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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5 전투기, 44년 하늘을 날다





1972년 7월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드워드 공군기지. 동체와 주익, 수평·수직꼬리날개에 부분적으로 붉은색을 칠한 YF-15 테스트기가 날아올랐다. F-15 이글 시리즈 전투기의 원형 기체가 초도 비행한 순간이다. 첫 테스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제작사인 맥도널 더글러스사(1997년, 미화 130억 달러로 보잉사에 피인수)는 개발연구용 18대와 실용평가용 복좌기 2대 등 20대를 더 제작해 각종 실험을 치렀다.*

미국이 신형 전투기 개발에 나선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째 공군과 해군 공용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F-111 전폭기 사업이 난관을 만났다. 공군용 1,200대, 해군용 500대를 생산할 계획이었으나 공중전에서 쓰기는 너무도 크고 무거워 기동성이 떨어졌다. 공군용이 36톤, 해군용이 31톤에 달하는 F-111의 둔중함에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새로운 제공용 전투기 개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둘째 요인은 베트남전쟁에서 예상 밖의 일격을 당했다는 점. 크고 강력한 추진력에 첨단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미국제 전투기가 작고 추력도 약한 북베트남(월맹) 전투기에 밀리는 일이 잦았다. 한국전쟁에서 13대 1이었던 격추교환비율이 베트남전에서는 한때 1.5대 1까지 떨어졌다. 신형 전투기 요구도 더욱 탄력을 받았다.

세 번째는 소련 신예 전투기가 준 충격. 1967년 7월 모스크바 인근 도모데도프 공항에서 열린 에어쇼를 통해 소련은 미그-23 플로거, 미그-25 폭스베트, SU-15 등 신형전투기 3종을 한꺼번에 공개해 미국에 강한 쇼크를 안겼다. 미국이 요구한 신형 전투기의 조건은 경량의 기체에 대출력을 가진 엔진 장착, 신형 미사일 탑재. 시험비행을 통해 YF-15는 이런 기준을 충족시켰다.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 비싸지만 가볍고 강한 티타늄합금을 대거 사용한 덕분이다. YF-15는 수식 상승 시험비행에서 세계 최초로 음속을 돌파하고 강력한 레이더와 신형 스페로우 미사일을 달았다.

성능에 만족한 미국은 1973년부터 1차 양산 30대를 시작으로 모두 729대를 생산,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까지는 미 공군도, 맥도널 더글러스도 몰랐다. F-15 이글 시리즈가 처녀비행 이후 44년 넘게 일급 현역 전투기로 장수할 것이라는 사실을. 장수 전투기 F-15의 수명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미 공군은 오는 2040년대까지 F-15E 기종을 운용할 계획이다. 성능이 뛰어난데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F-15E는 미 공군 전투기로는 처음으로 반 백년 이상 일선을 지키는 전투기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오랫동안 현역에 머물면서 생산물량도 계획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났다. 2016년 5월 현재 실제 생산 대수는 1,619대 이상.*** 보잉사에 따르면 F-15E의 생산라인 역시 2026년까지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물량에**** 카타르도 신규 주문을 저울질하고 있다. F-35를 도입할 이스라엘 역시 F-15I 1개 대대분을 추가 주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장거리 타격용 전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F-15E의 생산 라인이 유지된다는 점은 한국으로서는 반길만한 일이다. 두 번에 걸쳐 F-15K 61대를 도입(1대는 사고로 상실해 60대 운용)한 마당에 조금이라도 원활한 부품 공급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비 부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벌써부터 ‘동류전환’에***** 나서야 하는 처지에서 생산 라인이 살아 있으면 보다 빠르고 싸게 부품 공급이 가능하다.

F-15E 전투기가 명맥과 명성을 유지해나가는 데는 한국이 기여한 부분이 결코 적지 않다. F-15K 1차분 40대를 도입하는 FX(차세대 전투기사업)이 진행되던 지난 2002년 이전까지만 해도 F-15 시리즈를 도입한 나라는 미국 이외에 일본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뿐이었다. 생산 초기에는 미국이 해외 판매를 꺼렸고 가격도 비쌌던 까닭이다. 불과 몇몇 부유한 국가만이 F-15 시리즈를 운용하고 추가 주문이 없어 생산라인 유지가 우려되던 시기에 한국 공군이 ‘구닥다리 전투기를 수입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F-15K 도입을 결정한 이래, 줄줄이 해외 주문이 터졌다. 결과론이지만 한국의 구매는 F-15E 회생의 전환점이었던 셈이다.

한국공군이 완제품을 들여온 F-15E의 한국형인 F-15K는 도입 당시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샀다. 최초의 업그레이드형 해외판매였기 때문이다. 미 공군용보다 성능이 떨어지거나 동등한 기종을 해외에 판매하던 이전과 달리 한국 공군용은 모든 면에서 세계최강의 F-15E 기종이었다. 프랑스제 라팔과 러시아제 유럽연합의 유로 파이터 타이푼, 러시아제 SU-35와 경합을 내세운 경쟁입찰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도 한국공군의 F-15K는 성능이 뛰어난 편에 들지만 더 이상 동급 중 세계최강은 아니다. 한국의 차기전투기 입찰 과정을 그대로 적용한 끝에 F-15SG라는 이름으로 F-15E를 도입한 싱가포르는 전자식 에이서 레이더 등 첨단 장치를 달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도입 중인 F-15SA는 싱가포르의 기종보다도 더욱 진일보한 기체로, 세계최강의 F-15E로 평가된다.

주목할만한 대목은 일본이 F-15로 최강의 대열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 외신을 종합하면 항공자위대는 190여대의 F-15J를 다양한 형식으로 개량할 계획이다. 최신형 에이서 레이더 탑재는 물론 기골을 보강하고 대지·대함 공격 능력에 탄도탄 요격 능력까지 갖출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이 한때 F-15E로 인공위성 격추 미사일 발사 실험까지 진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탄도탄 요격 미사일 탑재는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다만 F-15J를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공대공미사일의 운반수단으로 삼으려는 일본의 의도에 미국이 적극 호응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F-15의 원형기가 처음 하늘을 난지 44주년. 우리의 현실을 생각한다. 세계 각국의 F-15E는 개량과 진화를 거듭하는 반면 한국 공군의 F-15K는 도입 당시 그대로다. 공군은 언젠가는 개량이 필요하다는 방향만 잡고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전무한 편이다. F-15K를 개량해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잡겠다는 창조적 발상을 우리는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F-15 시리즈의 진화된 기체가 2040년대까지 기약한다는 데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F-15가 오랜 세월 동안 통할 수 있던 이유는 기체가 튼튼하고 확장성이 뛰어난 데다 끊임없는 개량 의지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2025년 첫 비행을 목표로 개발 중인 한국형 전투기(KF-X)도 롱런하며 영공을 수호하고 수출까지 넘볼 수 있을까. 어려워 보인다. 상대적으로 작은 기체에 개량형을 보다는 원형을 택한 엔진 선정, 내부 무장창도 빈약한 빡빡한 내부 공간이 KF-X의 도약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앞선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미국 전투기 개발의 특징은 테스트기가 많다는 점이다. 그만큼 예산이 풍부하다는 얘기로 한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한국우주항공산업의 T-50 테스트기는 5대, 개발 초기에 들어선 한국형 전투기(KF-X)는 6대의 시제기를 날릴 계획이다. 미국은 초도 시험기를 일찌감치 관광객 관람용(텍사스주 샌 안토니오)으로 돌렸다. 당시 테스트기 20대와 기령이 오래된 34대 등 52대가 미국(44대)과 영국·독일·이스라엘·네덜란드·일본 등지에서 전시되고 있다.

** 한 물 갔다는 평가와 달리 F-15E는 구식이 아니다. 첫 등장시기가 1988년으로 이전의 F-15 시리즈와는 차원이 다른 전투기다. 잠시도 쉬지 않는 개량 덕분에 성능 여전히 세계 최강급. 스텔스 기능이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속도와 행동반경, 무장 장착량, 레이더와 항전 장비 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다. 한국 공군의 차기전투기로 선정된 미국 록히드 마틴사의 F-35도 레F-15E 보다 스텔스와 레이더 성능에서 앞설 뿐이다.

미국은 현존 최강의 전투기지만 가격이 비싸 195대선에 구입을 중단할 F-22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종으로 F-15E를 꼽고 있다. F-35 전투기도 F-16 전투기와 A-10 선더볼트 근접지원용 공격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13톤에 달하는 무장 탑재량을 지닌 F-15E를 대신할 기종이 미 공군에는 없다. 미 해군이 운용하는 F/A-18E/F 슈퍼호넷 정도가 F-15E에 비견될 수 있는 정도다.

*** F-15E를 제외한 F-15 시리즈의 생산량이 1,198대. 미국에서 제작된 F-15A/B/C/D가 975대,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면허생산한 F-15CJ/DJ가 213대에 이른다.(일본은 당초 100대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점차 물량을 늘렸다) F-15E는 미국 공군용이 237대, 이스라엘용 F-15I 25대, 사우디아라비아용 F-15S가 72대, 한국 공군용인 F-15K가 61대, 싱가포르용 F-15SG가 24대에 보잉사가 부분적 스텔스 기능을 접목해 신규개발한 F-15SA(사일런트 이글) 1대 등이다.

생산량이 계획보다 많다는 점은 그만큼 성능이 뛰어나다는 얘기다. 미국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의 F-15 이글은 실제 공중전에서 단 한대의 손실도 입지 않고 적기 104대를 떨어뜨렸다. 다만 훈련 중에 격추 당한 적은 있다. 1995년 11월22일,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 F-15J기가 실수로 발사한 공대공 미사일에 동료의 F-15J가 격추된 것. 조종사는 피격 직전에 탈출했지만 기체는 산산조각났다.

미 공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0년 3월19일 사고가 발생했어도 결과는 딴판이었다. 동료 조종사가 실수로 쏜 공대공미사일에 피격됐으나 비상 착륙에 성공한 것. 피격 전투기는 대규모 수리를 거쳐 비행대대에 복귀했다.

이스라엘에서는 F-15D 복좌형 전투기가 극적인 생환 기록을 세웠다. ‘F-15K 슬램 이글, 동북아 최강 다목적 전투기, 승리의 날개를 펴다(안승범·양욱 공저, 플래닛 미디어, 2007년)에 따르면 1981년 5월1일, A-4N 스카이호크 경전투기와 모의공중전에서 실수로 두 기체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스카이호크 조종사는 기체가 폭발하기 직전에 비상탈출에 성공했는데, 문제는 F-15D. 오른쪽 주날개를 완전히 상실했다. 왼쪽 날개로만 비행하며 필사적으로 균형을 유지한 이 기체의 조종사 지비 네다비 대위는 양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상착륙 속도의 두 배에 가까운 시속 260 노트로 착륙을 강행, 기체를 살렸다. 이 기체는 불과 두 달 만에 수리를 마치고 정상 비행에 복귀했다고 한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F-15E에 에이서 레이더와 최첨단 항전장비를 장착한 F-15SA(Saudi Advanced)를 발주하고 기존에 운용하는 68대의 F-15S까지 F-15SA 사양으로 개량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이 끝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국가 가운데 누구도 넘을 수 없는 공군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동류전환은 같은 기종의 부품을 빼 쓰는 수급 방식. 멀쩡한 전투기가 부품 공급용으로 전락해 전력지수의 급락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F-15E도 동류전환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지만 예산 문제 때문이다. 전투기 부품은 선주문이 대부분인데 미국 연방정부의 시퀘스트(예산 감축) 탓에 부품 관련 예산이 깎이면 미 공군마저 동류전환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현대적 공군의 운용은 결국 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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