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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시진핑의 진주목걸이

홍병문 베이징특파원





오는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 분쟁 판결이 내려진다. 남중국해의 영유권을 둘러싼 이번 판결에 대해 피고 격인 중국은 이미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이 판결 결과를 허투루 보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미국과 일본은 이 판결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을 전면 압박할 태세다. 중국과 비슷한 이슈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베트남도 같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정작 소송을 낸 당사자 필리핀은 판결을 앞두고 한 발 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신임 필리핀 대통령은 9월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 정부 때 필리핀은 중국 선박이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에 포함된 스카버러암초(중국명 황옌다오)에서 철수를 거부하자 이 문제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제소하며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과의 갈등을 봉합하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중국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취임 후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미묘한 발언까지 했다. 시진핑 정부도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PCA 소송을 거둬주면 경제적 보상을 해주겠다고 은밀한 유혹을 펼치고 있다.

PCA 판결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은 ‘그레이스완’에 가깝다.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Brexit)에 비하면 이번 PCA 판결은 파급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 필리핀으로서도 2013년 PCA에 이번 사건을 제기했을 때 파장의 무게가 어느 정도 될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상황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판결이 나온다 해도 남중국해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분쟁과 갈등 양상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국의 태도가 너무나 강경하다. 아예 판결 결과는 무시하겠다는 태도다. 시 주석은 이달 1일 중국 공산당창립 95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 양보할 것이라고 절대 기대하지 말라”며 국제 사회에 엄포를 놓았다. 시 주석이 거론한 핵심이익이란 이른바 ‘진주목걸이’로 불리는 남중국해-중동 해양 항로 확보 전략을 말한다. 아프리카 지부티, 파키스탄 과다르, 몰디브, 스리랑카 콜롬보, 남중국해 섬 등 이들 지역에서 확보한 거점 항구와 해군 기지들을 연결하면 진주목걸이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2005년 미국 컨설팅사 부즈앨런해밀턴이 미 국방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표현한 데는 그만큼 절박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는 시 주석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해상 실크로드 구축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무역항로이자 엄청난 천연자원이 묻혀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자원 보고이다. 남중국해에서 시작된 진주목걸이 루트는 몰디브를 거쳐 인도를 감싸고 돌면서 중동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어진다. 중동산 석유수송로이자 최근 긴장 관계인 인도를 압박할 수 있는 전략적 루트의 첫 단추다.

첨예한 이해가 걸린 이 분쟁은 우리 정부로서는 참으로 대처하기 힘든 사안이다. 판결 결과가 나온다면 미국은 우리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답은 사실 명확하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중국은 우리로서는 경제뿐 아니라 안보 분야 등 여러 가지 사안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쉽지 않은 국가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이번 PCA 판결 이후 중국이 이와 비슷한 사례로 이어도를 거론하며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근 중국과 한국 사이의 이슈가 모두 그렇듯 이번 PCA 판결도 우리로서는 동북아 장기 전략, 그리고 미중과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홍병문 베이징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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