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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군자방미연(君子防未然)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군자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방비한다

잇단 지진에 불안한 국민

원전 안전성 우려도 커져

정부 "괜찮다" 수수방관 말고

재난 예방·대처능력 길러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지난 9월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래로 작은 규모의 여진이 400회를 넘기고 있다. TV 화면을 보면 건물이 금 가거나 붕괴되고 한옥의 기와가 파손되고 첨성대 등의 유서 깊은 문화재도 피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진이 천년 고도 경주를 흔들고 간 자취는 과거형이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우려를 낳고 있다. 아울러 서울 지역에서도 지진을 감지했다고 하니 이번 지진은 어느 한 지역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지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대규모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국민은 유무형의 피해를 입게 된다. 이번 지진의 경우 인명 피해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땅이 흔들리는 현상은 안전하다고 믿고 있는 생활 터전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준다. 아울러 사람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지진을 막을 수 없다. 아울러 이번 지진처럼 한 차례 발생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400차례 여진이 발생하게 되면 불안은 더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피해 지역 주민의 심리적 불안이 공포로 이어질 수 있지만 다른 지역의 국민들은 그 정서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피해 지역의 주민은 피해만 입는 것이 아니라 고립감마저 느낄 수가 있다.

자연재해가 발생할수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중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부 기구와 지방자치단체 어느 하나 9월12일의 지진 발생과 여진 진행 과정에서 찬사를 받은 곳이 없다. 찬사보다 늑장 대응과 부실 관리로 국민과 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지진이 발생하고 난 뒤 재난 발생 문자가 뒤늦게 발송되고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먹통이 되고 지진이 발생한 뒤 주민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가 경주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피해 복구 비용을 지원하고 전문가를 파견해 심리 상담을 하는 등 뒤늦게 수습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대형 사건 사고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신속하고 안전한 대응에 대한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숙하고 우왕좌왕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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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은 일찍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라면 사전 예방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시를 지었다. “군자는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방비하고 의심받을 곳에 서지 않는다. 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관을 고쳐 쓰지 않는다(군자방미연·君子防未然, 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 미연의 방비를 강조하는 것은 지도자가 사태 전개 과정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역량을 높이 사는 것이다. 지도자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고 큰일이 일어나면 우왕좌왕하고 책임을 떠넘기면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경주 지진은 지역 시민의 물질적 피해와 심리적 피해만이 아니라 신고리원전의 안전에 대한 우려도 낳고 있다. 신설될 예정인 신고리원전 5·6기가 양산단층과 울산단층처럼 지진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이번 지진은 지금의 피해만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재난을 가져올지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거나 훗날 다른 정부에서 책임질 일이라며 수수방관한다면 ‘군자방미연’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실제로 일이 벌어지면 또다시 우왕좌왕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전 예방도 사후 관리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전 방조의 죄를 짓게 된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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