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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문인상경(文人相輕)

신정근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

문인들이 서로 잘났다며 다른 문인을 혹평하는 것

후보 선출 위해 분당, 합당 되풀이

정치 결사체 단명에 혈세만 낭비

본인의 철학, 가치로 승부수 띄워

국민의 선택 받으려는 노력해야





정치 상황이 급속하게 탄핵정국으로 대선정국으로 다시 탄핵정국으로 요동치고 있다. 어떤 당은 일찍 후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공약을 발표하고 캠프를 꾸리고 있다. 아직 뚜렷한 후보가 없는 정당은 경쟁력 있는 후보를 영입해 대선정국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피선거권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나서는 것을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후보가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과정을 보면 대선에 임박해 결성한 정당 또는 정치 결사체가 과연 대선 이후에도 얼마나 그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된다.

정당은 이념과 가치를 공유한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특성을 가진다. 하나의 정당에는 다양한 후보가 있더라도 결국 경선을 통해 최종 후보만 남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선이 끝나더라도 정당이 사라지지 않고 다음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꼭 후보가 돼야겠다는 특정인을 중심으로 정당이 만들어지다 보니 경선과 대선 결과에 따라 그 운명이 결판난다. 새누리당도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니 오죽했으면 정의당(2013년 7월)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정당이 됐을까. 우리나라에서 선거철은 당명을 바꾸는 시즌인 셈이다. 이름을 바꾸면 기존 정당이 업그레이드됐다는 전시 효과를 거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당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정당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정당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그만큼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나라는 왕정에서 민주정으로 바꾼 역사가 짧다고 하지만 정당사가 이미 반세기를 넘긴 만큼 정당 정치도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안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단명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대선에 나서는 후보들은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이 당연히 최종 후보로 선출되고 결국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 욕망이 워낙 강렬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에 같은 하나의 정당에서 다수가 만족할 수 있는 경선 규칙을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렇게 회의론이 득세하다 보니 기존 정당은 결국 특정인을 후보로 정하기 위한 조직일 뿐이고 다른 후보자들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고 한갓 들러리 신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너도나도 자신이 후보가 되기 유리한 정치 조직을 결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선거철이 되면 나에게 불리하고 상대에게 유리한 불공정을 이유로 내세우며 분당과 합당 등 이합집산이 되풀이되고 있다. 선거 전에 우후죽순 생겨난 정당은 선거 뒤에 우수수 나가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후보자가 되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욕망을 탓할 수 없지만 정당의 경선 과정이 국고 보조금을 통해 치러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치 결사체의 단명은 분명 예산의 낭비이고 비상식이고 끊어야 할 악순환의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 조비의 ‘전론(典論)’을 보면 당시 문인들이 서로 잘났다고 생각하며 다른 문인을 가볍게 간주한 문인상경(文人相輕)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일례로 후한시대 반고(班固)는 동생 반초(班超)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당시 문단을 양분하던 경쟁자 부의(傅毅)를 혹평했다. “부의는 문장을 좀 짓는다고 왕실 도서관에서 일하게 됐는데 글을 쓸 일이 많아 쉴 틈이 없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한다고 한 것이다. 조비는 사람마다 글을 잘 쓰는 분야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 쓰는 점에 근거해서 경쟁자가 다소 못 쓰는 부분을 얕잡아보는 풍토를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집에 다 떨어진 빗자루가 있어도 천금의 가치가 있다(가유폐추·家有弊추, 향지천금·享之千金).”라는 속담을 소개했다. 객관적으로 쓸모없는 물건이 제 눈에는 보배로만 보이는 편견을 꼬집은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는 후보들은 경쟁자가 못났다는 점을 통해 반사 이익을 얻을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점에서 뛰어난지를 설득해 최종 승자가 되려고 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의 보도와 후보 간의 토론에서 가십거리 논란을 벗어나 후보의 진면목을 밝히고 확인할 수 있는 틀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인상경’이 ‘후보상경(候補相輕)’으로 바뀐 마이너스 전략을 실컷 보고 대선이 끝나고도 사회통합보다 승자와 패자 사이에 벌어지는 대립의 무한 도전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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