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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행정절차의 미로





이 기사는 포춘코리아 2016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잘못된 규제는 어떻게 사업을 옥죄는 걸까? 그리고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업체 입장에서 아마 이 문제는 세금보다 더 무서운,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일 지도 모른다. 바로 과도한 행정절차(Red Tape) 얘기다. 부담스럽고 과도하게 복잡한 정부 규제가 성장을 옥죄고 있다는 주장은 상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업계로부터 터져 나오는 항의의 목소리는 우리가 최근 기억하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가장 강력하다.

CEO들 사이에서 규제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딜로이트 Deloitte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북미지역 내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은 새롭고 부담스러운 규제를 자사 사업에 대한 두 번째 큰 위협으로 꼽았다. 이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꼽은 건 경기 침체 가능성뿐이었다. 미국의 소규모 사업체 32만 5,000개를 대표하는 전국자영업연합(National Federation of Independent Business)이 올해 초 자체적인 분기별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속 자영업자들은 ‘비합리적인 정부 규제’를 두 번째 큰 위협으로 꼽았다. 치솟는 의료보건 비용이 첫 번째 위협이었다. 또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Business Roundtable의 연례 경제 전망 설문조사에 응한 CEO들도 4년 연속으로 “규제가 현재 직면한 최고의 비용 압박 요소”라고 답했다.

과도한 행정절차는 대통령 선거운동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각 후보는 이 사안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접근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중소업체들을 대변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며, 과도한 행정절차에 대해 모범생 같은 대책만 선보였다. 사업가들을 위해 창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지역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을 통해 자금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는 더욱 급진적인 접근법을 선택했다. 공화당 지명후보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발효된 다수의 신규 규제들을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환경 표준도 그 대상이다. 트럼프는 선거운동을 통해 전체적으로 10% 가량의 규제 축소를 제시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더욱 거대한 변혁을 제시한 적이 있다. 자신의 적극적인 성행위를 자랑하는 모습이 담긴 2005년 당시 비디오테이프-이로 인해 그의 지지율은 폭락했다-가 공개된 날, 트럼프는 뉴햄프셔 주의 한 공공청사에서 당선될 경우 연방기관의 규제 다수를 없애겠다고 호탕하게 얘기했다. 트럼프는 “규제 중 70%는 없어져도 된다. 사업체가 성장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과도한 행정절차가 마찰을 유발하는 주 원인인 건 맞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말 사업체를 옥죄고 있을까? 그 대답은 보기보다 명확하지 않다. 현상 자체는 항상 존재했던 것 같지만, 과도한 행정절차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규제로 인한 혜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비교하는 일이 항상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온난화에 따른 지구 멸망을 늦추는 일을 평가 모델에서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가?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지켜주는 안정성과 투명성은 또 어떻게 완벽하게 수치화할 것인가?

시스템 자체에 결함이 있다고 믿는 경제학자들조차도 이 사안을 수치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워싱턴의 규제개혁 분야 석학 중 한 명이자 중도좌파 성향의 진보정책연구소(Progressive Policy Institute) 최고 경제전략위원을 맡고 있는 마이클 맨델 Michael Mandel은 “내 생각에는 규제 구조가 너무 융통성이 없어 우리 경제의 회복력과 적응력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저성장 기조는 부분적으로는 규제와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수치화하기란 어렵다. 신께서도 내가 시도해봤다는 사실을 아실 것이다.”

점점 더 장기화되고 비용이 늘고 있는 신약 개발 과정을 일례로 생각해보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관료주의가 일의 속도를 늦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러 개별 사례에서 보더라도 과도한 행정절차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비용을 발생시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가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환경 검토 및 허가로 인해 수 년이나 지연되고, 그 결과 수백만 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 대부분에 비해 시장 친화적인 국가로 남아있긴 하지만, 그 성향이 약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은행은 규제 효율을 통해 전세계 국가경제를 평가하는 ‘2016년 기업환경평가(Doing Business 2016)’ 보고서에서 5년 전 4위였던 미국을 7위로 산정했다. 미국은 홍콩과 영국(각각 5위와 6위)에는 뒤졌지만, 독일(15위)보단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좀 더 거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의 20세기형 규제 시스템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미국의 규제 체계가 혁신을 이끌어내고, 성장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근로자와 소비자를 보호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현 시스템을 고칠 수 있는가,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할까? 업계는 기업들 스스로 한탄하는 그 과도한 절차가 생겨난 데 대해 어느 정도의 책임을 가지는가? 도대체 과도한 행정절차는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떻게 업무진행의 발목을 잡고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도한 행정절차를 멈출 무언가나 누군가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

포춘은 이러한 질문들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지난 몇 주간 탐색을 했다. CEO, 투자자, 연구원, 학자, 경제학자, 정책 전문가들과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린 절차 자체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먼저 짧게 역사를 돌아보자. 영어로 과도한 행정절차라는 의미를 지닌 ‘레드 테이프’의 어원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은 중요한 법률 문서를 묶는 데 사용했던 붉은색 리본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 Charles Dickens 시대에는 ‘관료주의적인 낭비와 타성’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어원 수업 끝!).

우리는 지금 과도한 행정절차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용어 자체는 어디에서나 쓰이지만, 그 의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분명치 않다. 그러나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의 조직 디자인 및 연구 센터(Center for Organization Design and Research) 책임자를 맡고 있으며, 이 사안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인 배리 보즈먼 Barry Bozeman에겐 이 의미가 분명한 편이다. 그는 레드 테이프의 정의를 ‘준수 부담만 지우고 기능적 목적은 성취하지 못하는 규정이나 규제 및 절차’라고 제시하고 있다.

보즈먼은 이것이 매우 중요한 차이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2011년 ‘규정과 과도한 행정절차(Rules and Red Tape)’라는 영향력 있는 논문을 공동 작성한 그는 “사람들이 레드 테이프에 대해 질문할 때 일반적으로 직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과도한 행정절차와 규정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규정이 하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끔찍하게 과도한 행정절차다. 반대로 다수의 규정이 있고 모두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이라면, 그 중 과도한 행정절차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기업들은 스스로 관료주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유능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하지만 경영진은 과도한 행정절차에 대해 불평을 할 때 거의 항상 정부 규제만을 문제로 삼는다.

최근 불평불만의 대부분은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왔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연방 규제의 규모와 그 엄청난 범위에 대해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보수주의 옹호 언론으로 보기 어려운 뉴욕 타임스는 6회에 걸친 오바마 대통령 임기 평가 기사의 첫 회에서 그를 ‘최고 규제 사령관(Regulator in Chief)’이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그는 대통령 집무실을 떠나면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주요 규제를 만든 장본인’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숫자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조지워싱턴대학교 규제연구센터(Regulatory Studies Center)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초기 7년간 신설된 주요 규제는 총 560개-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의 규모만 1억 달러 이상이다-에 이른다. 이에 비해 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같은 기간 494개를 신설했다. 그리고 새롭게 통과되는 규제의 숫자는 대개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급증한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만들어진 주요 규제의 근원이 된 건 2010년 제정돼 일종의 이정표가 된 법안 두 가지다.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대규모 대책으로 등장한 도드-프랭크 Dodd-Frank 법과 보험 없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겠다며 논란을 일으킨 의료개혁법(Affordable Care Act · 오바마케어)이 그것이다. 로펌 데이비스 포크 Davis Polk가 지난해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도드-프랭크 법과 관련돼 발간된 2만 2,000페이지가 넘는 규제안은 소설 모비딕 Moby Dick 34권을 합친 것보다 분량이 많다. 하지만 의회는 최근 몇 년간 그 어떤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부서들에 권한을 부여해 기후 변화와의 싸움부터 노동환경 안전개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적 목표들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규제들을 규정으로 보는지 과도한 행정절차로 보는지 대기업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존 엥글러 John Engler와 비슷한 말을 할 것이다. 미시간 주 공화당 주지사 출신으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회장을 맡고 있는 엥글러는 “GDP 성장률이 현재 1~2% 범위에 머물고 있는데, 분명 라운드테이블의 CEO들은 그 이유 중 하나가 지난 수년간 계속된 강압적 규제라고 답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거의 두 손을 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기관에서 뭔가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업계의 불평은 다른 이들이 보기엔 항상 존재했던 것이다. 1970년대 초 랠프 네이더 Ralph Nader가 창립한 비영리 소비자 권익 단체 퍼블릭시티즌 Public Citizen의 회장 로버트 와이즈먼 Robert Weissman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규제에 대해 걱정을 일삼는 비관론자(Chicken Little)들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 ‘하늘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할 때에도, 놀랍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뉴딜 정책을 통해 아동 노동을 근절한 첫 번째 규제부터, 1970년대 시작된 근대 환경 규제, 음식점 및 바에서의 금연 정책 도입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예를 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규제를 늘리기보단 줄이겠다고 약속하며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자신의 친구이며 법학 교수이자 작가인 캐스 선스틴 Cass Sunstein을 규제정보관리실(Office of Information and Regulatory Affairs)-예산관리국(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소속 부서로, 장관급 부서에서 신설하는 규제의 유효성을 평가한다-책임자로 임명했다. 선스틴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자신의 임기 동안 ‘소급 평가(Retrospective Review)’ 라는 프로그램을 시행해 현존하는 규제의 효율성을 검토했다. 그러나 겉으로만 요란했을 뿐, 비교적 많지 않은 규제들이 이 프로그램의 검토 대상이 되었다. 그 동안에도 입법부는 쉬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규제 급증을 통제하려는-그리고 대부분 실패하는-대통령들의 오랜 관행을 계속 이어갔다. 예컨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문서감축법안(Paperwork Reduction Act)에 서명하고 규제정보관리실을 신설했다. 1년 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주요 규제에 대한 비용 대비 혜택 분석을 의무화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1993년 모든 ‘주요 규제 행위’를 규제정보관리실에 제출해 검토 받게 하는 대통령령 12866호를 발표하며 이러한 전례를 따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2007년 자신의 대통령령을 통해 검토 의무화 규제를 새로 추가했다. 그렇지만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전체 규제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비영리 병원 시스템 클리블랜드 클리닉 Cleveland Clinic의 최고품질책임자 신시아 데일링 Cynthia Deyling 박사는 규제를 신뢰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업무는 병원 운영을 감독하는 규제당국 수십 곳의 요구사항을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시설들-플로리다 주, 네바다 주, 캐나다, 아랍에미리트에 위치한 지점도 포함한다-이 준수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그녀는 규제가 “우리 조직을 더 발전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엄청난 규모의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 더욱이 그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데일링 박사는 지난 10년간 병원 규제가 엄청나게 증가했으며, 그 동안 규제가 더욱 세세하게 지시하고 조사를 기반으로 하는 쪽으로 변했다고 지적한다. 노인 의료보장제도(Medicare)와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Medicaid)로부터 자금을 받는 병원은 무엇보다 반드시 공적 의료보험 서비스센터(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 CMS)에서 정하는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예전에는 전문적 결정을 내리는 절차에서 직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이 있었다. 데일링 박사는 이제 체크리스트와 감사가 그 절차를 대체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과거에는 대부분 병원들이 리스크 관리 담당자를 한 명 두고 있었다. 현재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선 90명의 정규직원이 각기 다른 시설에서 ‘규제 조사에 대한 준비’를 감독하고 있다. 작년 클리블랜드 클리닉에 대한 조사일수는 320일이었다. 이 병원에선 연간 1,550만 달러를 들여 직원들의 조사 대비를 돕는 인력과 컨설턴트를 고용하고 있다. 병원은 직업안전위생국(OSHA), 환경보호청(EPA), 원자력 규제 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쿠야호가 카운티 Cuyahoga County 식품 조사국 같은 규제당국의 감독 대상이다. 데일링 박사는 비정부 기관이 CMS를 대신해 조사를 수행하고, 후에 노인 의료보장제도 및 저소득 층의료보장제도 기관이 검토 조사를 수행했을 때, 서로 상이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꽤 많다고 지적했다.

주 소속 기관들과 연방 정부 사이에 일관성이 향상된다면, 병원 입장에서 시간과 자금, 인력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사업체 품질 책임을 맡고 있는 앤서니 워무트 Anthony Warmuth 박사는 “규제는 중요하며 환자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규제가 생산적으로 보이는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 혹은 외부의 다른 규제들과 상충되는 경우에만 비효율성이 커져 올바른 일을 하고 규제를 준수하는 데 큰 혼란을 야기한다.”

대부분의 경우, 규제는 숭고한 목표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법은 뭔가 잘못된 것을 예방하거나 이에 대응하려는 의도로 통과되며, 이 같은 법을 시행하기 위해 규정이 만들어진다. 허버트 코프먼 Herbert Kaufman이 큰 반향을 일으킨 1977년 저서 ‘레드 테이프: 기원과 사용, 그리고 오용(Red Tape: Its Origins, Uses & Abuses)’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겐 과도한 행정절차가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한 절차상의 안전장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이 누적되면 때때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진보정책연구소의 맨델이 규제 누적의 효과를 묘사하는 비유를 하나 들었는데, 필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비유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경제학자 맨델은 조약돌을 개울에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1개 혹은 2개나 3개까지는 눈에 띄는 영향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00개를 한꺼번에 던지면 물의 흐름을 가로막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는 “사업체들로부터 정말 자유를 빼앗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은 규정을 만드는 절차-입법 체계와 마찬가지다-가 규제를 완화하기보단 새로운 규제를 낳는 쪽으로 기울어져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일단 새 규정이 문서화되면, 그건 일반적으로 그대로 남게 된다. 맨델은 연방정부 어디에도 규제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는 중앙 부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불평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응이 필요할 만큼 반복되는 문제를 확인하고 그 패턴을 분석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맨델은 “규제 문제는 마치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기 책임자가 누구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배를 정말로 조정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 문제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얘기한다면, 이를 해결해줄 사람은 과연 있는가?”

기업 리더들은 부담스러운 신규 규제의 유령에 대해 불평을 한다. 하지만 더 캐물어보면, 현존하는 규정들 중 철폐를 원하는 규정을 골라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부분적으론 대기업들이 빠르게 적응하기 때문이다. 기존 규제가 경쟁자의 시장 진입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정부 개입이 기업에게 환영할 만한 보호장치가 되는 경우도 있다. 스프린트 Sprint의 CEO 마르셀로 클라우르 Marcelo Claure는 “기지국을 보유하지 못한 지역에서 버라이즌 Verizon, AT&T와 합리적인 로밍 요금 협상이 가능하도록 오바마 행정부가 도움을 줬다”며 좋은 평가를 했다. 그는 소비자들도 혜택을 봤다고 주장한다. 클라우르는 9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이 경우에는 버라이즌과 AT&T가 규제 덕분에 시장 영향력을 악용해 우리 사업을 몰아내지 못했다”며 “이런 규제는 환영한다”고 말했다.

연방 규제는 종종 큰 격변이 생긴 후에 그 덩치가 커진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를 비롯한 근대 금융 규제의 틀 대부분은 1929년 대공황에 대한 대응책으로 탄생했다. 1960년대 사회와 환경에 대한 자각이 이뤄지면서 우리가 사는 지구, 소비자, 근로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에 따라 1970년대 국가 단위의 규제가 크게 확장됐다(이로 인해 워싱턴 정가의 로비활동도 엄청나게 복잡해졌다).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는 미 국토안보국(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이 창설됐다. 국토안보국의 2016 회계연도 예산은 270억 달러로, 현재 정부의 규제 관련 지출 중 43%를 차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경기 대침체(Great Recession)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으로 도드-프랭크 법이 통과됐다-이로 인해 소비자보호국(Consumer Federal Protection Bureau)이라 불리는 강력한 기관이 새로 창설됐다. 849 페이지에 이르는 이 거대하고 야심 찬 법은 거대 은행을 통제해 높은 자본 수준을 유지하게 강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법의 중심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사이를 분리하는 벽을 다시 세우는 볼커 룰 Volcker Rule이 있다. 이 은행 사이의 벽은 1933년 글라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의 통과로 세워졌다가 1999년 해당 법의 철폐로 무너진 바 있다.

금융권은 도드-프랭크 법의 통과 이후, 그 규제 부담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거대 은행의 운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 자명했다. 일례로 제이피모건 체이스 JPMorgan Chase의 CEO 제이미 다이먼 Jamie Dimon은 지난해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2011년 2만 4,000명이었던 규제 ‘통제’ 전담 직원 수가 4만 3,000명까지 증가했으며, 규제 준수 노력에 따른 연간 비용도 60억 달러에서 90억 달러로 급증했다’고 알렸다. 물론 그 어떤 규제 준수에 들어가는 비용도 금융 위기로 인한 비용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경제학자들이 수년 전에 보수적으로 계산한 금융 위기 비용만 해도 6~14조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도드-프랭크 법으로 인해 가중된 그 모든 규제의 부담이 정말로 다음 금융 위기로부터 안전을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이 법은 대표적으로 무자비한 규제가 아니다. 한편으론 어떻게 대기업들이-그리고 대규모 로비활동이-스스로 과도한 규제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연구이기도 하다. 볼커 룰의 경우도 은행이 자기자본 거래를 하는 데 고객 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비영리 시민단체 베터 마켓 Better Markets의 CEO 데니스 켈러허 Dennis Kelleher는 “이 규정의 원본 초안은 매우 짧았지만, 결국 950 페이지의 최종 버전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로펌 스캐든 압스 Skadden Arps 소속으로 금융 위기 시절 노스 다코타 주 민주당 상원위원 바이런 도건 Byron Dorgan의 수석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는 켈러허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무엇보다 금융업계 때문이다. 금융업계는 이런 예외, 저런 예외, 이런 명료화, 이런 해석, 이런 허용된 활동 등을 위해 끊임 없이 로비 활동을 이어갔다. 장황한 규칙의 대부분은 금융업계에서 요구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규칙의 장황함과 복잡함에 대해 불평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 드루트먼 Lee Drutman은 이런 현상을 계속 목격해왔다. 초당적 싱크탱크 뉴 아메리카 New America의 선임연구원이자 ‘미국의 비즈니스는 로비다(The Business of America Is Lobbying)’의 저자인 그는 “복잡한 규제가 힘있는 자들에게 보호막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단 이득을 얻게 되면, 그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 로비스트들에게 대가를 지불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뭐든지 단순화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규정을 양산하는 절차 자체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6월 퍼블릭 시티즌이 내놓은 ‘위험한 지연(Unsafe Dealys)’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규정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지난 몇 년간 급격하게 증가해왔다. 이 비영리단체는 ‘2016년 전반기를 기준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규정들이 완성되는 데 평균 3.8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역사적 평균치와 비교했을 때 58% 더 오래 걸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과도한 행정절차를 만드는 데 기록적인 규모의 과도한 행정절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퍼블릭 시티즌의 CEO 와이즈먼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규정을 완성하는 데 대통령 임기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인데, 그 때문에 이런 사안을 관리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 됐다”고 주장했다.

시스템 내부의 마찰은 해결책에 대한 좌우 진영의 분열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거대하게 부풀려진 국가 규제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규제를 가능한 한 지연시키고, 또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기업 이해관계자들이 규제를 가로 막아 시스템이 고장 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도우파 성향의 비영리단체 아메리칸 액션 포럼 American Action Forum의 규제 정책 부문 책임자 샘 배트킨스 Sam Batkins는 “좀 희한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파 쪽의 규제 관련 회의에 가면 고장 난 절차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좌파 측 규제 관련 회의를 가봐도 절차의 문제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된다. 이 부분에 있어선 모두의 생각이 똑같다.”

필립 K. 하워드 Philip K. Howard는 20년 이상 과도한 행정절차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비록 눈에 띌 만한 진전을 이루진 못했지만, 하워드(68)는 자신의 성전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는 “예전에 이 사안에 대해 누군가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 때 내게 ‘왜 벽에 자기 머리를 부딪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참 좋은 질문이었다.”

뉴욕시의 잘 나가는 변호사로 지금은 유서 깊은 커빙턴 앤드 벌링 Covington and Burling의 수석변호사를 맡고 있는 그는 1990년대 초 시정 관련 봉사활동을 하면서 근대 정부의 기능 장애에 대해 경각심을 느꼈다. 그는 이후 과도한 법제화를 비판하는 저서 4권을 냈고, 초당적 비영리 조직 ’커먼 굿 Common Good‘을 창립했다(좌파와 우파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프로젝트에 은퇴한 정치인들을 영입했다. 전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 Bill Bradley와 앨런 심프슨 Alan Simpson을 비롯해 전 인디애나 주지사 미치 대니얼스 Mitch Daniels 등이 이 조직에 합류했다). 하워드는 뉴스 프로그램 데일리쇼 Daily Show에 출연했고, 테드 강연으로 50만 뷰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증권거래위원회에서 규제 개혁 특별 고문으로 활동했고, 전 부통령 앨 고어의 ‘정부 혁신(reinventing government)’ 프로젝트에 협력하기도 했다.

하워드는 복잡해진 세상에 대해 우리 법이 너무 세세하게 통제하려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규정을 만들어 인간 행동의 모든 요소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우리 자신의 발목을 잡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시스템에 융통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하워드도 맨델과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관계당국이 관련돼 있으면 책임지는 주체가 없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하워드는 미국 내 노후 기간시설 재건을 가속화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데 자신의 에너지 대부분을 쏟고 있다. 그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허가 시스템을 파격적으로 다시 고민해봐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워드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연구 중 하나가 현재 진행 중인 바욘 브리지 Bayonne Bridge 프로젝트다. 바욘 브리지를 들어 올려 거대한 컨테이너선들이 뉴저지 주의 뉴어크 Newark 항구로 들어갈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다. 이 계획안은 예전 구조 및 기존 토대와 같은 동일한 통행로를 사용해 환경적 영향이 매우 적었다. 하지만 승인 절차에만 4년 이상이 걸렸다. 오랜 역사를 지닌 주변 건물에 대한 전수 조사를 포함해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양산해냈고, 이는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추가 세금 부담을 안겼다.

하워드는 주요 프로젝트 허가에 소요되는 평균 기간을 십 수년에서 1~2년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자신의 믿음을 담아 3 페이지짜리 법제화 제안서를 내놓았다. 그의 아이디어는 환경특성심의회(Council on Environmental Quality) 의장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의장은 프로젝트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검토돼 허가가 가능하다고 보는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 하워드는 “현재는 그런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50페이지 정도면 될 검토 문서가 2만 페이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워싱턴 정가는 기간산업 개발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워싱턴 식의 노력을 하고 있다. 2015년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교통재정비법(Fixing America’s Surface Transportation Act, FAST Act)’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교통부 산하에 전국 지상 교통 및 혁신 재정국(National Surface Transportation and Innovative Finance Bureau)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연방 기관이 설립될 예정이다. 교통재정비법에 대한 교통부의 최근 ‘진척 현황’ 보고서에선 아직까지 연관된 자금 마련 프로젝트를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새로 발급된 69가지 규제, 각서, 지침 문서는 나열하고 있다. 하워드는 “마치 길버트와 설리번 Gilbert and Sullivan *역주: 빅토리아 시대 공동작업으로 유명한 두 인물처럼 환상의 복식조 같다”고 말했다.

하워드는 백지상태로 돌아가 접근 방식을 재고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법이 너무 복잡해지자 법 자체를 다시 만들었던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Justinian 황제와 나폴레옹 Napoleon 등을 예로 들었다. 하워드는 “현재의 시스템을 개혁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작성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실제로 여러 측면에서 과도한 행정절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해 보인다. 단지 그 거대한 덩치와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업 모델과 플랫폼, 애플리케이션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유전공학이나 드론을 비롯해 사람을 태우고 다닐 자율주행 차량 같은 기술이 이끌게 될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의 중심에서 살고 있다. 정치인들과 규제당국자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의 변화를 따라가려다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박스 기사 ‘새로운 개척자를 위한 새로운 규정(New Rules for New Frontiers)’ 을 참고하라).

진보정책연구소의 맨델은 “과도한 행정절차가 우리가 파악하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혁신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고 우려한다. 일례로 그는 모두가 지난 10년간의 가장 거대한 소비자 기술 혁신이라고 동의하는 스마트폰을 제시한다. 맨델은 애플이 AT&T와 파트너십을 맺고 2007년 처음으로 아이폰을 출시했던 때를 언급했다. 두 회사는 당시 유독 데이터 사용량이 많았던 아이폰을 위해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같은 독창적인 요금제에 대해 협상할 수 있었다. 이 때는 규제당국이 그들을 감독하지 않았다. 맨델은 여러 가설을 세워보며 “청문회가 진행됐다면 어땠겠는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얼마나 많은 반대 의견이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성장 동력을 잃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은 때때로 뻣뻣한 국가 규제에 적응하기 위해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차량호출 대기업 우버 Uber는 다른 이들에 앞서 글로벌 브랜드를 일궈내는 동안 여러 시장에서 규제당국을 무시하기도 했고, 그들과 싸우기도 했다. 호전적 CEO 트래비스 캘러닉 Travis Kalanick이 싸움을 이끌었다. 올해 초 이 신생기업은 과거와 다른 전술을 도입할 준비가 됐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자사의 규제와 관련된 문제를 관련당국과의 협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 교통부장관 레이 러후드 Ray LaHood가 합류한 정책 위원회를 구성한 것이다.

‘우버가 벤처투자자들로부터 이미 600억 달러 이상의 가치평가를 확보했다’는 사실은 임기응변식 접근법이 어울리는 상황에선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을 기반으로 전략을 짜는 건 너무 주먹구구식이다. 기업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이 늪에서 탈출할 방법이다.

베인 캐피털 벤처스 Bain Capital Ventures의 매니징 디렉터 맷 해리스 Matt Harris는 주로 핀테크(떠오르는 신생사업 분야로 기술을 통해 금융업계를 혁신하려 하고 있다)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는 “한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규제당국을 하나로 통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결제대행업체가 국제적으로 뭔가를 하려고 계획하면, 50개 주 각각과 재무부 산하 여러 부서, 연방예금보험공사(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연방준비위원회, 법무부와 상대를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 합치면 80개에 가까운 규제당국이 사업체를 감독하는 꼴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금이 오고 가는 활동에 주의 깊은 감독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75개 정부기관을 상대해야 하고, 그들 모두가 언제든 당신의 사업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만큼 다양성이 강하고 복잡한 체계 하에선 압도적인 힘을 지닌 단일 규제당국의 존재가 그리 현실적인 모습은 아니다. 우리에겐 규제당국이 아니라 규제 자체를 고민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필요한 것이다.

맨델은 지금의 소급적 검토 시스템이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는 진보정책연구원 동료 다이애나 커루 Diana Carew와 함께 의회 승인을 통해 구성되는 규제개선위원회(Regulatory Improvement Commission)를 제안했다. 혁신 유도를 위해 철폐해야 하거나 변경해야 하는 규제를 정해진 기간 동안 찾아내는 게 이 위원회의 목표다. 이를 위한 제시안 하나가 지난 몇 년간 상원과 하원에 제출됐지만, 아직 추진력은 얻지 못하고 있다.

해리스는 필립 K. 하워드와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접근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규정을 더 세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규제는 개개인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규정하려는 시도로 작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작업이다. 해리스는 “모든 것을 재고해 좀 더 원칙적인 방식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건 모든 것이 잘 돌아가도록 구체적으로 처방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도 있겠지만, 현재 우리의 접근법은 점점 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역설적인 점은, 레드 테이프의 아이디어 자체가 혁신을 이끄는 주체들과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IT 업계는 관료주의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앞서 완고하게 변화를 거부했던 업계들을 대상으로 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가 IBM이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금융규제 전문 컨설팅 업체 프로몬토리 파이낸셜 그룹 Promontory Financial Group을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 프로몬토리의 전문성과 IBM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왓슨 Watson의 성능을 하나로 모아 더 효율적인 준수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IBM의 왓슨 사업을 이끌고 있는 데이비드 케니 David Kenny는 미 식약청(FDA) 관련 규정 준수부터 자율주행 자동차를 위한 교통 규정 준수까지 모든 부문에 유사한 투자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요즘 기업이 짊어지는 규제의 부담은 상당하다”고 말했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규정이 과도한 행정절차가 돼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이 규제를 자동화하고, 좀 더 명료하게 만들고, 정책입안자와 이를 시행해야 하는 사람들을 도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있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매우 융통성 있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인류는 과도한 행정절차를 없애지 못했다. 그렇다면 컴퓨터에게 맡겨보는 건 어떨까.






[규제 철폐 공약: 클린턴 vs 트럼프]
규제 대부분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완전히 판이한 시각을 견지했다. 클린턴은 월가와 여타 업계를 굴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통제는 지지하는 반면, 중소기업을 위한 규정은 완화하길 원했다. 이와 반대로 트럼프는 연방 규정을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 칭하며 전체적으로 철폐하길 원했다. 두 후보에겐 당선 때 제거하길 원하는 각각의 3가지 규제가 있었다. (*역주: 이 기사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직전 쓰여졌다)

힐러리 클린턴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비용과 소요기간을 줄이고, 모든 주에 걸쳐 허가 규정을 표준화해 중소기업 소유주들이 각기 다른 주에서 편하게 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 신용협동조합과 소형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을 쉽게 만든다. 부분적으론 주와 지역 정부에 규제 줄이기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아울러 규제 관련 문의에 대한 연준의 대비능력을 향상시킨다. 중소기업이 직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기 위해 의료개혁법을 통한 세액공제를 원할 경우, 자격요건을 간소화한다.

도널드 트럼프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통과된 도드-프랭크 법과 의료개혁법 관련 규제들을 철폐한다. 에너지업계 관련 규정들을 대폭 축소한다. 석유와 가스 채취를 위해 연방 토지 및 해변 지역을 개방하고, 연방 토지 석탄채굴권을 새로 발급한다. 수자원 및 습지를 보호하는 업계 규정을 철폐하고, 발전소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의 계획을 중단한다.이미 명문화된 신규 규제를 검토하기 위해 시행을 연기한다.






[새로운 개척자를 위한 새로운 규정]
사고방식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는 가운데 규제당국도 느리게나마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 과정은 복잡하고, 점진적이며, 때론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다. 하지만 새로운 정책이 등장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유전자 조작
말라리아에 면역을 가지도록 만든 모기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농작물부터 인간배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수정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Crispr) 같은 도구들이 더욱 정교해지면, 기술이 국제적인 규제 사안이 될 것이다. 결국 모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
전문가들은 향후 3~7년 내에 자율주행차가 실제 도로에 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고려한 연방 규제당국은 안전과 개인정보 보호, 예상되는 디자인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상태다. 한 가지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책임성 구분 방식이다. 자동차 관련 웹사이트 오토트레이더 Autotrader와 켈리 블루 북 Kelley Blue Book의 대표 발행인 칼 브라우어 Karl Brauer는 자동차 실수로 사고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94%는 사람의 실수다.”

드론
미 연방항공청(FAA)이 항공사진부터 수색구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임무들의 제한을 완화하는 새로운 상업 규정을 발표했다. 지침을 살펴보면, 드론이 운행자의 시계 안에 있어야 하고 드론의 비행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상공에선 비행을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기업들-실제론 아마존 정도다-이 예외조항을 신청할 예정이어서 드론을 통한 배송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증강 현실
주변 환경에 디지털 정보를 추가해 현실 세계를 증강시키는 이 기술은 규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정보 보호라는 문제로 이어질 순 있다(동영상 녹화가 쉬워지는 문제 때문에 구글 글라스 Google Glass 때도 불거진 사안이다). 법학 교수 라이언 칼로 Ryan Calo는 “결국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합리적인 개인정보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기업 규정 제정의 역사]
▲ 1787년
미 헌법이 새로운 정부 조직과 국가의 초창기 규정들을 수립했다. 통상 규정(Commerce Clause)에 따라 정부는 타국과의 사업 및 주 사이의 사업을 규제할 수 있었다.



▲ 1838년
오하이오 강에서 운행되던 보트 모젤 Moselle이 폭발해 100여 명의 승객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당시 발생한 여러 치명적인 사고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에 따라 증기선법(Steamboat Act)이 제정됐다.



▲ 1887년
주간통상위원회(Interstate Commerce Commission)가 미국 내 첫 번째 독립적인 규제 기관이 됐다. 이 기관은 철도업의 독점 관행을 억제하기 위해 설립됐다.



▲ 1906년
비리를 파헤치는 저널리즘과 업턴 싱클레어 Upton Sinclair의 폭로 저서 ‘정글 The Jungle’이 의회에 압박을 가해 식품의약품위생법과 1906년도 연방식육검사법이 통과됐다.

1919년
의회가 금주법(Volstead Act)을 통과시켜 국세청(IRS)에 금주법 시행의 권한을 부여했다. 의사들은 주류를 약물로 처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절차가 강력한 규제 대상이었다.



▲ 1933년
대공황으로 인한 주식시장 붕괴와 은행 파산이 더 강력한 금융 규제를 촉발시켰다. 글라스-스티걸 법이 효과적으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했고, 연방예금보험공사도 이때 설립됐다. 그 뒤를 이어 1934년에 증권거래위원회가 탄생했다.

1933~1936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규제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창설한 연방통신위원회(FCC),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공공사업촉진국(WPA) 등 100개 이상의 공공기관들이 ‘알파벳 에이전시 잡동사니로 밝혀졌다.



▲ 1959년
발암물질에 대한 깊은 우려가 크랜베리 괴담으로 이어졌다. 추수감사절 몇 주 전, 정부는 미국인들에게 크랜베리에 대한 경고를 했다. 일부 크랜베리에서 쥐의 비정상적 성장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초제 아미노트리아졸이 검출됐다.



▲ 1962년
미 식약청의 검사 담당자 프랜시스 올덤 켈지 Frances Oldham Kelsey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진 탈리도마이드의 승인을 가로막았다. 그 후 의회는 제약회사가 약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증명하도록 의무화해 규제를 강화했다.



▲ 1962년
레이철 카슨 Rachel Carson이 살충제 DDT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다. 이 저서는 미국 내 환경 운동의 시발점이 됐다는 찬사를 받았다.

1966년
랠프 네이더의 베스트셀러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 미국 자동차의 설계상 위험’이 미국의 첫 주요 자동차 안전법인 자동차교통안전법과 미 전역에 걸친 안전벨트 법을 제정하는 데 도움이 됐다.



▲ 1970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이 설립되고, 더욱 강력한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이 탄생하면서 환경 규제가 큰 힘을 얻었다. 1972년에는 수질보호법(Clean Water Act) 확대가 그 뒤를 이었다.



▲ 1972년
소음이 시민 건강과 복지 부문에서 ‘점차 증가하는 위험’으로 등장했다. 의회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소음규제법(Noise Control Act)을 통과시켰다.



▲ 1972년
닉슨 대통령 시절 환경 및 안전 규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후-직업안전위생괸리국 (OSHA)과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 도 새로운 기관이었다-로비 활동이 시작되었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도 탄생했다.

1978년
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행 요금 및 항로 접근권에 대한 제한이 철폐되면서 항공사들에 대한 규제가 풀렸다.



▲ 1996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처음으로 전자서명을 통해 통신법(Telecommunications Act)이 제정됐다. 이 법안은 업계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는 한편, 인터넷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기 위해 연방통신위원회 권한을 강화했다.

2010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의회가 도드-프랭크법을 통과시켰다. 1980~90년대 규제가 철폐된 은행업계에겐 대공황 이후 가장 중요한 규제조치였다.



▲ 2010년
당시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Nancy Pelosi가 앞장서면서, 의회가 ‘오바마케어 Obamacare’로 알려진 환자보호 및 적정부담보험법을 통과시켰다. 보험이 없는 수백만 명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015년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오바마 대통령의 청정전력계획(Clean Power Plan)을 통해 미국에선 처음으로 발전소 탄소 배출을 규제하는 표준이 만들어졌다. 올해 이 계획에 대한 법정다툼이 벌어지자 미 대법원이 실행을 유예했다.






[타코 트럭은 어떻게 멈추게 됐는가]
요즘 도시에선 많은 이들이 인기 있는 푸드 트럭을 오픈하는 듯하다. 하지만 푸드 트럭 개점은 보기보다 더 복잡하다. 예컨대 뉴욕에선 첫 토르티야를 데우기 전 이동식 식품 판매에 관련된 68페이지에 이르는 규제를 통과해야 한다. 이중 다수는 합리적으로 청결성과 식품 안전을 보장하지만, 너무 엄격한 규제들도 있다. 뉴욕에서 시행 중인 규제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살펴본다.

개업하기:푸드 트럭 운영을 위한 면허가 필요하다. 면허 없는 운영자는 ‘즉각적으로 보건에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돼’ 엄격한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이는 시가 발급하는 첫 번째 면허에 불과하다. 두 번째로 뉴욕시 보건 및 정신위생국(Department of Health and Mental Hygiene)으로부터 푸드 트럭이 위생적임을 확인해주는 허가를 받아야 하고 검사도 통과해야 한다. 이는 트럭 자체에 관한 허가다. 운영자는 15시간에 걸친 식품관리 코스를 수강하고, 수료 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했다면? 드디어 운영자에게 허가증과 스티커가 발행된다. 하지만 여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트럭에 스티커를 알맞은 방법으로 배치해 스티커 사방으로 약 15cm의 여백이 남아있어야 한다. 예상하겠지만, 위반할 경우 범칙금을 물어야 한다(심지어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다).

장소 찾기:그 어떤 식품 판매자도 모든 버스정류장 및 택시 정류장 구역 이내, 뉴욕 주 공공 보건법 2801조 하위 규정에 정의된 병원 근처의 모든 주정차 금지구역과 맞닿은 인도 구역 이내, 모든 주행도로, 모든 지하철 출입구 또는 모든 교차로의 횡단보도로부터 약 3m 이내에선 판매 행위를 할 수 없다. 경찰이 지정한 일부 구역에서도 판매가 금지된다. 긍정적인 측면은 시가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영어, 스페인어, 번체 중국어, 아랍어, 우르두어, 벵골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페르시아어, 힌두어’로 해당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조리 및 서빙:그 어떤 육류도 이동식 식품 판매소 내부나 그 위에서 발골하거나 판매용 크기로 절단해선 안 된다. 온도계나 얼음에 대한 규정은 예상치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온도계는 금속막대형으로 숫자 눈금이 있어야 하고, 온도나 열전대(thermocouples) 또는 서미스터 thermistor를 표시해야 한다. 얼음은 반드시 ‘깨지거나, 으깨지거나, 큐브 형인’ 상태여야 하고 ‘일회용이거나 습기 방지용 종이 백에’ 담겨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조미료 준비 관련 89.19 (h)절에는 간단한 예시가 제공돼 있다.

쓰레기 처리 및 청결 유지:트럭의 청결성 유지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지정된 위치에 있는 동안에만 청소를 할 수 있다. 오수 탱크가 ‘이동식 물 공급 용량보다 최소 15% 더 큰 용량을 갖춰야 하며, 오수라는 문구를 분명하고 영구적으로 표기해야’ 한다. 또 손 세척을 위해서만 쓰는 싱크대도 트럭 내에 설치해야 한다. 운영자는 소매 없는 셔츠나 배꼽티를 입어선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 위생’을 위반하면 벌금형에 처해진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BRIAN O‘KEE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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