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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칼럼] 김영란법과 공유지의 비극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인식·고비용 구조 바꿀 기회

‘줄어들 비용, 어디로’ 고민해야

선순환 유도정책 늦어지면

‘두 개의 비극’이 겹칠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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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땅이 가장 먼저 망가진다. 사람들은 주인 없는 돈부터 쓰기 마련이다. 전자는 개릿 하딘이 역설한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에 나오는 말이다. 후자는 우리 사회의 현상이다. 둘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비용 문제를 다루고 지속 성장을 고민한다. ‘공유지의 비극’과 우리 사회의 현실은 닮은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닮았을까. ‘공유지의 비극’은 종종 경제학자로 잘못 소개되는 미국의 생태환경학자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지에 기고한 논문의 제목으로 처음 알려졌다. 내용은 간단하다. ‘임자 없는 목초지가 있다. 목동들은 많은 소를 풀려고 경쟁한다. 공유지는 곧 수용 능력을 초과해 오염되고 황폐해진다’는 게 골자다. 개개인의 이익 추구가 전체의 몰락을 야기할 수 있으니 자원 관리를 강화하자는 얘기였다.

경제학자들은 ‘공유지의 비극’을 변형시켰다. ‘렌터카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 공기업을 매각하고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대를 풍미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한걸음 더 나갔다. ‘개별 기업의 권리, 사유재산권의 철저한 보장’이 없는 한 ‘공유지의 비극’이 불가피하다며 무한경쟁의 시대를 만드는 도구로 써먹었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는 타격 받았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이제 우리 사회로 눈을 돌리자. 우리 내부에 ‘공유지’가 널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중에서 접대비에 대해 한국만큼 관대한 나라도 없다. 법인세법은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기밀비로 사용하도록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정부나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용도를 묻지 않는 공직자 판공비의 천국이다. 한국인들은 지금까지 그 돈으로 밥과 술을 먹고, 골프 치고 선물 사는 데 썼다.

접대비나 판공비가 남은 경우는 거의 없다. 늘 모자란다. 당연하다. 판공비나 접대비는 조직 내의 ‘공유지’였으니까. 가장 먼저 황폐화(소진)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골프장과 한정식·유흥주점의 영업이 타격 받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딘의 시각으로 보자면 공유지의 황폐화 속도(접대비 사용)가 줄어든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이 발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었음은 불문가지다.



한국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남는 접대비 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근 접한 고위직 인사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김영란법을 제대로 지키면 법인카드 한도의 절반조차 사용하기 어려울 같다.’ 쓰지 못해 남겨진 금액은 사회 전체적으로 결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기업의 연구 및 개발(R&D) 투자나 사회공헌을 늘리든, 내부유보로 쌓든 종업원 급여 인상이나 복지 후생 증진에 활용하든 방향성을 찾아야 할 때다. 잘만 활용한다면 김영란법은 오히려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유흥과 향락 부문이 과도하게 발달된 서비스 산업의 기형적 구조를 고치면서 생산 현장의 인력난 해소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선순환의 환류 시스템이 작동되기까지 걸릴 시간과 고통을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이런 것들이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짜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행 일주일이 지났건만 국민권익위원회의 유권해석도 모호하기 그지없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도 내놓았다. 무책임하다. 법 중에 법원의 판단에 따르지 않는 법이 어디 있나. 김영란법을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행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혼란 정리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책임 행정에 나설 때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공직 사회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6개월 정도 지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며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보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설 필요가 없다는 생각들이 합쳐지면 그 결과는 뻔하다. 비극. 공유지의 비극과 김영란법의 비극이 합쳐진 비극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인식과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비극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다.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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