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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결정론의 진실과 논란

최근 유전자 결정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로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유전자 결정론은 한마디로 유전자가 인간의 본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론을 받아들이면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남성이 미녀 아나운서나 연예인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 된다. 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해 유능함이 입증된 남성의 유전자는 매력적인 여성의 몸을 보다 우수한 복제의 도구, 즉 번식의 도구로 삼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유전자 결정론은 결국 인간이 유전자의 기계적 조립품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도출, 강한 비판을 낳고 있다.

난 2006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우리나라의 과학출판계를 이끌어간 스타 저자를 꼽으라면 당연히 리처드 도킨스가 꼽힌다.
영국 출신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그는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 결정론(genetic determinism)의 영향을 받은 사회생물학적 이론을 발표,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파장은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사실 이기적 유전자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 년 전인 1976년에 초판이 발행된 책이고, 한국어판도 1993년에 이미 나온 것이어서 ‘화제의 신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여러모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정서, 좀 더 포괄적으로 얘기한다면 시대정신과도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의 이론적 배경과 요체

유전자 결정론이란 무엇일까.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유전자가 인간의 본능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이를 다시 과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유전자가 소속 개체의 신체적, 행동적 표현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론을 수용하면 유전자만 보고서도 그 개체가 어떤 모습을 할지, 어떤 질병에 걸릴지, 그리고 어떤 행동양식을 보일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결정론의 이론적 기반으로는 현대 생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을 들 수 있다.

다윈은 저서 ‘종의 기원’에서 환경에 가장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만이 살아남아 번식함으로서 진화가 일어난다는 적자생존설을 주장했다. 또한 멘델의 유전학은 생물의 형질을 결정하는 불변의 인자-당시에는 유전자의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를 가정하고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파헤친 것이다. 멘델의 실험결과 생물의 형질에 영향을 끼치는 인자, 즉 유전자가 분명히 존재하며 우성 유전자가 열성 유전자를 압도해 발현된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 같은 멘델의 유전 법칙은 생물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의 존재를 입증함으로서 유전자를 해독하면 생물체의 형질을 미리 알 수 있다는 생각을 유포시켰으며, 또한 다윈 진화론에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했다. 즉 진화란 열성 유전자에 대한 우성 유전자의 승리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리처드 도킨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인간, 아니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명령을 받아 그 생물을 보호하고 복제해 나가는 이기적인 생존 기계라고 주장한다. 앞서 말한 신체적, 행동적 표현형뿐만 아니라 인간의 각종 사회적 행동 역시 유전자의 보존과 복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그의 주장은 현대사회의 인간 행위 중 상당 부분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남성은 아나운서나 유명 연예인 등 평균 이상의 수준, 특히 외모 면에서 뛰어난 여성을 배우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를 도킨스식의 유전자 결정론으로 설명하면 명료해진다. 즉 사회의 생존 경쟁에서 승리해 그 유능함이 입증된 남성의 유전자가 생산력이 왕성하고 매력적인 여성의 몸을 번식의 도구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들이나 성질 더러운 사람들 때문에 사회생활이 팍팍하고 힘든 것도 도킨스식으로 따지면 명쾌하게 답이 나온다. 이는 모든 인간 개체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싸우는 투쟁의 일환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다거나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전자 결정론은 로빈 베이커의 저서 ‘정자전쟁’에서도 되풀이 된다. 진화생물학자인 그는 자위행위를 하는 여자의 모습, 외도의 현장, 집단 성교, 강간에 이르기 까지 인간의 섹스와 관한 모든 것을 까발린다. 특히 ‘부부관계에서 태어나는 자녀의 10%는 아버지가 따로 있다’, ‘여자는 배우자보다는 일시적인 외도 상대의 아이를 임신할 확률이 훨씬 높다’ 같은 도발적인 주장도 제기한다.

하지만 이 책의 요지는 결국 인간의 성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정자전쟁이며, 이는 결정적으로 유전자 결정론과 맥이 닿아있다. 유전자 결정론은 이 같은 명쾌함 때문에 열렬한 추종자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사회적 행위, 특히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대립 행위를 유전자라는 것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 자신은 유전적 결정론자가 아니라고 부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아무리 봐도 유전적 결정론의 입장을 강화한 사회생물학일 수밖에 없다.

유전자 결정론과 유물론

유전자는 32억 개에 이르는 염기서열의 암호기호로 된 정보다. 이 정보가 바로 특정 표현 형질을 발현시키는 역할을 한다.

유전자 결정론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특정 유전자가 각각 특정 부위의 형질 또는 생명현상과 1 대 1로 대응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렇게 개별 유전자가 그에 해당하는 표현형질을 결정하고 있다는 게 유전자 결정론의 요체인 것이다.
하지만 도킨스의 이론은 너무나 급진적인 나머지 그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찬성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결정론에 반감을 품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크게 반발하는 사람들은 역시 각국의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다. 한낱 생명체의 설계를 담당하는 물질인 유전자가 생명체의 형질은 물론 생명체의 정신과 사회적 행동까지 좌우한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과 정신까지 철저히 물질에 예속된다는 극도의 유물론적 주장과 같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킨스의 주장을 적용하다 보면 개인 간의 이기적인 욕망으로 충돌이 생겨 약한 개인이 피해를 입는 것도 인간의 진화에 있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된다. 또한 이타심이나 희생정신 같은 도덕적 가치판단도 결국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고도의 이기적 전략에 따른 것이 된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목표를 추구하던 기존의 윤리나 종교는 완벽히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유전자 결정론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인간의 각종 행동과 판단을 연구하던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유전자 결정론에 입각한 사회생물학의 분과로 편입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존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인간 행동에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주는 유전자 결정론이이야 말로 이들 학문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기존의 윤리학, 종교학, 인문학, 그리고 사회과학 관계자들이 유전자 결정론에 발끈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윌슨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기존 학문들이 유전자 결정론에 통합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불행의 흔적과 우려

하지만 유전자 결정론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유전자 결정론에 따르면 인간 세상은 유전자가 인간의 몸을 빌려 펼치는 서바이벌 게임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평등, 갈등, 차별, 대립 등 현 상태의 각종 문제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유전자의 보다 나은 진화를 위해서는 이 같은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를 심화시켜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유전자 결정론을 엄밀하게 적용한다면 강간에서부터 인종 말살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유전자의 명령’이라는 단 한 마디로 면죄부가 주어질 수 있다.

인류는 유전자와 관련한 불행한 흔적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인권 선진국인 미국만 하더라도 그렇다.미국은 1920넌대 우생학적 차별을 전제로 한 이민제한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미국으로 이민을 오려는 빈민 유럽인과 유색인종들이 폭증하자 앵글로-색슨계가 희석될 것을 우려, 이 같은 법안을 만든 것이다.

또한 1911년부터 1931년까지 20여 년 간 30개 주에서 정신박약인의 강제불임이 법제화됐다. 이 같은 악법은 1960년대 들어와 대부분 폐기됐지만 버지니아 주에서는 1970년대까지 불임시술을 강행했다. 이 같은 상황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에서도 자행됐으며 독일은 무려 40만명 이상을 불임시킨 후 학살했다.

이 같은 상황을 전제로 하면 유전자 결정론은 자민족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약소민족을 침략하는 이데올로기적 바탕이 됐던 우생학이나 인종학의 전철을 답습할 수 있다. 또는 범죄나 유전병을 예방?관리한다는 목적으로 관련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차별하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할 수도 있다.

물론 유전자 결정론의 논리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과연 유전자만이 생물의 형질과 행동을 결정하는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요소냐 하는 것이다.
똑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한 몸에 두 사람이 달린 샴쌍둥이의 경우에도 한 개체는 병에 걸렸는데 다른 한 개체는 건강한 경우가 있다. 이 것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두 개체가 겪은 각종 환경적 요소까지 완전히 동일한 경우이기 때문에 단순히 유전자 때문에 한 개체에만 병이 생겼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단일 유전자와 완벽히 1 대 1로 대칭되는 형질은 사실상 얼마 되지 않고, 인간의 형질은 여러 가지의 유전자가 대단히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난다. 생물이 생장하면서 받은 환경의 영향, 학습한 내용도 형질과 행동의 발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도 유전자 결정론은 이 같은 점을 완벽히 무시하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의 득세

많은 비판과 자체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도킨스나 윌슨이 주장하는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은 꽤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대중은 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공해 주는 이론을 좋아한다. 이론의 진실 여부보다도 결론을 도출해 내는 형식이 말이 된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따른다. 좋은 예가 바로 혈액형 등의 의사과학적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려는 대중들의 모습일 것이다.

게다가 대중의 평균적인 생물학적 지식수준을 놓고 볼 때 유전자 결정론은 무한경쟁에 지친 그들의 삶에 꽤나 명쾌한 해답과 의미를 제공해 준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대중의 머릿속에는 이미 기계론적 세계관이 철저히 자리 잡고 있다.

기계론적 세계관의 특징 중 하나는 전체를 부분으로 분해한 후 부분에 대해 철저히 알면 전체에 대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기술자가 처음 보는 가전제품을 분해, 각 부품의 기능을 알아내고 급기야 완성품의 동작 원리를 알아내듯이 인간에 대해서도 그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 같은 해석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해 준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인류는 지난 2003년 인간 유전자 배열을 완전히 해독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인간 유전자 연구가 더욱 진척되면 인간의 모든 행동과 형질을 유전자만 보고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될 우려가 있다.

유전자 결정론자들은 어디까지나 인간 행동과 형질이 왜 그런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밝히려고 할 뿐이지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전자 결정론적 시각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형질과 행동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일 뿐 법칙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이 편협한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시녀가 된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이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학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지켜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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