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물은 생명체 존재의 근거인 것이다.
물은 상온에서 고체, 액체, 그리고 기체의 세 가지 모습을 다 보여준다. 자연계에서 이 같은 성질을 보여주는 물질은 전체의 2%도 되지 않는다. 또한 물은 열용량, 증발열, 용해도 등 다른 물질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들 하나하나는 모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9개월 동안 6억7,500만km를 날아간 무인 화성 탐사선 피닉스호가 지난 5월 27일 화성의 북극해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그리고 태양전지를 펼쳐 인근지역의 선명한 영상을 지구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 탐사선에 공식으로 부여된 임무는 바로 물을 찾는 것이다. 탐사선은 태양전지가 가동되는 3개월 동안 매일 2시간씩 로봇 팔로 화성 지표면을 1m까지 뚫고 토양을 채취하게 된다. 또한 채취한 토양을 분쇄·가열해 물의 증발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을 하면서 물의 흔적을 찾아가게 된다.
북극권이 착륙지로 결정된 것도 앞선 화성 탐사에서 물을 구성하는 수소의 흔적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만일 물의 흔적을 찾게 된다면 언젠가 이곳에 생명체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지구가 생명의 행성으로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물의 존재는 매우 중요한 요건이었다. 실제 대부분 생명체의 80~90%는 물로 구성돼 있다. 왜 생명체에는 이토록 물이 필요한 것일까.
압력 따라 변하는 끓는점과 어는점
다른 물질에 비해 물의 특성은 두드러진다. 열용량, 잠열(증발열), 표면장력, 용해도, 가시광선이나 적외선에 대한 투명도, 열전도 등이 가장 크거나 최대의 값을 가진다. 반면 점성도, 압축률 등은 최소의 값을 가진다.
이들 성질 하나하나가 모두 지구를 생명의 행성으로 만드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몇 가지 중요한 것들을 살펴보자.
무엇보다 으뜸가는 성질로는 상온에서 고체, 액체, 그리고 기체의 세 가지 모습을 다 보여준다는 점이다. 자연계에서 이 같은 성질을 보여주는 물질은 전체의 2%도 되지 않는다. 큰 잠열을 가진 물이 고체, 액체, 기체로 모습을 바꿀 때마다 엄청난 열량이 물과 주위 사이를 들락날락하며 열을 이동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지구의 단위 면적에 단위 시간 동안 유입되는 태양에너지를 100으로 보았을 때 이중 약 23%가 표층의 바닷물을 덥히면서 1년 동안 평균 1.2m 정도 두께의 바닷물을 대기 중으로 증발시킨다. 물론 이런 수증기의 대부분은 2~3km 정도의 고도에서 액화돼 구름으로 변한다. 그리고 증발과정에서 흡수했던 에너지를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한다.
상온에서 1g당 580칼로리가 넘는 증발열을 가진 물이 상태 변화를 하는 순환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태양에서 지구로 유입된 에너지의 상당부분은 대기 중에 머물며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 온실효과를 생성한다.
지구상에서 물이 세 가지 형태의 모습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것은 어는점과 끓는점이 지구의 평균 온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어는점 0℃와 끓는점 100℃가 지구의 평균 온도인 18℃ 근처의 값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어는점과 끓는점이 이 같은 값을 갖는 것은 우리 주위의 1기압 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만일 압력이 달라지면 이 값 역시 달라지는데, 이런 점에서도 물은 특별한 성질을 보인다.
압력이 증가하면 끓는점이 올라가기 때문에 현미밥을 지을 때 압력밥솥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수심 2,600m의 깊은 바다 속에서 350℃의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올 수 있는 것도 바로 압력이 만들어낸 물의 성질 변화 덕분이다.
오늘날 해저온천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와 비슷한 현장에서 생명이 탄생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상황이 먼 옛날 지구의 초기에 많이 있었으리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압력이 높아지면 물의 녹는점이 내려가는 것도 다른 물질과는 다른 물의 특별한 성질이다. 바로 물의 이런 특성 덕분에 김연아 선수와 같은 얼음 요정이 탄생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이 접촉하고 있는 얼음에 압력을 가하면 얼음의 녹는점이 낮아진다. 그리고 이로 인해 녹게 된 얼음이 날과 얼음 사이의 마찰을 줄이는 윤활제 역할을 해 사람들이 스케이터들의 멋진 활강 모습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다양한 물질 많이 녹일 수 있어
쉽게 더워지거나 식지 않는 열용량을 가진 물은 지구의 기후를 만드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구 각 지역의 여름과 겨울 온도 변화를 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은 무려 40℃ 이상 차이를 보이지만 바다에서의 온도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다. 이로 인해 지구 기후가 계절에 따라 지나치게 요동치지 않게 됨은 물론이다.
또한 육지와 바다의 이 같은 차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계절풍의 기후대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겨울이 되면 시베리아 대륙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견뎌내야 하는데, 이는 바다보다 빨리 차가워진 대륙에 고기압이 형성되면서 바다를 향해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반면 여름에 바다보다 빨리 더워진 대륙에 저기압이 만들어지면 바다로부터 해양성 바람이 불게 된다. 해변에서 밤낮에 따라 바람이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가 지구 규모에서도 거대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물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4℃의 액체 상태에서 얼음보다 밀도가 더 크다는 점이다. 겨울철 차가운 공기와 접한 호수나 강의 경우 표층에서부터 얼음이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얼음이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게 되는 것 역시 이 같은 특성 덕분이다.
표층의 얼음이 물속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추위에서 보호해주는 차단막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생명의 행성인 지구에서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하더라도 지나치지 않다.
물이 가진 또 하나의 특이한 성질은 엄청난 용해도다. 오늘날 바닷물 1kg에는 약 35g 정도의 소금이 녹아있다. 하지만 바닷물의 부피가 최소한 10분의 1 이하가 되도록 졸여야만 소금이 석출된다는 것은 바닷물이 1kg에 적어도 300g 이상의 소금을 녹일 수 있는 엄청난 용해도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 특별한 것은 물이 무기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유기물질도 많은 양을 녹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이 가지고 있는 큰 용해도에 특별히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들이마시며 살고 있는 공기가 깨끗한 것이다.
지구 역사를 통해 대기 중으로 엄청난 양의 물질들이 끊임없이 유입돼 왔다. 만일 이들을 대기 중에서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작용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대기는 오염물로 가득 차 우리가 숨을 쉬며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깨끗한 공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엄청난 용해도를 지닌 물이 비를 통해 끊임없이 대기를 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이 녹일 수 있는 물질에 기체가 포함돼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같은 기체의 용해도 덕분에 수중 생물들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산소를 뭍에 나오지 않고도 물속에서 얻을 수 있다.
기체의 용해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체가 녹는 양은 기체의 부분압에 비례한다. 이 덕분에 1.5~3기압 정도의 고압 탄산가스를 녹여 봉입한 음료수를 만들 수 있다. 기체의 부분압이 채 400pp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일상적 환경에서 음료수 병을 딸 경우 속에 있던 고압의 탄산가스가 대기 중으로 나오면서 음료수를 시원하게 즐길 수 있게 된다.
극성을 띈 물의 분자구조
물은 왜 이런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과학자들은 물이 가진 특별한 분자구조의 모습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물 분자는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가 ‘공유결합’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결합해 만들어진다. 공유결합이란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전자를 하나씩 내놓고, 이 두 전자를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각자 원자 내의 안정적 전자 배치 구조를 완성시키는 결합이다. 이런 결합으로 물 분자는 수소와 산소가 서로 105 정도의 각을 이루고 있는 구조를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수소와 산소가 전자를 선호하는 정도에 차이를 보인다는 것. 이로 인해 서로 공유하기로 했던 공유전자가 한쪽(물의 경우는 산소)으로 치우쳐지면서 물 분자 내에는 전기의 분극이 일어난다. 또한 이에 따라 극성을 갖게 된 물 분자 사이에 +, - 전하들이 나란히 배열을 이루는 강한 수소결합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비스듬하게 각을 이루고 있는 물 분자가 수소결합을 하면서 만들어 내는 얼음은 대개 6각형 구조를 기본으로 하며, 이런 얼음 내부에는 자연스럽게 빈 공간이 많이 만들어지게 된다. 또한 이런 빈 공간에 메탄 기체가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서 만들어진 물질이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얼음메탄이다. 우리나라의 동해에서도 발견된 얼음메탄은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빈 공간이 많은 얼음의 구조 때문에 물의 밀도가 얼음보다 커질 수 있다. 즉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 얼음 내부의 비어 있던 공간을 물 분자가 비비고 들어가면서 물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
4℃에서 밀도가 최댓값을 갖는 물의 성질이 만들어지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이상 온도가 올라가면 물 분자의 운동 에너지가 커져 더 이상 가까이 밀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소결합으로 녹는점과 끓는점 높아
수소결합이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물의 녹는점과 끓는점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수소결합은 분자 사이의 끈끈한 인력을 만들어 내고, 이는 물속의 분자들이 쉽게 기화되지 않게 한다. 따라서 주기율표에서 예상하는 것보다 물은 훨씬 높은 어는점과 끓는점을 갖게 된다.
만일 물에 수소결합이 없어 영하 68℃에서 끓는다면 어찌했을까. 우리 지구는 생명이 살 수 없는 메마르고 황량한 행성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DNA의 이중나선구조가 바로 염기들 사이에 만들어진 적절한 수소결합덕분임을 알아낸 것은 왓슨과 크릭이다. 그들은 지난 1962년 노벨상을 수상하면서 오늘날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분자 생명공학의 효시를 이루었다. 우리 생명에 절대 필요한 3차원 구조의 단백질이 그 적절한 입체 모습과 기능을 갖출 수 있는 것도 바로 수소결합 덕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지구가 생명의 행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많은 요소들이 곳곳에서 합력해 일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너무 흔한, 그러나 아주 특별한 물이 간직하고 있는 수소결합도 우리가 지구상에서 편히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소중하며 고마운 요소의 하나다.
글_김경렬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krkim@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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