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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후변화 정책 이끌어 갈 과학자 출신 장관, 스티븐 추

스티븐 추는 레이저를 이용해 원자를 냉각시키는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이자 열렬한 대체에너지 신봉자다. 이 때문에 석유 값이 더 올라야 한다거나 석탄은 최악의 악몽이라는 과격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워싱턴 정계와는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그가 에너지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 역시 노벨상 수상 경력보다는 대체에너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미국의 산업지형을 바꿀 수도 있는 기후변화 정책을 이끌어 가려면 전사(戰士)가 돼야 한다. 그 만큼 반대파들의 공세가 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벌써부터 과학자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각박한 정치현실을 그가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3월 31일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들은 앞으로 10년 내 온실가스 배출을 20% 감축하고 공공시설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25%를 친환경 에너지로 충당하는 내용의 기후변화방지 법안을 공개, 법률화를 위한 시동을 걸었다.

미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의 헨리 왁스 먼 위원장은 이날 에드워드 마키 의원과 함께 600쪽 분량의 기후변화방지 법안 초안을 공개하면서 “이 법은 수백 만 개의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을 에너지 독립의 길로 인도하며, 지구온난화 원인물질을 감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기후변화방지 법안은 지난해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는 버락 오마바 대통령이 집권하고 민주당이 다수당이 됨에 따라 제정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는 상태다.

과학자 출신의 미 에너지부 장관

미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는 지난 4월 기후변화방지 법안의 심사를 위해 나흘간의 청문회를 가졌다. 22일에는 스티븐 추 에너지부 장관, 레이 라후드 교통부 장관, 그리고 리사 잭슨 환경보호청장이 참석했다. 24일에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이 참석했다.

에너지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만 해도 스티븐 추는 정치가들이 가지고 있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과학자들에게 넘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청문회에 참석한 이날의 추 장관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왁스먼과 마키 의원이 발의했다고 해서 기후변화방지 법안보다는 왁스먼-마키 법안으로 불리는 이 법안의 이점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추 장관의 이 같은 모습을 본 사람 중에는 그가 예전에 했던 주장을 후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

왁스먼-마키 법안의 주요 골자는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난 2005 년 수준의 17%로 감축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020년까지는 2005년 대비 20%, 2030년에는 42%, 그리고 2050년에는 83% 감축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목표에 도달하려면 당장 내년부터 4%씩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의 법안에 대해 반대파들은 즉각 공격해왔다. 미시건 주 의원인 프레드 업튼은 기후변화방지 법안이 미국의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축산업으로 많은 메탄을 배출하는 고장인 네브래스카 주의 하원의원 리테리는 메탄 방출을 규제하는 조항에 대해 여러 건의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는 정부가 이 법안에서 정한 배출 기준을 맞추려다 화력발전소를 파산시키고 싶으냐고 따졌다.

일리노이 주 의원인 존 심쿠스는 직접 사 온 안전모와 석탄 덩어리를 들어 보이며 이 법안은 자신이 본 것 가운데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 주의 마이클 버지스 의원은 온실가스 증가와 인간 활동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증거를 대라고 요구했다.

그때 과학자 출신의 에너지부 장관인 스티븐 추가 논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는 온실가스 증가와 인간 활동의 상관관계를 얘기할 수 있어 기쁘다고 버지스 의원에게 점잖게 얘기했다. 그는 마치 방과 후 나머지 수업을 받는 학생들을 다루듯 모든 의원들에게 알고 있는 것을 명료하게 말해 주었다.

스티븐 추는 지난 1월 에너지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 직전에는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장을 지내던 양자물리학자다. 그에게는 청중들에 둘러싸여 정치인다운 미소를 짓는 것보다 레이저로 원자를 냉각시키는 방법을 강의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정치인다운 미소를 짓는 것에 더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가 오바마 행정부의 에너지부 장관으로서 직면해야 할 정치적 변화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여러 직업 정치가나 군 장교 출신의 전임 장관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잡무를 떠안아야 한다. 미국의 핵병기 재고와 석유자원을 관리해야 하고, 1만6,000명으로 구성된 에너지부를 운영해야 한다. 또한 미국 대형연구소의 연구도 지원해야 한다.

하지만 장관직을 맡은 그의 가장 큰 임무는 오바마 행정부의 포괄적인 목표가 실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의 에너지 경제를 지속가능한 저탄소 경제로 바꾸는 것이 바로 그것.

추 장관의 전임자인 새뮤얼 보드먼은 미래기술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추 장관의 관점은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이다.

사실 오바마 행정부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저탄소 경제를 시간표에 맞추려면 미국 산업의 지형도가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이 외에 다른 구상을 실현하려면 그가 말하는 ‘제2의 산업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추 장관은 바로 이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것이다.

기후변화방지 법안은 공화당원은 물론 민주당원, 특히 석유가 풍부한 주의 주민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 그들은 이 법안을 실시함으로써 자기 주에 경제적 타격이 오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이 같은 반대를 극복하려면 추 장관 이외에도 그의 동료인 레이 라후드 장관, 리사 잭슨 청장 등이 가진 모든 신념이 필요할 것이다.

미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서 추 장관의 동료들은 과학적 문제의 경우 그에게 발언권을 양보했다. 물론 이는 정치적 쇼맨십이 아니었다.

이를 통해 추 장관이 주도권을 잡게 되자 워싱턴 정계답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치열한 논쟁에서 과학적 문제에 대한 학문적 고찰로 바뀐 것. 이는 아마도 노벨상 수상자의 면목 때문일 것이다. 워싱턴 정계에서는 일단 그의 행보에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뚜렷한 소신

61세의 추 장관은 MIT에서 상급학위를 받으러 미국에 유학 온 토종 중국인 부부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자기 집안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교육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추 장관과 그의 형제들은 하버드, 예일, MIT, 버클리, UCLA 등에서 7개의 석사급 이상 학위를 받았다.

추 장관은 말을 할 때 매우 정확한 논리를 펼친다. 말하는 중간에 앞서의 말을 정정하려고 머뭇거리는 일도 거의 없다. 심지어는 양자 물리학의 매우 이해하기 힘든 개념에 대해 말할 때도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지 않는다.

그의 강의를 듣는 것은 프로 테니스 선수와 함께 테니스를 치는 것만큼 힘든 정신적 노동이다. 그가 자기 딴에는 알아듣기 쉽게 말하려고 해도 그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가진 이해력 전부를 다 털어 넣어도 모자랄 것이다.

이런 과학 마니아가 미국의 내각에까지 진출하게 된 것은 연방차원에서 과학자들을 그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포용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워싱턴 정계와는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추 장관이 에너지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은 노벨상 수상 경력보다는 대체에너지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연구 실적 때문으로 추정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추 장관에게 일하는데 필요한 많은 예산을 주었다. 물론 내년도 미국 에너지부 예산인 263억 달러는 부시 행정부 시절에 비해 5% 정도 오른 것이다. 하지만 추 장관은 또 다른 격려기금 390억 달러도 가지고 있다.

이것까지 누적해서 계산하면 에너지부의 재원은 부시 행정부 시절에 비해 250% 이상 증가한 셈이다. 추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 같은 국립연구소에서 실시되는 연구 및 건설 프로젝트에 12억 달러의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추 장관은 현존하는 기술의 신속한 구현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 기후변화에 대처한다는 기조를 중장기적으로 유지해 나갈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과 기술은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로 에너지 효율 측면에 관한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0~90% 감소시키면서도 개발도상국들이 발전된 삶의 질을 누리게 하려면 단순히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보다는 더 나은 방식을 선택해야 합니다.”

추 장관은 장관직을 맡을 때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예산결정 과정에서 그 의견을 명백하게 드러냈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초 그는 발전형 바이오 연료의 기초연구 확대를 위해 7억8,65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자동차용 수소연료전지 연구 예산에서 1 억 달러를 감축했다.

그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수소자동차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확실히 줄이는 프로그램에만 투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도 그가 에너지부에서 성공할 가능성에 대해 평가를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추 장관이 떠안은 직무와 책임이 너무나도 무겁기 때문이라는 것. 그 가운데 일부는 추 장관 자신의 실책이기도 하지만.

사실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추 장관만큼 또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는 지난 4 년 반 동안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의하면서 로렌스 버클리의 연구시설을 사용해 지구온난화 이면의 과학적 증거를 보여 왔다.

그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드는 비용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국가 안보나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에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충분히 논증 가능합니다. 저에게는 논증 가능할 뿐 아니라 아주 명백하기까지 합니 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현재 당면한 가장 중요한 기술적, 과학적 문제입니다.”







동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학생

에너지부에 입성하기 전 추 장관의 이력은 경계선에 걸쳐져 풀리지 않던 과학적 문제를 해결한 일들뿐이었다. 다른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처럼 추 장관 역시 노벨상 수상 당시 자신의 인생을 추억하는 자서전을 냈다.



그는 롱아일랜드에서 보낸 소년시절에 거실 바닥에서 조립완구를 가지고 놀던 때부터 이후 원자를 극도로 차게 냉각해 가두고 관찰하며 움직이는 데 전념하던 때까지를 회상했다. 여기서 냉각이란 절대 0도보다 2억4,000 만분의 1도가 더 높은 상태를 말한다.

그는 레이저빔 6개를 사용해 원자를 가두는 트랩을 만들어 상온에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원자의 에너지를 줄여 초당 2cm 수준으로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원자를 극저온 상태로 냉각시켜 원자의 운동성을 낮추고 이를 통해 원자를 조절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추 장관의 이 같은 발견은 모든 종류의 자제품에 영향을 주었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에서 보유한 원자시계의 정확성을 한층 개선한 게 대표적 사례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던 추 장관은 필수과목을 가르치던 유진 코민스 교수의 주목을 받았다. 코민스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스티븐은 강의 초기에 자신을 연구학생으로 써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분명 동기들 중에서 제일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난처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까지 끌어들여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 없었거든요.”

결국 그들은 전자와 쿼크 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함으로서 당시에는 최신이었던 입자물리학 표준 모델 일부를 검증하는 실험을 했다.

코민스 교수에 따르면 추 장관은 임기응변에 능한 최고의 실험가였다. 입자물리학 표준 모델 일부를 검증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했던 레이저 기기는 당시 최신형이었다.

이 때문에 코민스 교수는 레이저 기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 그 때 추 장관은 자신 있게 자신이 그 같은 레이저 기기를 만들어 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실제 그는 학생용 기계 상점에서 구한 싸구려 부속을 가지고 레이저 기기를 만들었다.

이들의 실험은 큰 파란을 몰고 왔다. 노벨상 수상 당시 썼던 자서전에서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 실험은 너무나도 흥미로웠으며 온 세계가 확실히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의 연구팀이 추 장관과 코민스 교수가 밝히려던 것을 밝혀냄으로써 이들의 연구를 무색하게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 장관과 코민스 교수가 싸구려 레이저 기기를 가지고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계로 무장한 연구팀을 앞지를 뻔했다는 사실을 벨연구소에서는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1983년 벨연구소에서는 추 장관을 뉴저지주 홈 델에 위치한 양자전자연구부의 부장으로 임명했다. 여기서 그는 원자를 냉각시키는 연구를 시작한다.

미국 표준기술연구소의 물리학자 윌리엄 필립스는 여러 학회에서 추 장관을 만났고 그의 연구 성과를 멀리서 지켜보았다. 그는 어느 학회의 점심시간에 레이저 냉각으로 이온 없는 중성원자를 포획할 가능성에 대해 추 장관과 대화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후 그들은 선의의 경쟁자가 됐다. 필립스와 그의 동료들은 미국 표준기술연구소에서 기술적 돌파구를 연구했다. 또 다른 물리학자인 클로드 코엔 타누지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연구에 참가했다.

당시 추 장관은 벨연구소에서 발견에 매달리고 있었는데, 뉴저지에 폭설이 쏟아지던 어느 날 ‘유레카’를 외쳤다. 모든 연구원이 모여 과학 토론을 벌이는 벨연구소에서는 드물게 다른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그만 혼자 남아 연구를 하다가 유레카를 외친 것. 그는 원자를 포획하고 나서 냉각할 필요 없이 원자를 냉각시키고 나서 포획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1997년 이 3명은 모두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관료주의와 싸워야 할 추 장관

추 장관에게는 자연법칙과 씨름하는 것이 워싱턴의 관료주의와 싸우는 것보다 쉬울지 모른다. 지난 4월 의회 청문회가 있은 지 1주일이 지나자마자 이산화탄소 배출 상한선 및 배출권 거래를 담은 법안, 즉 왁스만- 마키 법안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법안을 앞장서서 주도한 캘리포니아 주 하원의원 헨리 왁스먼은 업계와 소비자가 이 법안 때문에 부담해야 할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어 입법 활동에 차질을 겪었다. 실제 기업의 경우 무료로 탄소배출권을 얻을 수 있는 전환기가 있는지, 아니면 모든 기업이 경매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사야 하는지 아무도 딱 부러지게 말을 할 수 없었던 것.

그리고 이 법안이 경제에 미칠 파장은 엄청난 수준이지만 거기에 대한 의견은 모두 달랐다.

환경보호청의 공식 예측으로는 높아진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가구당 연평균 98~140 달러를 추가 지출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 내놓은 예측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는 가구당 연평균 1,000달러, 2020년에는 1,400달러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한다.

이처럼 업계에서 예상하는 추가 에너지 비용이 정부의 예상치를 10배나 웃도는 것은 그만큼 법안을 만드는 과정이 세밀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친환경 기술이 오히려 불법으로 규정되는 경우도 있다. 펌프 방식의 저장 기술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풍력발전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때 펌프로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린 후 추가 전력이 필요할 때 떨어뜨려 터빈을 돌리면 간단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펌프 방식의 저장 기술인데, 왁스먼-마키 법안에서는 이 같은 방안이 오히려 위법이 되는 것이다.

오리건 주의 하원의원인 그렉 월든은 바로 이 같은 허점을 파고든다. 그는 청문회에서 이 같은 기술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비용이 들어가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법안을 만들었느냐는 투의 비난을 했다.

추 장관은 잘못을 반성했고 월든은 의기양양했다. 추 장관이 워싱턴에서 성공하고 자신의 정책에 대한 의견일치를 얻어내려면 이번 같은 일을 잘 처리해야 하며, 월든처럼 기업가 편에 붙어 정부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을 이겨야 하는 것이다.

추 장관은 법안의 오류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규제 자체는 필요하다는 점을 냉장고의 사례를 들어 역설했다. 지난 1970년대 정부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신속하게 에너지 효율적인 냉장고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것.

추 장관은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규제의 중요성은 차마 역설할 수조차 없습니다. 오늘날 에너지 절약 실태가 어떠합니까? 우리나라에는 냉장고가 무려 1억5,000만대나 있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하나만 보더라도 1974년 기준으로 절약된 에너지는 오늘날 미국 내 풍력 및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에너지보다도 많습니다.”

현안문제 해결 위해 과학기술 필요

추 장관은 원자를 냉각시키는 것과 같은 갑작스런 발견과 달리 기후변화에 맞서는 방법을 한순간에 깨달은 것은 아니다. “저는 오랫동안 서서히 깨달아갔습니다.

아마 6~7년 전부터 에너지 문제에 대해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자료를 접할수록 에너지 문제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당시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였다. 그는 물리학 학회에서 레이저에 의한 원자 냉각에 대해 강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환경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고 있는 비영리 조직인 휴렛 재단 이사회에도 가입했다.

그는 그 곳에서 많은 동지들을 만났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는 과거 벨연구소의 상사 이자 당시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의 소장이던 사람이 사임하면서 추 장관을 후임으로 추천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발전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서 해야 할 일은 대학에서 해야 할 일과는 차원적으로 달랐다.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거대한 조직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얼마 안 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기후변화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면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도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고 말이지요.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 있는 최고 과학자들의 생각을 바꿀 수만 있다면 충분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 면접을 본 당일 후임 소장으로 선임됐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핵심을 명확히 짚어내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를 기후변화 연구의 본산으로 만들겠다던 추 장관의 목표는 초과 달성됐지만 그는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을 끌어모으고 싶어 했다.

미국 최대 규모의 연구소 소속 과학자뿐 아니라 작은 대학의 물리학과에 소속된 과학자 중에도 그가 발굴해 자유롭게 연구하게 하고 싶었던 사람은 많이 있었다.

그는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서 진정한 기술적 돌파구 찾기를 꿈꾸며 여러 가지 공기청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어떤 연구팀은 전력 수요에 자동적으로 반응함으로서 최대전력 수요 시간에 전력 사용량을 줄여주는 지능형 전력망을 만들고 있다.

또 다른 연구팀은 억새를 유전자 조작해 바이오연료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한 합성 미생물을 사용해 잡초나 포플러 나무 속의 셀룰로오스를 분해, 옥수수 에탄올보다 더욱 친환경적인 가솔린 대용품을 만들려는 연구팀도 있다.

추 장관은 과학이 지구적 재난을 막아냈던 과거를 들춰내기 좋아한다. 그는 공기로부터 질소를 분리해 비료로 만드는 방법을 발견한 노벨상 수상자 프리츠 하버와 칼 보슈, 수확량이 많고 질병에 대한 내성도 강한 밀 품종을 개발한 노먼 볼로그의 업적을 자주 입에 담는다.

이들의 연구 성과로 인해 농업은 바뀌고 수백만 명이 기아를 면했다. 추 장관은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과학기술이 큰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1차 산업혁명으로 인류는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을 이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되었습 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미립자, 스모그 등으로 공기가 오염되는 부작용이 생겼지요. 그래서 인류는 과학기술을 사용해 공기를 정화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힘을 써야 하는 걸까요? 물론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언젠가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낙관론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이대로 산다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스티븐 추의 가장 큰 임무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18%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에너지 경제를 지속가능한 저탄소 경제로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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