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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도의 톡톡 생활과학]장기 망가지면 돼지 장기로...장기 이식 새시대 열린다

3차원 바이오 프린팅 기술로 만든 인공 코와 인공 귀. 장기 이식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인공 장기가 희망이 되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서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로 옮겨지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증가 등으로 장기 이식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장기 기증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대기 환자는 2만 7,900여명으로 평균 대기 시간은 5년이다. 미국에서는 이식 대기자가 12만명을 넘고 매일 22명이 이식을 받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 줄기세포, 3D 바이오 프린팅이 망가진 장기를 대체하는 기술로 주목 받고 있다.

먼저 이종(異種) 장기 이식이 환자의 생명을 유지 시키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종 간 장기이식은 동물의 장기나 동물에서 키운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방법이다. 1960년대부터 의과학자들은 동물의 장기를 활용할 방법을 모색해 왔다. 크기와 기능면에서 사람 장기를 대체하기에 적합한 돼지 장기가 이종 장기로 선택됐다. 실제 원숭이 등을 대상으로 이식 실험도 진행됐다. 하지만 면역 거부 반응이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면역계가 이식한 장기를 체내에 침투한 세균과 바이러스처럼 인식해 공격하는 것이다. 면역 거부 반응은 초급성, 급성, 혈관성, 만성 단계로 발생한다. 초급성 거부반응은 이식 후 수분에서 수시간 사이에 일어나는 데 면역계가 돼지 장기 표면에 있는 ‘알파갈(α-Gal)’이란 단백질을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알파갈’은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제거해도 혈액 응고나 또 다른 면역 거부반응이 길게는 수십 년간 이어진다.

국립축산과학원이 만든 면역 결핍 형질 전환 돼지 ‘사랑이’. 초급성,, 급성, 혈관성 거부 반응을 없앤 이 돼지의 장기를 2018년께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지난 7월 국내 최초로 장기 이식 과정에서 초급성·급성·혈관성 거부 반응이 없는 형질전환 돼지 ‘사랑이’를 탄생시켰다. 면역 거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단계별로 관련된 유전자를 빼 ‘면역 결핍’ 돼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태어난 돼지를 교배하거나 추가로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번에 탄생한 사랑이는 초급성·급성 거부반응을 조절한 돼지 ‘믿음이’와 급성·혈관성 거부반응을 억제한 돼지 ‘소망이’를 교배해서 태어났다. 교배하는 방식은 안정적이지만 유전자를 조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 단점이다. 수십 년간 연구에도 면역 반응을 조절한 돼지는 전 세계에 약 20여 종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이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크리스퍼( RNA와 단백질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를 자르는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기존에 돼지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수년이 걸렸지만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시간을 1년 내외로 줄일 수 있다. 한 번에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동시에 손볼 수도 있다. 국립축산과학원측은 ‘사랑이’에게도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해 면역 거부반응 조절 등 추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축산과학원은 “2018년께 이 돼지의 심장이나 췌도, 각막을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생명공학 벤처기업인 엠젠플러스는 안규리 교수가 주도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구팀과 형질전환 복제돼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엠젠은 안규리 교수 연구팀에 초급성 거부 반응이 제어된 형질전환 복제돼지 12마리를 공급하게 됐다. 이 돼지는 이종장기 이식에 관한 임상연구에 사용될 예정이다.

각국 정부는 돼지의 장기 이식을 허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돼지 각막 사용을 허용하면서 지금까지 100여 명이 시력을 되찾았다. 이에 질세라 일본도 동물 장기와 세포의 인간 이식을 금지해 온 관련법을 개정해 ‘이종 장기이식’에 속도를 낼 방침입니다. 일본 연구팀은 몇 년 이내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생산하는 돼지 세포를 이식할 계획이다. 미 FDA도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 환자에 한 해 이종 장기 이식을 예외적으로 허용하지만, 임상 실험을 통해 안정성이 확보되는 대로 이종 장기이식을 확대할 태세이다. 국내에서도 이종 장기 이식 관련 법령들이 잇따라 개정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전자 치료에 관한 요건을 완화하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된 데 이어 동물의 세포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케 하는 법률안도 국회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상태다.

장기이식에서 또 주목받는 것이 바로 줄기세포다.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로 만든 맞춤형 장기는 거부 반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줄기세포는 뼈·신경·혈관·근육·장기를 만드는 ‘모세포’다. 크게 배아, 성체, 역분화(유도 만능) 줄기세포로 나뉜다. 성체 줄기세포는 특정 조직의 세포로만 분화하지만, 피부세포 등 체세포에 바이러스 등을 넣어 세포의 어린 시절로 되돌린 역분화 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인체의 어느 장기로도 발전할 가능성을 갖게 된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해 연구 목적의 ‘유사 장기(오가노이드)’도 제작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원이 실험실에서 배양한 ‘미니 뇌’의 단면. 지름 4mm정도로 작은 콩알 크기지만 해마·피질 등 인간의 뇌와 비슷한 구조를 갖췄다.




2013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원은 성인의 피부세포로 역분화 줄기세포(iPS)를 만든 다음, 적절한 화학신호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줄기세포가 분화하는 경로를 조절해 인간 대뇌와 비슷한 신경 세포 조직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이 뇌를 특별한 배양 조건에서 2개월 만에 최대 4㎜로 키웠다. 보통 완두콩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이 ‘미니 뇌’는 해마·피질 등 인간의 뇌와 비슷한 구조를 갖췄고 신경 세포가 전기적 신호까지 주고 받을 만큼 기능이 유사했다. 줄기세포로 뇌를 만들면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뇌신경질환을 연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듀크대-싱가포르의대 유전체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중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뇌도 실험용 쥐 뇌 크기의 4분의 1 정도로 아주 작았다.

지난해 7월 미국 UC버클리 연구팀 등은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해 스스로 뛰는 약 0.5㎜ 크기의 3차원 심장을 만들었다. 연구팀은 인간의 줄기세포에 심장 세포로 분화하는 데 필요한 유전인자와 환경을 조성해 주는 방법으로 ‘미니 심장’을 만들었다. 이외에도 현재 간·갑상선·췌장 등 다양한 ‘미니 장기’가 개발돼 질병 연구와 약물 반응 검사 등에 활용되고 있다.

환자 자신의 줄기 세포를 이용한 맞춤형 장기 이식은 거부 반응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줄기 세포를 심장 근육 세포나 간세포로 유도 분화한 후 증식시킨다고 해당 장기가 되진 않는다는 데 있다. 3D바이오 프린팅은 신체 일부나 장기를 만드는 데 적합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은 살아 있는 세포가 포함된 젤리 성분의 ‘바이오 잉크’를 적층 방식으로 쌓아 올려 살아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젤리는 인체 온도(36.5도)에서 녹는 하이드로겔로,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한다. 높은 온도에서 세포가 죽는 것을 방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일단 원하는 모양을 만든 다음 세포를 증식 분화시켜 3차원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 바이오 회사인 오가노보가 3차원 바이오 프린터로 만든 3D 간. 실제 간과 유사해 독성 실험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 오가노보(Organovo)는 2013년 수만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바이오 잉크를 사용해 1㎝도 안 되는 크기의 인공 간을 제작했다. 이 ‘인공 간’은 42일간 실제 세포처럼 살아 있었다. 오가노보는 2014년 11월부터 3D 인공 간 조직을 판매하고 있다. 간 조직을 실제 간과 유사한 3차원으로 만들 경우 독성 시험 결과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지난해에는 3D ‘인공 신장’ 조직을 바이오프린팅으로 만드는 데 성공해 이르면 올해 상용화할 계획이다.

올해 초 미국 웨이크 포레스트의대 연구팀은 3D 바이오 프린팅을 이용해 만든 인공 귀를 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토끼의 연골세포와 말랑말랑한 하이드로겔로 바이오 잉크를 만들었다. 여기에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섞어 강도를 높여 귀 모양을 만들었다. 이식한 인공 귀의 연골 세포는 2개월 후까지 살아 있었고, 혈관이 연결되는 등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김정범 UNIST 생명과학부 교수팀은 최근 환자 이식용 척수를 바이오프린팅으로 찍어 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재생이 안 된다. 김 교수팀은 환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척수의 성분이 되는 신경 세포와 성상세포를 맞춤형으로 만들어 내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산업기술대 사업단은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기반으로 체내에서 분해되는 연골조직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간 얼굴뼈 등에 손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신체 다른 조직에서 뼈를 추출해 손상된 결손 부위에 맞게 깎은 후 이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수술시간도 8시간 이상 소요됐다. 3D프린팅 기술을 적용해 환자 맞춤형으로 결손 부위에 완벽히 일치하는 보형물을 만들어 삽입하면, 뼈를 추출할 필요가 없어 환자의 고통도 줄여주고 주변 조직과 융합되어 자가 조직으로 재생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술시간도 2시간 이내로 줄어든다.

가까운 미래에 혈관이나 간단한 연골, 뼈, 피부 조직은 실용화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만으로도 의료 분야에 일대 혁신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3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바탕으로 인공장기가 개발돼,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한 혁신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문병도기자 d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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