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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연구, 그리고 제한적 매몰비용

요즘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으로 공무원 사회는 물론 관련단체들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과학 잡지 편집장인 저에게는 과학기술부의 거취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죠.

장래의 글로벌 경쟁력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만큼 과학기술 전담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관련단체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또한 과학연구가 기술개발과 연계돼 산업화로 이어지고, 기초과학과 응용기술이 융합해 고도의 기술을 창출하는 과학기술의 특성상 이를 지식산업부와 교육과학부로 쪼개 이원화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이해가 갑니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아일랜드의 기적에서 보듯 작고 효율적인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인데다 국민의 지지 역시 뚜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는 지난 1980년대 초와 1990년대 초 두 번에 걸쳐 공무원 수와 임금, 연금 등을 줄여 재정지출과 세금을 낮추는 파격적인 정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 같은 정부의 솔선수범은 노동 유연성 제고, 민영화 등 시장 친화적 개혁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1988년 국민소득 1만 달러에 겨우 올라선 나라가 8년 만에 2만 달러, 그 후 6년 만에 3만 달러, 그리고 각각 2년 만에 4만 달러와 5만 달러를 돌파한 것은 이 같은 정부 개혁의 과실인 셈이죠.

이 같은 모순적 상황, 즉 과학기술부 폐지라는 현안과 작고 효율적 정부 지향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지향점이 충돌함으로써 저 같은 사람도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객관적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제3의 목소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주인공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물학과 명예교수인 S. 조나단 싱어입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 대다수는 단순히 맡은 일을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혁신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학적 지식에 진보를 가져올 독창적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연구자들은 소수의 과학자가 내놓은 연구결과에 살을 붙이는 일을 할 뿐이다.



과학연구에서 낭비와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 과학연구 전반을 계획하고 조절하는 일 자체에 어마어마한 노력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제한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행정 관료들은 연구 수행에 필요한 기금을 승인하는 것 이외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같이 혼란스러운 과정에서도 일정부분 정제된 지식이 얻어진다. 귀중한 과학적 지식을 얻는데 어느 정도 낭비와 비효율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면 기꺼이 감수할 만하지 않을까?’

싱어 교수의 생각이 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정리하는데 퍽이나 도움이 됩니다. 저는 과학기술부가 교육과학부로 재편된다고 해서 관련단체들이 주장하는 것 같은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과학단체들이 드러내놓고 주장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걱정하는 과학연구 예산은 제한적 매몰비용(sunk cost)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된다고 봅니다.

매몰비용이란 일단 지출된 뒤에는 어떤 선택을 하던 다시 회수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비용인데, 가라앉아 묻혀버리기 때문에 도로 찾을 수 없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회수에 미련을 갖게 되면 미래 선택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됩니다.

만일 과학연구에 성과와 경제성만 따진다면 이 같은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저의 말을 정리하자면 조직개편은 하되 외형상 헤쳐모이기가 아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예산 역시 급격히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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