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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4.0시대-스위스] 투표로 정책 결정한다...스위스선 "모두가 리더"

<7>'4차 산업혁명 선도국' 스위스의 비결

일정 지지 서명만 받으면 누구나 국민투표 부쳐

기본소득·공유경제 등 산업변화 따른 논의 활발

집단 리더십으로 포퓰리즘 차단·정치안정 유지

지난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 시청을 찾은 시민들이 2층에 마련된 칸톤 의회 참관인석에서 의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유진기자




# 지난 16일(현지시간)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에도 스위스 취리히 시청에는 매주 월요일 열리는 칸톤(광역지방자치단체) 의회를 참관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평일임에도 회의 시작 후 한 시간이 지난 9시30분이 되자 2층에 마련된 참관인석에는 40명이 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중학생부터 20대 청년, 백발의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민들은 의회 좌석도를 보며 칸톤 의원들의 발표와 투표 결과를 유심히 살폈다.

참관인석에서 만난 패트릭 브루너 취리히북중학교 교사는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생각과 다른 법안이 통과되면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며 “이 때문에 많은 시민이 회의장을 찾아 최종 통과되는 안건의 내용과 의원들의 발표를 경청한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을 가장 잘 준비하고 있는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앞두고 글로벌 금융회사 UBS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위스는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국들을 모두 제치고 4차 산업혁명 대비 경쟁력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5년 독일계 컨설팅 업체 롤랜드버거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스위스는 유럽 국가 가운데 독일·스웨덴·오스트리아와 함께 이 분야 선도자 그룹에 속했다. 스벤 지펜 롤랜드버거 스위스법인 매니징파트너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기업· 협회·대학·정치인 등이 마련한 ‘디지털 스위스’ ‘인더스트리 2025’ ‘스위스 이노베이션’ 같은 다양한 이니셔티브가 스위스가 4차 산업혁명의 강자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정치는 변화하는 환경에 반응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스위스가 4차 산업혁명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은 ‘한 명의 리더가 여론을 이끄는 사회’보다 ‘모두가 리더인 사회’를 지향하는 정치·사회적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혼합한 독특한 정치제도를 가진 스위스에서는 18개월 동안 10만명의 지지서명을 받으면 누구나 자신이 만든 법안을 1년에 네 번 열리는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아울러 100일 동안 5만명의 서명을 모으면 이미 의회를 통과한 법도 국민투표를 거쳐 무효로 돌릴 수도 있다. 일부 소규모 칸톤은 ‘란트슈게마인데’라고 불리는 주민 총회에서 주민들이 모여 직접 투표로 정책을 결정하기도 하며 칸톤이나 시의회 같은 의사결정 기구에 참여하려는 열기도 뜨겁다.

덕분에 스위스에서는 시민들이 리더의 제안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하고 실험적인 제안을 쏟아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서도 기존 산업과의 경계를 어떻게 허물고 어떤 새로운 복지제도가 필요한지 한발 앞서 격렬한 토론이 벌어진다.

일례로 지난해 6월 시행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은 기본소득제 도입을 위한 국민투표도 정당의 지지 없이 시민사회가 주축이 돼 법안을 발의했다. 기존 복지제도를 없애는 대신에 성인 한 명당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인공지능(AI), 스마트 공장 등이 보편화된 뒤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때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알렉산더 트레첼 루체른대 정치학과 교수는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며 법안은 부결됐다”면서도 “디지털 혁신이 가져온 잠재적 논쟁거리 속에서 정부는 대개 뒤에 있기를 원하지만 (시민들이)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논의의 장에 올리고 토론한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논란 속에서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스위스 국민 23%의 지지밖에 얻지 못해 정식 제도로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국민투표는 스위스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는 토대를 제공했다.

트레첼 교수는 “최근에는 우버·에어비앤비 등이 소개한 공유경제 모델과 기존 산업 간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국민투표를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택시나 호텔의 규제를 아예 푸는 방안과 역으로 우버·에어비앤비를 규제하는 방안 중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난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서 보듯 국민투표는 언제든 리더를 끌어내리는 포퓰리스트들의 무기로 전락해 정치를 뒤흔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위스는 집단 리더십에 의한 정부 운영 방식이라는 보완 장치를 마련했다.

스위스 정부는 사회민주당(SPS), 스위스국민당(FDP), 기독민주당(CVP) 등 소속 정당이 다른 위원 7명으로 구성된 연방평의회가 이끈다. 연방평의회 위원들은 연방의회가 선출하며 1년씩 돌아가며 대통령을 맡는다. 여러 정당이 정부 운영의 지분과 책임을 나눠 가져 국정 마비나 정책이 손바닥 뒤집히듯 뒤바뀌는 사태를 미리 방지하는 것이다.

집단 리더십이 가져온 높은 정치 안정성은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연구개발(R&D) 등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한다. 트레첼 교수는 “스위스에는 갑자기 외화가 고갈된다거나 통화인 스위스프랑의 가치가 폭락하는 등의 위험요소가 없는 덕분에 마음 놓고 투자할 수 있다”며 “아울러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대학들이 클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리히·루체른=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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