술로 만들어진 자일리톨의 첫 출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첨단 바이오기술로 탄생한 세계 유일의 자일리톨 생산 전용 캔디다 균주로 우리나라가 자일리톨 생산기술의 종주국으로 부상할지 주목되고 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자일리톨과 충치예방
충치는 음식물에 함유된 당분을 먹고 살아가는 뮤탄스(Streptococcus Mutans) 등 구강 내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 이들 세균이 당분을 먹은 후 부산물로 배출하는 젖산이 치아 표면을 부식시키는 것.
그러나 자일리톨의 당분인 오탄당(pentose, C5H10O5)은 설탕의 육탄당(hexose, C6(H2O)6)과 성분에서는 거의 유사하지만 뮤탄스균이 발효시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없는 원자구조를 갖고 있다.
즉 자일리톨을 먹게 되면 뮤탄스균은 이를 설탕으로 착각하여 섭취, 영양소를 흡수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실패하고 뱉어낸다.
그런데 뮤탄스균은 지능이 없는 탓에 이렇게 자기가 뱉어낸 자일리톨을 다시 설탕으로 알고 섭취해 뱉어내는 바보스러운 행동을 계속 한다.
결국 이 같은 과정을 무한 반복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는 얻지 못한 채 자신의 에너지를 낭비하다가 어느 순간 굶어죽어 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자일리톨의 ‘무익회로(Futile Metabolic Cycle)’라 불리는 천연 충치예방 시스템의 핵심이다. 뮤탄스균의 입장에서 보면 자일리톨이야 말로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은 전문사기꾼인 셈이다.
이와 관련, 자일리톨로 유명한 핀란드의 한 대학 연구팀에서는 뮤탄스균에 자일리톨을 6개월간 정기 투여할 경우 뮤탄스균의 정신(?)이 혼미해져 설탕을 줘도 자일리톨로 오인,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아사(餓死)한다는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차가운 식품과 찰떡궁합
자일리톨은 당도와 용해도가 설탕과 거의 같다. 그래서 설탕이 들어가는 모든 식품에는 기본적으로 자일리톨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자일리톨이 감미료로서 지닌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찰떡궁합 식품들은 따로 있다. 무엇일까. 바로 차갑게 먹어야 제 맛이 나는 식품들이다.
실제로 시중에 나와 있는 자일리톨 함유 제품들을 잘 살펴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차게 즐기는(적어도 따뜻하게 먹지는 않는) 음식들 일색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일리톨이 갖고 있는 청량감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자일리톨은 설탕보다 무려 10배 정도나 높은 -36.5cal/g의 용해열(溶解熱)을 지니고 있어 입안에서 녹을 때 주변의 열기를 흡수, 시원한 느낌을 준다.
자일리톨 껌을 씹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상쾌함도 박하 성분을 가미해서가 아니라 자일리톨 자체의 흡열반응에 기인한다.
즉 차게 먹는 음식에 자일리톨을 첨가하면 단맛과 상쾌함을 동시에 제공, 2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데워먹어야 하는 음식에서는 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덧붙여 인스턴트 커피처럼 단맛이 풍부하고 지속적으로 느껴져야 제 맛인 제품에도 자일리톨은 적당하지 않다.
자일리톨은 처음에만 강한 단맛을 제공할 뿐, 상대적으로 급격하게 단맛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