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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로 가득 찬 세상

화학물질이란 화학적 방법에 따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질을 말한다. 화학물질은 과학기술과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종류와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200만 종이 존재하며, 매년 2,000여 종의 새로운 화학물질이 개발돼 상품화되고 있다. 화학물질로 가득 찬 세상인 셈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매일 수천 종의 화학물질에 노출되며, 그 중 일부는 체내에 흡수돼 수십 년 간이나 남아있게 된다.

사람들은 이 같은 화학물질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파퓰러사이언스 기자인 아리안 코헨이 직접 실험을 통해 이 의문의 해결에 도전한다.


현대인들은 무수한 화학물질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사람에게 해로운 유독성을 갖고 있다. 샴푸 속에 든 화학물질부터 시작해서 피부세포 속으로 파고드는 면도 크림은 시작에 불과하다.

커피 속에도 화학물질이 녹아 있다. 커피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뜨거운 물이 플라스틱제 커피메이커에 닿을 때 화학물질이 녹아드는 것.

포장재에 들어있는 산업용 화학물질을 만지거나 살충제가 뿌려진 잔디밭을 거닐 때도 화학물질에 노출된다. 심지어 비(非)점착 프라이팬으로 음식을 요리할 때도 마찬가지.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만지는 의류나 가구에도 미생물, 곰팡이, 습기를 억제하는 화학물질이 칠해져 있다. 밤에는 난연제가 함유된 침구를 뒤집어쓰고 잠을 잔다. 난연제란 불이 붙어도 연소가 잘 되지 않도록 하는 성분의 화학물질을 말한다.

환경독소라고도 불리는 유해한 화학물질 가운데 일부는 체내에 수십 년간이나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8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이 같은 화학물질이 성조숙증은 물론 발암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사춘기가 시작되면 여자는 초경의 시작과 함께 유방과 음모가 발달하고, 남자는 고환이 커지거나 음모와 음경이 발달한다. 성조숙증이란 성호르몬의 과잉으로 이 같은 제2차 성징들이 사춘기보다 빨리 나타나는 증세를 말한다.

미국의 국경없는 의사회 창립 회원이며 암 연구자, 그리고 그 자신이 암을 이겨낸 사람이기도 한 데이비드 서번-슈라이버는 지난해 뉴욕 타임스에 사람들이 처한 위기를 이렇게 요약해 놓았다. "1940년 이래로 서구사회의 암 발병률은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실제 지난 1974년 이후 아동 백혈병 및 뇌암 발병률은 28%나 높아졌다. 미국 연방정부는 1976년에 유독물질 규제법을 만들어 환경독소를 규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 법으로 인해 화학물질을 실험하고 규제하는 허약한 장치가 만들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법 제정 이전에 만들어진 무려 6만 여종에 달하는 화학물질에는 면죄부가 주어졌다. 이후 32년간 이 같은 상황을 연구해온 서번-슈라이버에 따르면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 발생의 범인은 명백하다.

"현대의 생활환경에 널려있는 여러 가지 발암성 화학물질과 접촉을 줄이기만 해도 암 발병률은 줄어듭니다. 이들 화학물질에는 살충제, 에스트로겐, 벤젠, PCB, PVC는 물론 플라스틱 병을 뜨거운 액체로 가열할 때 나오는 비스페놀A, 세척용품에 들어있는 알킬페놀, 화장품과 샴푸에 들어있는 파라벤과 프탈레이트 등이 포함됩니다."

미국 연방정부에 등록된 산업용 화학 물질은 8만5,000가지가 넘는데, 그 중 대부분은 효능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산업용 화학물질 모두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실체는 알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뉴저지에 있는 럿거스 대학 환경직업건강과학연구소의 소장 브라이언 버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다양한 화학물질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을 알면 실망을 금하지 못하게 된다. 우선 모든 미국 성인의 몸속에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그리고 지난 2004년 영국의 의학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상당수의 화학물질은 그 자체로 호르몬 효과를 내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교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연구에 따르면 환경과 생활습관은 인간의 질병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며, 암 발병의 75%와 관련돼 있다고 한다. 최근 과학자들은 이 같은 사실에 기반, 수십 년간 환경을 검사한 것과 동일한 엄격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화학물질로 가득 찬 세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단계적으로 규명되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의 기자인 아리안 코헨은 강박관념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수년간 환경노출 실험을 실시해왔다. 가면 갈수록 코헨은 얼마나 많은 화학물질이 자신의 몸 안에 축적돼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과연 자신의 몸에서 독을 빼내는 법을 알아야 할까. 자신의 몸이 망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그 정보는 전부 유용한 것일까. 어찌됐건 코헨은 그 모든 의문에 답을 해 줄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빈약한 수준의 화학물질 노출 검사

지난해 12월 코헨은 럿거스 대학에 있는 버클리 연구실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로잘린이라고 하는 간호사가 혈액검사를 수행하기 위해 코헨의 팔을 닦고 있었다.이에 앞서 코헨이 연구실에 가자 그곳의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그들은 코헨의 실험에 쓸 혈액 표본을 채취하기로 했지만 표준 절차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코헨이 그들에게 주문한 내용은 아주 복잡하다. 연구실을 음식점이라고 가정한다면 점원에게 무려 150가지의 요리를 주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하나 만들 때마다 10~30단계를 거쳐야 하는 복잡한 요리들이다.

로잘린 옆에는 두 명의 간호사가 서서 의학 진단 테스트 및 의학 정보 제공업체 퀘스트 다이아그노스틱스와 액시즈 애널리티컬의 지침서를 살피고 있었다. 이 연구실에서는 코헨의 몸속에 난연제, 살충제, 플라스틱, 금속 등의 화학물질이 있는지 분석할 것이다.

로잘린이 주사기를 집고 다른 두 간호사는 유리병을 든 채 혈액을 받을 준비를 했다. 코헨은 검사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하면서 어렸을 적 여름이면 치러야 했던 '의식'들을 떠올렸다.

욕의를 입고 욕실에 서 있으면 코헨의 어머니는 코헨의 몸에 선블록을 잔뜩 발라준 후 그 미끈미끈한 선블록이 흡수되기를 기다렸다. 그 다음 코헨의 어머니는 뿌리는 살충제를 꺼냈다. "눈을 감으렴." 그 말은 코헨의 어머니가 뿌리는 살충제를 뿜는 동안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참으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라는 뜻이었다.

로잘린의 큰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봐! 이제 이 환자분 혈액을 시험관으로 14병 뽑아낼 거야. 하지만 가급적 안전하게 해야 돼. 알았지?" 이것은 질병관리예방본부에서 산업용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방식을 모방한 실험의 시작이었다.

지난 1970년대 후반 질병관리예방본부는 사람이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에 노출되면 어떻게 되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질병관리예방본부는 정기적으로 국민건강영양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얻은 자료를 가지고 아동의 성장률을 도표화하거나 비만 관련 통계를 내는 등 여러 가지에 사용한다. 2001년부터는 화학물질의 대인노출에 관한 국가 보고서라는 연구에도 이 자료가 활용됐다.

올해 말에 나올 이 보고서의 후속편에는 가장 일반적인 환경독소 228종의 만연에 대한 자료가 실릴 것이다. 수천 종류의 화학물질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에 비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휘발유 속의 납, 벽 속 석면의 위험성을 파악하기 위한 그 어떤 공식적 연구 활동도 없던 수십 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와 관련, 질병관리예방본부는 연방 관보에 공지를 올려 과학자들로부터 어떤 화학물질을 검사하면 좋을지 추천을 받는다. 즉 사람의 몸에 침투한 화학물질 가운데 어떤 것을 검사하는 게 좋을지 묻는 것.

추천 목록이 가득차면 보급률이 높으면서도 안전성을 의심받는 화학물질 위주로 목록을 좁혀나간다. 수백 종류 정도로 목록을 좁혀 나가는 이유는 실무적 제약 때문이다. 질병관리예방본부의 과학담당 차장인 짐 퍼클은 이렇게 말한다. "혈액 샘플을 많이 구하기 힘들다면 실험에도 당연히 제약이 따를 것입니다."

국민건강영양조사는 질병관리예방본부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을 사용해 전국 15개 카운티를 선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질병관리예방 본부의 직원들이 각 카운티의 800~1,600명 정도의 피조사자들을 가택 방문해 면담하며, 이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5,000여명이 선발된다.

질병관리예방본부는 이들의 키, 체중, 체지방수치, 혈압, 심박수, 기타 사항을 측정한다. 또한 구강검사, 골 스캔, 시력검사도 이루어진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은 식습관, 성생활, 약물 이용 등에 대한 설문지도 작성한다. 그리고 피조사자들의 소변과 혈액도 대량으로 채취한다.

측정결과는 익명으로 처리되지만 피조사자들에게는 본인의 측정 결과 사본이 제공되며, 더 자세한 이해를 돕는 수신자 부담 전화번호도 제공된다.

질병관리예방본부 직원이 집에 방문하지 않는 한 이런 실험을 받아 볼 일은 없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학물질 노출 검사는 과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특정 종류의 화학물질만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그것도 가스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 광기술 등 값비싼 기술을 동원해 연구실에서만 이루어졌다.

워싱턴 DC에 있는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의 선임 과학자인 마이클 맥칼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공공보건 분야에서는 사람의 몸에 살충제 등 화학물질이 얼마나 침투했는지 파악하는 검사를 할 수 없었지요. 그런 검사를 하려면 검사비만 해도 수십만 달러나 들어가니까요."

현재 이 같은 검사기술은 상업 목적으로 특화된 연구실에도 느리게 보급되고 있으며, 그나마 너무 비싸 광범위한 보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코헨이 받는 이 검사의 비용도 무려 4,000달러나 든다. 그나마 퀘 스트 다이아그노스틱스에서 혈액검사 대부분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한 것이 이 정도다.

질병관리예방본부의 화학물질 대인노출에 관한 국가 보고서에서는 어떤 화학물질도 안전하다거나 위험하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다. 럿거스 대학 환경직업건강과학연구소의 소장인 버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국립보건원 직원들, 미국 독성물질질병등록국 직원들, 전염병학자들, 그리고 질병관리예방본부의 발표 결과를 해석하는데 전 생애를 바치는 과학자들이 할 일입니다."

질병관리예방본부가 화학물질 대인노출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질병과 화학물질 사이의 연관관계를 찾는 연구가 크게 늘어나게 됐다. 아직도 이 분야는 역사가 짧다. 그리고 이 같이 급조된 검사에 쓰인 기술 수준으로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화학물질의 종류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이 검사결과만 가지고는 어떤 화학물질이 암을 유발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 연구결과를 해석하려면 질병관리예방본부의 자료 해석에 평생을 바치는 전문가 집단의 힘을 빌려야 한다.





유독성 화학물질과 질병의 관계

혈액 채취 이후 후속 절차를 준비하는 동안 화학물질 노출 검사의 태생적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구자들은 독성물질과 질병 간의 연관관계를 많이 밝혀냈으며, 지금도 밝혀내고 있다. 하지만 실험 대상자를 고의로 독성물질에 중독시키지 않으면 화학물질과 특정 질병 간의 연관관계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밝혀낼 수 없다.

인체처럼 복잡한 체계 내에서 벌어지는 연관관계를 증명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특히 화학물질의 종류에 따라서는 태아 때 노출된 것이 어른이 돼서야 독성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미주리 주의 농업지역에 살고 있는 남성은 도시 거주자에 비해 여성을 임신시키는 능력이 40%나 낮다고 한다. 이는 살충제의 부작용일까.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의 의학저널에서는 이를 화학물질과 질병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고전적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한 연구자는 이런 글을 적었다. "새로운 발견 내용이 아무리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하더라도 화학물질의 발병 메커니즘 자체를 명백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연구에서 측정된 화학물질이 질병의 주범인지, 아니면 다른 화학물질 노출이나 생활습관이 질병의 주범인지는 항상 의문의 여지가 있다."

버클리는 이렇게 말한다. "결정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 니다. 결정적 증거는 직업상의 화학물질 노출에서나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경우 폐암 발병률이 높다거나 하는 식이지요. 그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예측이거나 추측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제품의 안전검사는 의외로 허술하게 이루어진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신약이 출시되기 이전에 철저한 안전검사를 거친다. 하지만 화장품 업계에서 실시한 화장품 동물실험에서 피부발진이나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업계 내 조직인 화장품원료 검토위원회의 안전검사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화장품과 일반 제품의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나 태아에게 미칠 잠재적 영향은 거의 검사받지 않는다. 사람들이 마시는 공기 속에 매일 뿌려대는 공기청정 용품이나 세척 용품, 향수 등은 어떨까. 이런 것은 전혀 검사받지 않는다. 특정 화학 물질이 위험할 수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도 그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키기란 힘들다.



미국의 규제체계가 화학물질을 다루는 방식은 사법제도가 국민들을 다루는 방식과도 같다. 즉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하며, 연좌제는 없다.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의 선임 과학자인 맥칼리는 이렇게 말한다.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제도는 화학물질을 개별적으로 다루며, 절대 계열단위로 다루지 않 습니다." 이 때문에 잠재적인 위험성을 갖춘 화학물질 규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느 화학물질에 들어 있는 특정 분자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 분자가 들어있는 동일 계열의 모든 화학물질 역시 위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는 같은 계열의 화학물질을 모두 별개의 화학물질로 취급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데만 법정에서 10년을 투쟁해야 한다.





난해한 화학물질 노출 검사 문서

코헨의 검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코헨은 우편으로 배달된 것 가운데 이만큼 난해한 문서를 본 적이 없다. 봉투를 열면 병원에서 실시하는 일반적인 혈액검사와 다를 바 없는,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 옆에 엄지손가락을 든 주먹이 그려져 있는 결과지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코헨이 받은 6통의 스프레드시트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은 방식이었다.

"2,3,7,8-TCDD UN 3373 L12090-1 WG27842 30.8g(wet) pg/g(wet weight basis) <.0065 spiked matrix WG27842-102% Recov 78.3." 코헨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이처럼 난해한 말을 통역하기 위해 3명의 전문가가 동원됐다. 맥칼리, 버클리, 그리고 뉴욕에 위치한 시나이 산 아동환경보건 및 질병예 방연구센터 소장 레오 트라산드가 바로 그들.

코헨은 우선 트라산드에게 전화를 했다. 그에게 조사결과의 이해할 수 없는 첫 줄을 읽어주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저도 모르겠네요. 테트라크로로디벤조-p-다이옥신은 좋지 않은 화학물질입니다. 하지만 얼마만큼 있어야 해로운지는 기준을 봐야 알 것 같아요."

코헨은 최신판 국민건강영양조사 기준을 찾아 그에게 다시 연락했다. 그리고 문서에 적힌 나머지 검사결과를 모두 읽고 나자 코헨과 통역 팀은 코헨의 몸속이 화학물질로 가득 찼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공장 굴뚝이나 쓰레기를 소각할 때 대기 중으로 나오는 염소화 화학물질인 다이옥신 및 푸란 수치는 평균치 이상이었다. 1980년대 이후 다이옥신 배출량은 80% 감소했다. 하지만 다이옥신은 평생 간직하는 화학물질이다. 인체는 지방세포 내에 다이옥신을 저장하며, 시시때때로 혈액 속에 다이옥신을 풀어놓는다. 이는 번식장애, 암, 기타 질병을 일으킨다.

스토브의 불완전 연소 및 탄 고기로 인해 생기는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수치는 평균치를 유지했다. 환경보호청은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일부를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했다. 이 화학물질은 인체 내에 25년간 잔류한다. 하지만 이 화학물질에 얼마나 강하게, 얼마나 오래 노출돼야 질병이 일어나는지는 과학자들도 모른다.

테프론 등 프라이팬의 비 점착 코팅 성분 잔여물 수치는 평균 이상이었다. 비 점착 코팅 성분 중 퍼플루오로옥타노익엑시드는 암과 연관돼 있다. 트라산드는 이렇게 말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화학물질은 소량만 접촉해도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코헨의 몸에는 질산도 엄청나게 많이 있었다. 버클리의 말에 따르면 질산은 가공식품에서 주로 많이 나오며,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고 한다.

플라스틱과 가소제 노출 수준은 평균이었다. 프탈레이트와 같은 가소제는 플라스틱과 비닐의 유연성은 물론 화장용 크림과 세제의 안정성 또한 증대시킨다. 맥칼리의 말에 따르면 프탈레이트는 어디에나 있다. 프탈레이트는 번식장애를 일으킨다. 다만 어느 정도 노출돼야 위험한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악명 높은 비스페놀A 수치는 평균이었다. 비스페놀A는 플라스틱 안에 들어있는 발정촉진 화학물질로 지난 2년간 뉴스 시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비스페놀A는 플라스틱 물병에서 물을 마실 때면 어김없이 체내에 흡수된다. 그러고 보니 10대 시절 수영선수였을 때 하루에 5시간 운동하고 플라스틱 물병으로 물을 마셨는데….

전반적인 검사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트라산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가 당신처럼 매우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다는 게 이 실험결과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화학물질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으며, 또한 전혀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화학물질도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검사보다 생활습관 바꾸는 게 중요

코헨은 화학물질 노출 검사의 내용을 해석하는 데 며칠이 걸렸다. 그동안 한 가지 기분 좋아지는 사실도 알게 됐다. 자신의 몸에서는 살충제, 살균제, 금속 등 야외에서 흡입하기 쉬운 화학물질이 거의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코헨과 다른 미국인들이 수십 년 전부터 몸에 축적해 온 다이옥신과 푸란을 제외하면 코헨의 몸에 있는 대부분의 화학물질은 실내에서 축적된 것이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이 같은 화학물질이 축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환경보건학과 교수인 커크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실내에서는 적은 양의 화학물질로도 큰 노출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는 '1,000의 법칙'을 알려주었다. 1,000의 법칙이란 같은 화학물질이라도 실외에 살포됐을 때보다 실내에 살포되는 쪽이 인체에 흡입될 확률이 1,000배 높다는 뜻이다.

앞으로 10년 후면 화학물질 노출 검사 비용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트라산드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런 검사를 하는 것보다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더욱 중요하다. 트라산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 화학물질 노출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 검사는 침습성인데다가 너무 비쌉니다. 그리고 검사결과를 알아도 써먹을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이 때문에 트라산드는 검사보다도 지금 당장 화학물질 노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가급적 의심스러운 화학물질 접촉을 줄이는 방향으로 생활습관을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연방정부에 등록된 산업용 화학물질은 8만5,000종이 넘으며, 매년 1,000종의 새로운 산업용 화학물질이 등록되고 있다.

비영리 환경감시기구인 환경실무그룹의 연구 부문 부총재인 제인 훌리안은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기업은 아무 제한도 안전보증도 없이 자유롭게 화학물질을 선택해 개인용품 제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훌리안은 FDA가 규제제도 신설과 제품 및 성분 검사, 공공보건 침해 여부에 대한 보고서의 의무적 작성, 안전요건 준수 감독 등을 통해 화장품의 안전성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FDA가 살충제와 식품첨가제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안전 규제와 같은 수준이다.

유독물질규제법을 개정해 유럽연합(EU) 국가처럼 화학물질을 계열단위로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진행 중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동 안전 화학물질 법안이다.

이 법은 환경보호청에 유아용품 출시 전 안전검사를 요구할 권한을 주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어떤 규제법안도 화학물질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수립돼야 한다. 그런 시대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의 선임 과학자인 맥칼리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인의 혈액이나 조직 속에 흐르는 산업용 화학물질은 정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할아버지 때만 해도 없던 것들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쉬며 논점을 정리했다. "몸속의 화학물질은 현대 환경의 부산물입니다. 그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정상'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환경의 실체가 어떠한지 파악하는 중일 뿐입니다."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 줄이는 방법


그동안 각국 정부는 여러 루트로 화학물질에 대해 통제를 가해왔다. 하지만 가정은 실외보다 1,000배나 더 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장소다. 가정환경을 정화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콜로라도 대학의 공기오염 연구자인 셸리 밀러에 따르면 불완전 연소에 의해 생기는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를 피하려면 스토브의 연기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좋다.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는 암 발생과 관련이 있다.

■카펫과 커튼의 사용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밀러에 따르면 카펫은 오만가지 입자들이 모여 있는 아지트다.

■고성능 필터를 진공청소기에 사용해 먼지가 공기 속으로 다시 못 나가게 한다.

■환경실무그룹의 '피부 침투' 데이터베이스(www.ewg.com)에 올라온 화장품과 세척용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5만 종 이상의 제품에 대해 0(가장 안전)에서 10(가장 위험)까지 등급을 매겨놓고 있다.





화장품에 함유된 유독성 화학물질

몇 해 전 미국 국립직업안전연구소가 미 연방의회에서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화장품에는 800여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그리고 이들 화학물질은 암, 탈모증, 기억력 상실, 잔주름 증가, 신경기능 저하, 조기 유산, 만성 피로, 백혈병 등을 유발시킬 잠재성이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20가지에서 50가지의 성분이 첨가된다. 대표적 성분으로는 유화제·살균제· 방부제·색소·향료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방부제·색소·향료 등에 의한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화장품은 화학적 변화로 인해 제품이 부패하기 쉬워 살리실산, 페놀, 크레졸 등의 방부제를 넣는데, 이들은 모두 발암성 물질이다.

또한 색소는 석유에서 분리·합성한 타르색소를 사용하는데, 이 물질에도 발암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료의 경우 4,000종이나 되는데, 이들은 피부에 자극을 주고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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