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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나, 다니엘 브레이크' 복지는 결국, 인간에 대한 예의





시험문제지를 받아봤는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거나, 괴한에게 쫓기는데도 발이 떨어지지않는 꿈을 꿀때만큼이나 무서운 건 다시 단칸방 시절로 돌아가는 꿈이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엄마는 월세를 제 때 내는 적이 거의 없었고 아무리 어려도 눈치는 백단이라 주인집에서 뿜어내는 살벌한 긴장감은 견디기 힘들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게으르지않았고 못배우지도 않았지만 한번 경제적으로 삐꺽거린 후에는 급속히 도시빈민으로 전락했다. 친척들과 이웃들은 아들도 아닌 딸들을 공장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낸다며 엄마의 ‘허영심’을 흉봤다. ‘가난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는 말도 참 많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더더군다나 국가에게 가난구제를 바란적이 단 1초도 없었는데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치욕적이었다. 이제는 웃으며 그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나, 다니엘 브레이크>(2016년작, 켄 로치 감독)가 그때의 기억을 아프게 떠오르게해주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심장병을 앓고있어 취업을 할 수 없는 처지다. 평생을 성실한 목수로 살아왔지만 형편이 어려운 다니엘은 정부의 질병수당이 절실했지만 기계적이고 융통성없는 복지 시스템으로인해 기각된다. 더군다나 인터넷에 익숙하지않은 다니엘에게는 수당을 받기위한 절차 자체가 너무나 힘겹다. 원리원칙만 강조하는 공무원들은 끊임없이 다니엘을 의심하고 자존심을 상하게하지만 사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와 그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등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케이티 역시 두 어린 자녀를 헌신적으로 돌보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하지만 다니엘도 케이티도 정말 중요한 시기에 꼭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케이티는 막다른 선택까지 하게된다. 다니엘은 그런 케이티가 안타깝지만 본인 역시 낡은 가구마저 팔아야하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다니엘이고 다니엘이 겪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케이티가 더 안쓰럽게 보였다. 자신은 굶으면서도 아이들과 다니엘에게 따뜻한 음식을 해주며 희망을 잃지않던 그녀가 식료품 지원소에서 허겁지겁 음식을 먹는 장면과, 여자로서 마지막 선택까지 하는 것을 보며 같이 붙잡고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의 아빠들은 왜 그렇게 무책임한건지,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어 상담시간에 조금 늦었다고 내치는 공무원들은 어쩌면 그렇게 매정한건지, 그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생활력 강한 케이티가 생리대까지 훔치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려만하는건지, 두서없는 분노와 절망이 스쳐간다. 다니엘이나 케이티는 공짜를 바라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이 힘든 파도만 좀 넘어가게 최소한의 비빌언덕이 되어달라고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을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에 쓰라고 기꺼이 세금을 내는 것이다. 그 어떤 훌륭한 제도도 결국 사람이 실행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 있는 다니엘과 케이티가 자존심을 완전히 잃고 쓰러지기 전에 응급구호를 해주어야하는 것은 정치적 노선의 문제가 아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운동화 밑창이 떨어졌다고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는 케이티의 딸이 제발 무탈하게 커주기를, 케이티도 이 고비를 씩씩하게 잘 넘기고 꼭 공부를 계속할 수 있길, 수십년전 딸들을 위해 그 어떤 일도 감내한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담아 응원해본다.

KBS1라디오 “함께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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