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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弱志强骨(약지강골)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동양학 교수




미국은 대선 후보를 가리는 긴 레이스를 펼친 끝에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가 윤곽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는 대선 일정의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연일 대선 후보 관련 기사가 넘쳐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 대선 후보의 경선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여당과 야당 후보의 지지율 보도는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되었고 특정인을 후보로 거론하며 왈가왈부하고 있다. 지금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고 대선은 아직 1년 6개월이 남았는데도 대선 논의가 조기 점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정을 5년간 이끌 대통령과 집권당을 정한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의 논의는 중요하다.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특정 분야의 성과 대중적 지명도만으로 후보가 되거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행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해진 절차나 합의된 틀을 갖추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선 후보와 관련된 논의를 벌이게 되면 후보 대상자 개인과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아울러 대선 후보의 조기 점화에 가려 사회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문제를 놓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정치 기사의 지나친 상업화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노자의 말을 읽으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구절도 있지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구절도 있다. “마음을 비우고 배를 가득 채우며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하라!”(허기심虛其心, 실기복實其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이 구절을 읽으면 왜 마음과 배 그리고 뜻과 뼈를 구분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즉 마음도 배와 마찬가지로 채우고, 뜻도 뼈와 마찬가지로 강하게 해야 할 텐데 왜 비우거나 약하게 하라고 할까하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구절만 따로 보면 아무리 위대한 노자라도 해도 실언을 한 셈이다.



문제의 구절을 “하고 싶은 뜻을 내비치지 않으면 민심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는 앞 구절과 겹쳐서 읽으면 “아하,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 있으면 언론이 대상자를 찾아서 인터뷰 기사를 내본다. 이때 출마 여부를 물으면 딱 뿌려지게 대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출마와 불출마의 경계를 밝히지 않고 애매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출마의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이 애매하게 말하면 언론만이 아니라 시민도 “나오겠다는 거야 아닌 거야?”라고 되물으며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유력 후보자가 시민을 볼모로 삼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후보 검증이 되지 않고 후보 혼란만 가중된다. 이것은 언론이 제 노릇을 하지 못하게 하고 국민이 편 가르기의 진창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하고 싶은 욕망에 마음을 가득 채우고 뜻을 강하게 벼리면서 돌봐야 할 배와 뼈를 돌보지 않게 허약하게 만드는 셈이다. 지금 정국은 노자의 말과 정반대되는 강지약골(强志弱骨)의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여당의 경우 총선에서 웬만한 대선 후보가 사라진 상황에 있다. 이렇다 보니 더더욱 대선주자의 후보를 찾거나 되고 싶은 인물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 바람에 한 후보를 두고 논의를 하다가 지칠 때가 되면 새로운 인물을 들고 나온다. 이렇게 1년 6개월을 보내게 되면 역량과 엄정한 검증보다는 마음과 뜻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추측과 희망사항만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 추측을 둘러싸고 색다른 진실 논쟁이 벌어진다. 대선 후보를 검증하는 문화와 제도가 부재한 탓에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제 대선 후보에 나서고 싶은 사람은 마음과 뜻을 밝힐 것이 아니라 배와 뼈를 단단히 하고 적절한 때에 가부를 분명히 밝혀야겠다. 지금 우리는 애매한 뜻과 마음에 따라 춤을 출 때가 아니라 대지에 뿌리를 박은 뼈와 배를 튼튼히 하는 약지강골(弱志强骨)에 힘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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