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며, 게임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대중문화작품에서 묘사되는 좀비의 이미지는 하나같이 몬스터 그 자체다.
죽은 시체를 마법의 힘으로 살려낸 존재이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이 때문에 어떤 공격에도 끄덕하지 않고 달려든다. 대중문화 작품에서 나오는 몬스터 좀비는 차치하고라도 부두교에서 말하는 좀비란 실제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 '새벽의 저주', '레지던트 이블', 그리고 '좀비 랜드'는 대표적인 좀비 영화로 꼽힌다.
좀비는 지난 1929년 윌리엄 시브룩이 쓴 부두교 관련 서적인 '마술의 섬'을 통해 영어 문화권에 들어갔다. 그리고 1932년에는 빅터 하플링과 벨라루고시 감독의 '화이트 좀비'라는 영화를 통해 새로운 공포의 대상이 됐다.
하플링이 1936년 감독한 영화 '좀비들의 반란'에서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마법을 이용해 좀비군대를 조직, 자신들을 통치하던 프랑스와 대치하는 모습을 그렸다. 좀비는 영화에서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다. '하우스 오브 더 데드', '카운터 스트라이크: 좀비 모드'와 같은 인기 게임에도 등장한다.
대중문화작품 속의 좀비 유형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새겨져 있는 좀비의 모습은 몬스터다. 대부분의 영화나 게임, 만화 같은 대중문화작품에 의해 각인된 형상인 것. 하지만 유형은 조금씩 다르다.
우선 썩은 시체의 좀비. 흑마법을 하는 사제가 무덤에서 주문을 외우면 관을 열고 기어 나온다. 이미 죽은 시체를 주술적으로 살려낸 것이어서 부패한 상태에서 움직인다. 주로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공격한다.
지난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이 만든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나오는 좀비는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유형 가운데 하나로 물리면 전염된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감염원은 바이러스. 바이러스가 뇌를 점령해 미치게 만든다는 것. 심장정지=의학적 사망 가설을 따르기 때문에 심장이 멎어있어도 뇌는 움직인다는 설정이다.
실험실의 배양기에서 만들어지는 좀비도 있다. 건 슈팅 게임인 하우스 오브 더 데드에서는 사람을 실험실의 배양기에 넣어 좀비로 탈바꿈시킨다. 배양기를 사용한 탓인지 팔이 나뭇가지인 좀비도 있고, 코끼리만한 좀비도 있다.
새벽의 저주에 등장하는 좀비는 무척이나 힘이 강하다. 주먹으로 자동차의 유리를 금이 가게 하는 것은 물론 어린 좀비가 건장한 군인과 힘을 겨룬다. 지능이 뛰어난 좀비도 있다. 주로 B급 영화에 많이 등장하는데, 말도 하고 총도 쏜다. 그리고 마을까지 이뤄 살며, 인간을 잡아와 사육하기도 한다.
심지어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 '스릴러'에는 주인공이 지휘하는 '춤추는 좀비'의 모습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작품 속에서 좀비는 주술이나 마법보다는 화학실험, 바이러스, 기생충에 의해 생성되는 것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좀비에게 공격을 받으면 상처를 통해 바이러스 혹은 기생충이 침투해 좀비로 변한다는 것.
이는 주술이나 마법의 힘은 실체가 없어 증명이나 표현이 어렵지만 과학의 힘을 빌리면 공포가 더욱 깊어지고 현실감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좀비의 존재에 힘을 싣기 위해 이를 물리치는 방법도 필수로 보여준다. 머리나 척추에 손상을 가하거나 불로 태워 퇴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중문화작품 속에 나타나는 좀비의 이미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죽은 시체를 되살려낸 몬스터이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지 못하며, 이 때문에 어지간한 공격에는 끄덕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달려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비의 원래 개념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이다. 대중 문화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진, 저주를 받아 되살아난 시체와는 다른 것이다.
좀비의 정확한 개념과 기원
아이티를 비롯한 서인도제도 사람들의 대부분은 흑인이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인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유럽인들의 노예정책에 따라 서인도제도로 들어오면서 토속신앙까지 함께 가져왔다. 좀비라는 개념이 유래된 부두교는 엄밀히 말해 이 같은 토속신앙과 가톨릭문화가 섞여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서인도제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좀비는 어떤 존재일까. 이들이 말하는 좀비는 죽음에서 부활했지만 자신의 의지가 없으며, 다른 사람의 통제에 따른다. 정상인과 같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각하지만 스스로 반응할 수 있는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외형도 정상인과 같다. 다만 초점 없는 눈빛과 기괴한 콧소리를 내며 뻣뻣하게 걷는다는 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인도제도, 특히 아이티 사람들의 대부분은 좀비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좀비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두교 신자로 활동 중이다. 미국 남부에도 부두교가 퍼진 상태며, 남미에는 부두교와 유사한 종교가 다수 존재한다.
인형에 핀을 박는 행위도 부두교에서 나왔다. 지난 1900년 초 뉴올리언스의 부두교 신자들이 타인을 저주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 인형을 이용한 저주행위는 공포영화를 통해 많은 대중에게 퍼졌다. 하지만 이는 인형을 이용한 부두교 주술의 당초 목적과는 다르다.
부두교에서 인형을 이용한 주술은 불임부부에게 아이를 갖게 해주는 행위로 널리 쓰였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민속식물학자 웨이드 데이비스의 저서 '뱀과 무지개'에 따르면 부두교의 사제에는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백마법을 사용하는 사제를 오운간이라고 부르며, 흑마법을 구사하는 사제를 보커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크게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같은 사제라고 할지라도 백마법을 쓰면 오운간이라고 했고, 흑마법을 쓰면 보커라고 부른다.
당초 좀비란 부두교에서 극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보커에 의해 부활한다고 한다.
아이티 섬에는 사제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단체가 있었는데, 이 단체는 일원의 안전을 지키고 복지를 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와 중에도 범죄가 발생하면 자체적으로 재판을 했으며, 재판에서 극형을 선고받은 범죄자에 대해서는 '가루의 주술'을 시행했는데, 이것이 바로 좀비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좀비 파우더는 복어 독의 분말
영혼을 뺏긴 사람, 즉 좀비는 자신의 의지가 없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 즉 보커의 통제에 따르게 된다. 가끔씩 좀비가 정신을 차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현상을 본제(bondye, 착한 신)가 영혼을 되돌려 준 것이라고 한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좀비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가루, 즉 좀비 파우더는 나이지리아의 소수민족인 에페크와 카라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서아프리카 사회의 전통적인 형벌의 하나로서 이 가루가 사용됐는데, 흑인들이 서인도제도로 들어오면서 함께 따라 들어온 것.
데이비스는 이 가루의 정체를 복어에서 뽑아낸 테트로도톡신이라고 분석했다. 이것을 상처 부위에 바르면 몸속에 독이 퍼지면서 가사(假死)상태에 빠진다. 가사상태에 빠지면 산소 결핍이 생겨 뇌의 전두엽이 손상되고, 이에 따라 생각이나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독을 희석하는 정도에 따라 약과 시술에 의한 소생이 가능하고, 양이 많으면 죽는다. 죽은 사람을 좀비로 만들 경우 보커는 시체가 썩기 전에 무덤에서 파낸다. 그리고 이름을 여러 번 불러서 일으켜 세운다고 한다. 이때 양 손을 묶어 노예로 팔아넘기며, 혼은 항아리 속에 따로 분리한다고 한다.
범죄자의 가족은 죽은 사람을 좀비로 만들지 않으려고 매장 후 며칠 동안 지키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면 시체에 독약을 입혀 처리하거나 아예 훼손하는 방법도 사용한다고 한다.
좀비는 환각제로 살아있는 인간의 기억과 의지를 빼앗아 노동을 시키기 위한 기술의 희생양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이 외에 마취제를 투여해 일시적인 가사상태를 만든 뒤 죽은 것처럼 보여주고, 마취가 깨면 마치 되살아난 듯 꾸미는 속임수라는 주장도 있다.
좀비를 만났다는 아이티 사람들
미국의 학자 조라 헐스톤은 지난 1936년 아이티에서 좀비를 목격한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좀비의 정체는 펠릭스-맨토가문의 여성인 펠리시아. 그녀는 1909년 병으로 죽었다.
좀비를 처음 목격한 사람은 펠리시아의 남동생. 그는 자신의 누나가 27년 전 모습 그대로 자신 앞에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놀란 그는 좀비가 된 펠리시아에게 말을 걸어보고 여러 가지 질문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마을 사람들도 썩어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전혀 늙지 않은 것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일부 마을 사람들은 펠리시아의 무덤을 판 뒤 관을 열어봤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부두교 사제가 그녀를 좀비로 만들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누가 그녀를 무덤 속에서 꺼냈는지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980년 아이티에서 또 다른 좀비가 발견됐다. 마을을 순찰하던 경찰관이 수상한 여자를 체포했는데, 그녀가 바로 좀비였다는 것. 좀비의 정체는 15년 전에 죽은 나타짓. 경찰관은 이 여자와 어린 시절부터 아는 사이였고, 그녀의 사망신고도 직접 접수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관은 나타짓의 가족들에게 그녀가 돌아왔다고 알렸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가족이 아니라고 부인한 뒤 도망쳤다. 결국 나타짓은 정신병원으로 이송됐고, 몇 년 뒤 진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장례식을 치르던 도중 관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좀비는 죄지은 사람에 대한 죗값(?)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보커가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시체가 되살아날 가망성은 없다. 하지만 아이티에서는 아직까지도 '시장에서 좀비를 봤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떠돈다.
왜 그럴까. 우선 좀비 파우더에 사용되는 것은 치명적인 독을 가진 복어가 아닌 하리센본이라는 가설을 검토해 보자. 하리센본은 식용 복어의 한 종류로 일부 장기만 제거하면 안전하다. 또한 좀비 파우더가 음용이 아닌 피부에 도포하는 가루이기 때문에 테트로도톡신에 의해 가사상태에 빠진다는 주장은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좀비를 형벌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는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공동체가 제공하는 보호와 기본 권리를 빼앗는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감옥처럼 죄인을 물리적으로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공동체 테두리 밖으로 떼어 놓는 행위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좀비를 만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좀비는 목격자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이다. 왜 자기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좀비가 돼 나타난 것일까. 평소에 그리워했던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 보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현실 속에서 '환상'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것은 아닐까.
또한 부두교에서의 좀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착취를 당하는 '억울한'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좀비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대중문화작품이 만들어 놓은 왜곡이라는 얘기다.
서영진 기자 artjuc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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