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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창의수학교육의 전도사

[RELAY INTERVIEW] (5) 권오남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

수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부터 절래 흔든다. 미분과 적분, 행렬, 함수, 통계 등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었던 수학시간이 떠오르는 탓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문과계열로만 나왔다면 루트(√), 파이(π), 시그마(Σ) 등의 기호가 섞인 수학식만 봐도 울렁증이 생길 정도다.

이처럼 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 수학은 대개 어려운 과목이자 재미없는 과목으로 인식되어 있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수학이 재미있다는 사람은 만나기 힘든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의 권오남 교수는 세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괴짜다. 수학이 재미있고 즐거운 학문이라 자신 있게 말한다. 현재의 신분이 그렇다 보니 하는 말이 아니다.

권 교수와 대화를 나눠보면 수학을 정말로 좋아함을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수학 얘기를 할 때면 마치 장난감 가게에 들어선 아이처럼 눈빛이 반짝인다. '권 교수+ 수학=행복²'인 것이다.

이러한 권 교수와 수학과의 인연은 수학이 산수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숫자와 부호, 등식을 처음 접했던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이 좋았고 재미있었다는 것.

권 교수는 "수학은 문제 자체는 복잡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다는 명쾌함이 체질에 맞았던 것 같다"며 "고교 1학년 때는 대학교수를 찾아가 수학 교재를 구해 읽었을 만큼 난해한 문제의 정답을 알아냈을 때의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초·중·고교 시절 모두 수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권 교수는 자신이 수학자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당시 수학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목표로 다가가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권 교수의 실제 목표는 수학을 잘하는 의사나 약사였다.

하지만 결국 권 교수는 이화여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서울대 수학과 석사, 미국 인디애나대학의 수학과 박사와 교육학 석사 학위를 연이어 취득한 뒤 모교인 이화여대를 거쳐 서울대 수학교육과 교수로 부임하며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학문을 연구하고 교육자를 양성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권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이해의 과정 없이 무조건 외워야만 했던 암기과목에 발목을 잡힌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자의반 타의반 내디딘 길이었지만 수학 사랑으로 뭉쳐있었던 권 교수의 열정과 가치가 발현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교수로 부임한 직후 대학계에 뿌리내린 한국식 주입교육의 병폐를 깨닫고 학생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창의적 교수법을 직접 개발, 수학교육계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온 것.

권 교수는 "이화여대 부임 첫해에 집합론을 가르쳤는데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며 강의를 준비했음에도 중간고사 평균점수가 25점 정도에 불과했다"며 "열심히만 하면 학생들이 잘 따라와 줄 것으로 믿었던 상황에서 이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모든 학생들을 개별 면담해 가며 깨달은 결론은 교수중심의 일방향적 지식 전달과 학생들의 중압감을 가중시키는 수학교육 콘텐츠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권 교수는 "교수들도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 때면 실수와 오류, 수정의 과정을 거치지만 학생들에게는 이를 통해 얻어진 완벽한 결과물을 가르친다"며 "학생들의 입장에서 이는 수학에 지레 겁을 먹을 만큼 큰 부담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교수법을 중시하지 않았던 90년대 의 분위기 탓에 새로운 교수법을 배울 곳도, 논의할 상대도 마땅치 않았다는 것.

하지만 역시 궁하면 통했다. 지속적인 교수법 변화를 시도하던 중 미국의 한 학회에서 동일한 고민에 빠져있던 학자를 만나게 됐고 공동연구를 통해 다양한 교수법을 개발해 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생 중심의 토의학습. 문제를 놓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토론하며 답을 찾아가는 게 핵심이다.

권 교수는 "토론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증명해 나가면서 자연스레 수학 지식이 체득되도록 하는 것이 이 교수법의 궁극적 지향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창의적 인재 교육을 이미 10여년 전부터 실천해오고 있는 셈이다.

이 교수법의 효과는 대단했다. 강의실에는 침묵과 중압감 대신 열의와 흥미가 채워졌고 다른 강의에서 입 한번 떼지 않던 학생들도 권 교수의 강의에서는 질문공세에 여념이 없다.



권 교수는 "예전에는 강의를 끝내면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워 내 기분도 찜찜했다"며 "반면 지금은 매번 뿌듯한 마음으로 강의실을 나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권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미래의 수학교사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졸업 후 이들이 초·중·고교에서 창의교육을 실천한다면 장기적으로 창의인재의 육성은 물론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회구조에도 근본적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실제 권 교수는 "얼마 전 고교 수학교사가 된 제자로부터 대학 때 배웠던 토론 중심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메일을 받았다"며 "이러한 얘기를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소설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세상을 꽃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나비가 필요하다'는 글귀처럼 권 교수는 수학교육의 혁신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 제자라는 나비를 날려 보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권 교수에게는 이 같은 교수법의 혁신만큼이나 주변 지인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교육자·연구자로서의 역할에 더해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실제 권 교수는 각종 수학 관련 학회를 비롯해 서울대 여교수회, 전국여교수연합회 등 시쳇말로 귀찮고 돈도 안 되는 활동에 많은 열정을 쏟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한국수학교육학회, 대한수학회, 한국 다문화교육학회 등 3개 학회에서 동시에 이사직을 맡았을 정도다.

남들은 바쁘다는 말로 사양하는 일들에 왜 이렇게 적극적인 것일까. 내심 명예욕이라도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권 교수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봉사가 교수의 3대 본분이라 생각한다.

권 교수는 "교수라면 교육적 성과와 연구 업적에 더해 사회를 위한 공익적 기여도 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내게 있어 사회활동은 교수로서 해야 할 본업"이라고 강조했다.

이 신념에 따라 권 교수는 지금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면서 대한수학회의 사업이사와 함께 2012년 서울서 개최되는 12차 국제수학 교육자대회(ICME)의 국제조직위원으로 활동하며 원활한 대회준비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권 교수는 "ICME는 전 세계 수학교육자들의 올림픽으로서 이를 유치했다는 것은 국가의 품격도 함께 올라가는 일"이라며 "힘들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끝내며 권 교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수학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권 교수는 "가장 자주 듣지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조언했다. "학생들은 문제풀이 중심으로 무조건 많은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한 문제를 풀더라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의 경우에는 인문서적처럼 수학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학 관련 교양도서들을 접하게 해 흥미를 높여주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권오남 교수가 추천한 제6대 릴레이 인터뷰 주자는 서울대 기계공학과의 고상근 교수다. 권 교수는 "고 교수는 수년 전부터 서울대 동료 교수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리더십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며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경쟁보다는 동료 간의 우의와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추천의 변을 밝혔다.









권오남 교수 프로필


1983 이화여대 수학교육과 학사
1985 서울대 수학과 석사
1992 미국 인디애나대학 수학과 박사
1993 미국 인디애나대학 교육학 석사
1993~2003 이화여대 수학교육과 조교수,부교수
2003~현재 서울대 수학교육과 부교수, 교수
2004~2006 한국수학교육학회 총무이사,
대한수학회 이사,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이사
2008~현재 국제수학교육자대회 국제조직위원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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