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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주유소, 돈을 태우다





1923년 6월27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미 해군 기지 152m 상공. 미 육군 항공대 소속 DH-4B 2인승 복엽기의 후방석 조종사가 고무 호스를 기체 아래로 늘어뜨렸다. 15미터 간격으로 뒤따르던 동종 후속기 후방석 조종사는 공중에 날리는 고무 호스를 간신히 손으로 잡아챘다. 순간 선도기가 연료통을 열었다. 사상 최초로 공중 급유가 이뤄진 순간이다.*

최초의 공중급유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1차대전 말기 등장한 DH-4B **는 110갤런의 연료로 3시간 45분을 비행하는 기종. 단 한차례 공중 급유로 75갤런을 공급받은 DH-4B는 6시간 38분을 날았다. 엔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더 날 수도 있었다. 고무된 미국은 두 달여 뒤, 같은 기종으로 새로운 급유 테스트에 나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DH-4B기가 14차례 급유를 받은 끝에 37시간 25분이라는 비행기록을 세웠다.

막상 실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공중급유기가 등장하지 않았다. 우선 장거리 전략 폭격이나 공중전이 많지 않았다. 제트시대가 개막되기 전까지는 보유항공기의 작전반경을 늘리기보다 새로 생산하는 게 값이 쌌다. 주요 참전국들이 1939~1945년 중 생산한 항공기는 84만4,102대에 이른다. 연합국이든 주축국이든 쏟아져 나오는 항공기를 갖고 단순 물량전에 매달린 셈이다.

공중급유기가 실전에 처음 등장한 무대는 한국전쟁. 1952년 5월 황해도 사리원을 공격하기 위해 일본 이타즈케(板付) 기지에서 출격한 F-84D 전폭기 12대가 KB-29 들로부터 공중급유를 받았다. 제트시대 개막과 가격 급등으로 전폭기 한대가 맡아야 할 임무가 많아지면서 공중급유 수요도 늘어났다. 1950년대 미국은 B-29폭격기를 개조한 공중급유기만 282대를 운용했다.

냉전도 공중급유기 시대를 불렀다. 유사시 보복수단으로 핵폭탄 탑재 전략폭격기를 24시간 공중에 띄워놓으려면 대량의 공중급유기가 필요했다. 냉전 체제의 종식은 공중급유기 수요를 경감시켰을까. 그 반대다. 전면적 핵전쟁의 위협은 줄어든 대신 부단하게 발생하는 국지전에서 공중급유기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장점이 많고 효용성이 크다.

체공시간 연장은 물론 최대이륙중량이라는 제한을 극복할 수도 있다. 연료통을 채우면 폭탄을 적게 실어야 이륙이 가능하지만 공중급유기가 있다면 무장을 만재한 후 이륙해도 공중에서 연료를 보급 받으면 그만이다. 세계 35개국이 공중급유기를 운영하거나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속거리 연장과 무장탑재량 증대. 월남전에서는 피격 당해 연료가 없어진 전투기를 아군 기지까지 데려오는 역할을 급유기가 맡기도 했다.

최근 공중급유기의 동향은 다목적성이 중시되고 있다. 공중급유기 한 대가 여객 운송과 연료 보급, 물자 수송을 동시에 해내는 다기능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 공군이 4대를 도입(2018년 1대, 2019년 3대 전력화)할 에어버스사의 A330 MRTT(Multi Role Tanker Transport)는 대표적인 다목적 급유·수송기다. 외국에서 대형 재해가 발생할 경우 구호물자를 현장에 보내고 우리 교민들을 신속하게 데리고 오는 데에 안성맞춤이다.



문제는 돈. 미국 보잉사와 수주 경쟁을 의식해 한국에게는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지만 4대를 전력화하는 비용은 1조4,881억원. 논의가 시작(1993년)된지 오래인데다 사업도 몇 차례 지연됐기에 인플레이션 지수만큼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93년전 오늘 처음으로 공중급유를 시도한 DH-4B 의 가격은 미화 1만1,250달러였다.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최신급유기는 최초의 급유기에 비해 2만7,400배쯤 비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경제력과 행복지수가 1923년보다 2만배 이상 나아졌는지. 미국인들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같은 기간 중에 7,747달러에서 5만820달러로 6.56배 증가하는데 그쳤다. 소득 증가세보다 수천배 높은 무기 가격 상승이라니! 무기란 과연 무엇인가. 무기가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나. 아니면 인간이 무기를 위해 존재하나.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민간의 공중급유는 이보다 이전에 등장했다. 호스를 연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후방석 조종사가 연료통을 들고 비행기를 옮겨 타는 묘기를 선보였다. 미 육군 항공대의 실험 이전까지 민간의 공중급유는 흥행을 위한 쇼(Show) 수준에 머물렀다. 오는 날에도 민간 공중 급유는 없다. 굳이 비싸게 하늘에서 주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949년 공중급유를 받아 94시간 1분의 무착륙 세계일주 기록을 남긴 미국의 ‘럭키 레이디Ⅱ’가 민간 항공기였다고 소개하는 자료도 있지만 낭설이다. ‘럭키 레이디Ⅱ’란 이름을 지닌 항공기란 미국 공군의 B-50A 슈퍼 포트레스 전략 폭격기였다. ‘럭키 레이디Ⅱ’가 세계를 일주하는 동안 4차례에 걸쳐 연료를 공급한 공중급유기 역시 2차세계대전에서 맹위를 떨친 B-29폭격기를 급유기로 개조한 KB-29M 기종이었다.

** DH-4B 기종은 영국 에어코(AirCo)사 수석 디자이너 하빌랜드가 설계해 1918년부터 배치한 경폭격기. 총 6,295대 가운데 4,846대가 보잉사를 비롯한 4개 미국 항공사에 의해 제작됐다. 저속이었으나 안정성이 높아 미국에서는 1930년대 중반까지 우편용 항공기로 쓰였다.

*** 미국이 30만3,713대로 가장 많고, 소련이 15만8,218대, 영국 13만1,549대,독일이 11만9,871대, 일본 7만6,320대, 이탈리아 1만8,000대, 캐나다 1만6,431대 순이다. 약 세배의 항공 세력 우위를 갖고 있던 연합국으로서는 굳이 공중급유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주축국도 제공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격추 위험이 큰 급유기 생산을 계획할 여유 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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