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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S 워리어…‘최초의 철갑선’?





1860년12월29일 영국 템스철공조선소. 군함 워리어(HMS Warrior)호 진수식 에사람들이 몰렸다. 50년 만의 강추위에도 사람들이 운집한 이유는 워리어호가 새로운 개념으로 건조된 전투함이었기 때문. 덩치도 컸다. 배수량 9,180t. 같은 해에 진수된 1급 전열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호(6,201t)보다 훨씬 컸다. 선체도 길었다. 128m. 선체 길이로만 따지면 요즘 기준으로도 큰 전투함에 해당된다.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의 길이(135m)에 필적한다.

외양은 더욱 특이했다. 갑판도 낮고 온통 검은색이었다. 돛대와 증기기관을 동시에 사용,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시속 17.5노트를 냈다. 눈에 뜨이지 않는 특징도 있었다. 목재 선체 위에 11.4㎝ 두께의 철판을 입혀 종종 ‘최초의 철갑선’으로 간주된다. 조선 수군의 거북선이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강조할 때 비교 대상이 바로 워리어호다.

세계최초의 철갑선이 어떤 배인가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프랑스는 1859년 건조된 전투함 ‘글루와르’를 시효로 본다. 맞다. 글루와르호는 분명 워리어호와 같은 철갑선이고 먼저 등장했다. 그럼에도 워리어호가 철갑선의 효시로 꼽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증기기관 소형화와 신소재 장갑, 스크류 추진, 후장형 강선포 장착 등 워리어호가 채용한 신기술은 이후 군함 제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국은 워리어호 건조까지 곡절을 겪었다. 무엇보다 철제 전함에 대한 우려가 컸다. 강철판이 나침반을 혼란시켜 큰 바다에서 길을 잃기 쉬운데다 저온에서는 곧잘 부숴졌기에 ‘전함의 재질은 단단한 목재’라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다. 완고하던 영국 해군이 생각을 바꿔 철갑선을 건조한 이유는 세 가지. 항해술과 제련기술 발달로 철제 군함의 문제점이 사라지고 프랑스가 목제선박을 쉽게 부술 수 있는 신형 작렬탄(이전 포탄은 폭발이 없는 단순한 쇠공)을 선보인데다 프랑스의 글루와르호 건조에 자극받았기 때문이다.

워리어호는 모든 면에서 프랑스의 글루와르(5,529t)를 앞섰다. 문제는 비용. 워리어호 건조비는 37만7,792파운드로 목재 선박보다 3배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 배 한 척 만드는데 연간 해군 예산의 20% 가까운 돈을 잡아먹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국가들이 워리어호의 장점을 보고도 바로 뒤따르지 못한 까닭 역시 재정 뒷받침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철제함 건조경쟁은 독일과 미국의 경제가 급성장한 19세기 후반부터다.



더 큰 문제는 조기 퇴역했다는 점. 영국 해군은 워리어호를 취역 22년 만에 퇴역시켰다. 최일선에서 활용한 기간은 불과 10년 정도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그만큼 빨랐고 프랑스보다도 독일의 성장이 빨라 영국으로서는 건조한지 얼마 안되는 함정들을 퇴역시키고 계속 신형을 뽑아낼 수 밖에 없었다. 세계 1위의 해군국가인 영국은 2위와 3위 국가의 해군력을 합친 규모 이상을 유지한다는 원칙 아래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었다. 영국이 19세기 중후반 절정기를 누린 것도 해군에 대한 투자 덕분이다.

돈과 기술이 해상력을 좌우하는 구도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어디쯤 있을까. 거북선이나 워리어호에 비견할 원천기술은 거의 없는 상태다. 뒤늦게 경쟁에 끼어들고도 조선산업 규모에서 세계 1위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국방 당국은 최근 불황을 맞은 조선산업 지원을 위해 해군 함정들을 조기 발주하고 있다. 재정이 해군력 확충을 뒷받침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기념비적인 함정인 워리어호는 운이 좋았다. 자매함인 ‘흑태자호’는 연습함으로 용도 변경을 거쳐 고철로 팔렸으나 워리어호는 연습함, 전력공급함, 연료창고로 쓰이며 연명하다 영구보전이 결정돼 1987년부터 포츠머스 항구에서 관람객을 맞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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