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고우는 인공 팔을 부착한 아이들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세계 최고 성능의 인공 손 개발에 나섰다
1980년 데이빗 고우는 스코틀랜드의 한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보수는 좋았지만 꽤 지루한 업무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영국 BBC가 만든 TV 프로그램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전기로 작동되는 인공 수족을 개발 중인 스웨덴의 과학자 롤프 솔어바이 박사의 이야기를 다룬 ‘내일의 세상(Tomorrow's World)’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공수족에 완전히 매료돼 버린 것.
사실 인공수족에 대한 그의 관심은 대학시절 인공수족 조절장치 분야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 틈틈이 인공수족 디자인을 해오고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본 후 아예 직업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는 “두 손이 없이 태어난 유치원 아이들이 철봉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TV에 비춰졌다”며 “바로 그때 인공수족 개발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인공수족 개발자로서 그의 삶은 1981년 스코틀랜드의 한 정부 산하 병원에서 인공수족을 설계하는 초급 엔지니어로 시작됐다.
하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10년 후 고우는 어깨와 팔목을 비롯한 인공관절 설계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문가로 성장했다.
한번은 전기 집게가 달린 인공 손 프로토타입을 들고 스웨덴까지 날아가 자신에게 처음 영감을 줬던 소어바이 박사를 만나기도 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완벽한 관절기능을 갖춘 인공 손. 하지만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장벽이 한없이 높았다.
이에 고우는 수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중앙 조절식 모터 시스템을 이용, 인공 손에 장착된 모든 미세부품들을 제어하려 했다.
하지만 최종 완성된 손은 세밀한 동작을 하지 못했고 아이들이 착용하기에는 크기도 너무 컸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고우는 손의 크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돌파구를 찾아냈다. 인공 손을 하나의 구조로 제작하는 대신 손가락과 손바닥, 엄지 등으로 분리하고 각각에 소형 모터를 별도로 장착해 근육으로부터 나오는 신호를 읽도록 한 것.
그는 “일종의 레고 키트라고 할 수 있다”며 “이 방식을 적용함으로서 크기와 길이가 서로 다른 손가락들을 조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섯 손가락을 모두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인공 손 ‘아이-림브(i-LIMB)’는 이렇게 탄생했고 고우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공수족 제작자로 만들었다.
실제로 아이-림브는 테니스 공은 물론 커피 잔 손잡이, 볼펜, 전화기 등 모든 물체를 쥘 수 있으며 마우스 클릭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아이-림브를 사용해 본 10여명의 환자들도 이 장치가 매우 효과적임을 증언한다.
미 육군 퇴역군인인 주앙 아레돈도는 “아이-림브가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 같다”며 “보통 사람들처럼 스티로폼으로 만든 컵을 부서뜨리지 않고도 집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고우는 “사람들은 아이-림브를 ‘생체공학(bionic)’으로 표현하지만 개인적으론 ‘생체 석기학(biolithic)’이라고 부른다”며 “인공 팔은 실제 인체가 하는 일에 비하면 석기시대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명간 아이-림브에서 얻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훨씬 정교한 동작이 가능한 차기 모델의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고우 박사의 인공 손 ‘아이-림브’는 실제 신체처럼 느껴질 만큼 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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