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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게이트] 강제 모금·CEO교체 압력에 기업 골병...'정치경영 독버섯' 없애야

■또 모습 드러난 정치권력의 민낯

적자로 법인세도 내기 힘든데

울며겨자먹기로 기부금 등 제공

재계 "후진국병 되풀이에 허탈"

이사회 중심 경영문화 정착 등

정치권 개입 막는 제도 필요

"기업 스스로 반성해야" 지적도





“정권마다 돈을 걷는 것도 모자라 최고경영자(CEO)를 맘대로 바꾸고 회사 명운까지 갈랐다는 말이 나오니. 사기업이 언제까지 정부에 예속돼야 하는 건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게이트’로 또다시 정치권력이 사기업을 관리하는 이른바 ‘정치경영’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권력이 기업을 압박해 돈을 뜯고 심지어 경영인까지 갈아치우는 모습이 확인되면서 ‘3류 기업, 4류 정치’라는 고질적인 후진국병이 다시 반복된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적 기업 구조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차제에 정경유착과 이에 따른 ‘정치 경영’의 독버섯을 걷어낼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제 모금에 경영자 교체까지…‘4류 정치’가 만든 ‘정치경영’=최순실 게이트는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정치경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줬다. 실제로 최순실 게이트와 직접 연관된 미르·K스포츠 두 재단에는 총 53개 기업이 많게는 200억원에서 적게는 3억원의 출연금을 냈다. 기업 53곳 중 4분의1인 12개사는 적자로 법인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4,500억원대의 적자에도 4억원을 냈고 대주주인 두산 역시 7억원을 출연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4,7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년 연속 법인세를 내지 못했지만 미르·K스포츠재단에 10억원의 출연금을 건넸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낸 것이라고 하지만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검찰 등 사정기관을 등에 업은 정치권력의 요구를 그냥 넘길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강제모금은 결국 인사권과 기업의 존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말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5월 평창동계올림픽 추진위원장에서 물러난 이유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금액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조 회장은 3일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기사에 나온 것이 90% 맞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하자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간 것도 최순실씨의 입김 때문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조 회장이 미르재단에 다른 기업들보다 적은 액수를 출연해 최씨의 눈밖에 났고 이에 따라 한진해운이 당초 예상과 달리 법정관리라는 파국을 맞았다는 주장이다. 한진해운은 물동량 기준 세계 7위, 현대상선은 17위권 선사였다. 또 한진해운은 독일·일본·대만 해운사들과 ‘디 얼라이언스’라는 이름의 해운동맹 가입을 완료하는 등 현대상선보다 경쟁력이 더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승환 한진해운 육상노조위원장은 “한진해운이 좌초하게 된 배경 뒤에도 보이지 않는 손의 모종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권력이 대기업 총수의 경영까지 간섭했다는 정황까지 확인됐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2014년 돌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 청와대의 압박 때문이었다는 것. 2014년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행사에 가수 싸이가 등장하면서 국내외 언론이 한국의 대표 문화기업인 CJ그룹의 이 부회장과 싸이를 집중 보도했다. 이후 박 대통령이 들러리를 선 것 같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고 청와대 수석이 CJ 고위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회장의 퇴진을 종용했다는 얘기다.

민영화한 기업을 정부 지분이 들어간 공기업 다루듯 주무르는 것도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의 KT에 이어 이번에는 포스코가 타깃이 됐다. 안종범 전 대통령 정책조정수석이 권오준 포스코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 협조를 요구하고 기업에 필요하지 않은 스포츠단 설립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문화계 황태자’로 군림한 차은택씨가 송성각(58)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통해 포스코 계열 광고사인 포레카를 인수한 중소 광고사에 지분 80%를 내놓으라고 협박한 혐의도 있다.

◇기업 사금고화 막을 제도 마련 시급=새로운 정치권력이 들어설 때마다 각종 명분을 붙여 기업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비위는 이미 관행으로 굳어지다시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웅산 묘지 폭발 사고 유가족 지원 명목으로 재단을 세워 대기업을 대상으로 598억5,000만원을 걷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통치자금 명목으로 5,000억원을 조성한 바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대선자금, 또는 당선축하금을 받지 않고 공식적인 정부 사업에 기업들이 동원됐다. 대북 사업이 대표적이다. 햇볕정책이 한창이던 2000년 LG상사는 비무장지대에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외 생산기지가 있음에도 북한에서 조립 생산된 전자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판매 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미소금융 재단과 동반성장기금으로 총 2조2,000억원을 걷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미르·K스포츠재단 외에도 청년희망펀드(880억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210억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200억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100억원), 창조경제혁신센터 할당 등 각종 준조세를 걷어갔다.

재계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기업들의 강제 모금이나 기업들의 팔을 비트는 각종 비위를 막는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역량은 글로벌 수준인 데 반해 아직 정부의 행위는 개도국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라며 “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나 기업이 자유로운 경영 활동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 스스로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부영의 사례에서 보듯 세무조사 등을 피하기 위해 정부와 뒷거래를 하는 행위가 계속되는 한 기업의 약점을 노리는 정치권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국내 기업의 재벌이라는 특수성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 문화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한 정치권의 기업 경영 개입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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